조정형 전통식품 명인 9호, 향토무형문화재 6호, 현 전주 이강주 회장 / 조정형 이강주 명인이 이강주 제조에 쓰는 술 항아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전주 이강주
조정형
전통식품 명인 9호, 향토무형문화재 6호, 현 전주 이강주 회장 / 조정형 이강주 명인이 이강주 제조에 쓰는 술 항아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전주 이강주

서울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매암길 28에 있는 ‘전주 이강주’ 본사에 도착했다. 1941년생, 올해 한국 나이로 80세인 조정형 명인을 만났다. 그는 일제 강점기로 맥이 끊어졌던 이강주를 복원시킨 주역으로서, ‘전통주 업계 1세대 맏형님’이다. 서울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87년, 정부는 한국을 대표할 술 제조자를 찾아 향토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 제조자 세 명이 지정됐다. 이중 조정형 명인은 현재 유일한 생존자이자, 여전한 ‘현역’이다.

이강주는 배(이)와 생강(강)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조선 시대부터 ‘이강주’라 불렸다. 육당 최남선은 그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이강주와 같은 말로 도수가 35도 이상의 술), 전라도의 죽력고가 조선 3대 명주”라고 소개했다. 이뿐 아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이강주의 주방문(제조 방법)을 자세히 적었다. 이 밖에도 이강주를 소개한 옛 문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어느 전통주와 비교해도 만들기가 더 까다로운 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이강주의 제조 방법은 복잡하다. 증류할 때 술덧은 일반 쌀 약주와 차이가 없다. 백미와 누룩으로 약주를 빚어 이 약주로 증류주를 내린다. 소주 같았으면 제조 공정이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강주는 사실상 여기가 제조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증류주를 항아리에 담아 네 가지 핵심 부재료인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각각 따로 넣어 일 년 정도 침출(부재료 성분이 증류주 속으로 배어 들어간다)과 숙성 과정을 거친다. 네 가지 부재료가 각기 들어간 증류주를 블렌딩한 뒤 도수를 맞추고(가령 25도) 2차 숙성을 일 년 더해서 병에 넣으면 이강주 25도 제품이 완성된다. 2014년에 새로 나온 이강주 38도 제품은 증류를 한 번 더하고 2차 숙성도 3년간 한다.


이강주(오른쪽)와 이강주의 주요 재료인 배, 계피, 생강, 울금. 사진 전주 이강주
이강주(오른쪽)와 이강주의 주요 재료인 배, 계피, 생강, 울금. 사진 전주 이강주

이강주에는 다른 술에 없는 부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이강주 부재료는 크게 네 가지다. 배, 생강, 계피, 울금이다. 이 재료들을 약주를 증류한 소주에 각각 따로 담가 1년 정도 침출과 숙성을 거친 뒤 블렌딩하고 다시 숙성해서 완성한다. 여과를 모두 끝낸 술은 일반 소주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맑다. 하지만 향을 맡아보면 부재료인 배, 생강, 계피, 울금 향이 짙게 묻어난다. 옛날에는 술 분류를 탁주, 약주, 소주 그리고 약소주(소주에 각종 부재료를 넣어 추가 숙성시킨 술)로 했다. 이강주가 대표적인 약소주다. 지금은 술을 10가지로 분류하는데, 약소주라는 명칭은 없어져 이강주는 리큐어에 속한다. 리큐어는 약소주와 마찬가지로 소주에 첨가물을 더한 술을 말한다.”

부재료를 각기 다른 술 항아리에서 침출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항아리에 넣어 나중에 블렌딩을 하는 이유는 부재료 함량이 매번 다 다르기 때문이다. 계절(온도나 습도의 차이에서 기인)마다 술맛의 차이가 다소 있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배나 생강이 평소보다 많이 들어가거나 적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부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침출시키면 계절별로 생기는 미세한 맛의 차이를 해결할 수 없다.”

쌀로 만든 약주를 증류한 다음에 부재료를 넣는다. 얼마간 숙성하나.
“1차 숙성(부재료 침출 과정)은 1년, 블렌딩 후 2차 숙성은 25도 제품은 1년, 38도는 3년을 한다.”

배, 생강, 울금 등 이강주 부재료의 효과는.
“술이 어떤 약효가 있다고는 잘 얘기하지 않는다. 술은 술일 뿐 약이 아니다. 마셔본 사람들은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덜하다고 얘기는 많이 한다. 정성을 많이 들여 만든 만큼 술 뒤끝이 깨끗하다는 얘기다.”

이강주는 6대째 내려오는 조 명인 가문의 가양주다. 그런데 희석식 소주 제조 회사에 25년을 근무했다. 왜 더 일찍 이강주 제조에 뛰어들지 않았나.
“전통주를 못 만들도록 법이 막고 있었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 주세법이 개정된 것이 1990년이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해외에 과시할 만한 우리 술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주세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해 이강주, 문배술, 안동소주가 탄생했다. 그때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세 사람 중 내가 47세로 가장 젊었다. 당시 세 사람 중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것은 1987년이다. 그러나 제조면허 허가는 3년 뒤인 1990년에야 받았다. 이강주 생산도 1990년에 시작했다.”

이강주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은.
“이강주는 25도로 시작했다. 2006년도에 19도 제품이 나왔고, 38도 제품은 2014년에 만들었다. 38도 제품은 중국과 러시아에 자극을 받아 개발했다. 2010년 넘어가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왔는데, ‘고도주에 익숙한 중국인 입맛에는 이강주 25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이강주 38도다. 또 당시에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추운 지방에는 25도 술이 아예 없었다. 러시아에 이강주 갖고 갔더니 ‘사이다(음료수)’ 취급하는 게 아닌가.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이 38도였다. 그래서 38도 정도는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도와 38도는 개발 당시 수출용으로 염두에 뒀다. 2012년에 38도 개발에 들어가 2014년에 출시했다. 처음에는 국내 시판도 않고 일부 면세점에만 취급했다.”

올 하반기 혹은 내년 주요 계획은.
“내수 시장은 포화상태라고 본다.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수출을 준비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올해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곳에서 시음 이벤트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전면 중단돼 아쉽다. 연초만 해도 우리 술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아 기대를 했다. 코로나19가 모든 계획을 덮어버렸다. 올해는 어려울 것 같고, 내년 상황을 봐야 한다. 아무튼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작정이다.”

후계자는 염두에 둔 사람이 있나.
“막내딸 조성심 전무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조 전무가 대학(스페인 문학 전공) 다니고 스페인 유학 갔을 때만 해도 술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나도 조 전무 본인도 생각하지 않았다. 조 전무가 이강주 회사에 들어와 일한 지는 5년 정도 됐다. 아직 이강주 제조를 통달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갖고 전수할 생각이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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