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종이와 같이 휘어지는 대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종이와 같이 휘어지는 대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한국이 위태롭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2012년 50.7%로 절반을 넘어섰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45%에 그쳤다. 특히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주요 품목인 LCD(액정표시장치)의 한국 점유율은 2012년 47.5%에서 지난해 33.2%로 14%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기는 최근 TV 단가가 하락하고 스마트폰 수요가 둔화되는 가운데, 중국발 LCD 공급과잉 현상까지 겹친 데서 기인한다. ‘BOE’ ‘CSOT’ 등 중국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대규모 LCD 투자를 통해 10.5세대 디스플레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하나의 커다란 ‘마더글라스(mother glass)’를 필요한 크기로 자르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세대가 높을수록 마더글라스의 크기가 커져 작업 효율이 높아진다. 10.5세대는 약 2.9m×3.4m 크기다. 중국이 대량으로 LCD를 쏟아내면서 패널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지난해 1월 213달러(약 23만7000원)였던 55인치짜리 LCD TV패널 가격은 올해 2월 175달러(약 19만5000원)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 양대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7조54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소폭(3.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68% 줄어든 4100억원에 그쳤다. LG디스플레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분기 영업손실 98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조269억원 흑자에서 적자 전환한 것이다. 2012년 1분기 이후 24분기 만의 첫 영업적자다.

김세연 KDB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전임연구원은 “LCD가 한국 디스플레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에 달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중국발 LCD 공급과잉에 의한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LCD 가격 하락 등에 기인한 수출액 감소,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실적 악화는 단기간 내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2001년 전자 산업 강자였던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1위로 올라선 이래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2000년 초 경기불황으로 투자에 주춤했던 것과 달리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 주효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산업정책조사팀은 “디스플레이 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라며 “설비투자 중 장비 투자비율이 60% 이상으로, 규모의 경제와 생산비용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과 LG는 각각 8개, 17개의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TV용 10.5세대 LCD를 월 12만장 생산할 수 있는 생산라인과 스마트폰용 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월 3만장 생산할 수 있는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데는 각각 약 7조원, 4조원씩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로 올라서게 한 성공 공식은 중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중국은 ‘12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2011년 발표)’ ‘2014~2016 신형 디스플레이산업 발전행동계획(2014년 발표)’ 등을 통해 디스플레이 산업을 전략육성 산업으로 분류, 디스플레이 제조사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 1위인 BOE가 안휘성 허페이(合肥)에 지난 2015년 12월 착공한 10.5세대 패널공장 ‘B9’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공장 건설에 산하 공기업과 공공펀드를 통해 자금의 55%를 직접지원하고, 저리(低利)의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 40%를 간접지원했다. 실제 BOE가 부담한 자금은 5%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의 정부 차원 산업 육성 방침에 따라 중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2012년 8.2%에서 지난해 20.5%로 늘었다. 특히 LCD 점유율이 같은 기간 8.7%에서 24.8%로 세 배가량 증가했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대 초 한국이 일본을 잡았던 방법을 중국이 똑같이 따라하면서, 한국이 일본을 추격했던 상황과 유사하게 현재 한국이 중국에 쫓기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며 “중국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사실상 정부의 지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2024년 차량 디스플레이 시장 24조원

다만 한국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 분야에서 독보적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OLED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47.5% 증가한 233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OLED 시장을 지난해 기준 96.6% 차지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0년 시장 규모가 509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주도권이 LCD에서 OLED로 넘어오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중국이 OLED 생산 능력을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래 디스플레이 먹거리로는 차량용 디스플레이가 주목받고 있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은 약 7조원 규모”라며 “자동차의 전장화, 디자인 중요성 확대, 자율주행자동차 도입 흐름과 함께 OLED 패널까지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에 침투하면서 2024년 기준 글로벌 시장 규모는 24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미 한 차례 한국에 1위를 내준 일본은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통해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가, 2012년 히타치·도시바·소니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를 합쳐 만든 ‘JDI(Japan Display)’를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JDI는 2014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한·중 위주 기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히가시이리키 노부히로  JDI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매출에서 80%를 차지한 스마트폰 관련 제품 비율을 2021년까지 50%대로 낮추고,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도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세진 전임연구원은 “자동차의 경우 특히 부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야 하는데 디스플레이의 품질 측면에서는 국내 업체가 우위에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한다면 자동차 디스플레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