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사장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사장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오랜 부진을 이겨내고 부활에 성공한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2019년 1월 1일 자로 중간 관리자와 간부 직급을 통폐합하는 파격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차장·부장 등 중간 관리자 그리고 상무 등 임원을 포함해 총 2300명을 ‘간부’라는 호칭 하나로 합쳤다.

총 59명이 있던 상무(33명)와 상무이사(26명) 직책은 아예 폐지했다. 33명의 상무 중 3명만 전무로 승진했고, 상무이사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은 본부장 등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겼거나 퇴임했다.

이로써 도요타 전체의 임원 수는 사장과 부사장, 펠로우(fellow), 전무까지 합해 기존 55명에서 23명으로 줄었다. 또 사장과 부사장은 그대로 7인 체제를 유지하되, 전무는 ‘집행임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 명 자리를 추가해 15명으로 구성했다.

이미 도요타는 2016년 4월에 ‘신체제’ 개편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이를 통해 조직의 의사 결정이 더 빨라지고, 부서 이기주의 대신 소비자 지향적인 사고가 더 활성화되도록 했다. 당시 도요타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직후였는데도, 34만 명 거대조직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파격을 단행했다.

도요타는 2016년 이후로도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유지,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중 홀로 ‘꽃길’을 걷고 있다. 2018년 도요타의 순이익은 25조원으로 일본 기업 역대 최대였다. 최대 실적을 내는 상황에서 도요타가 이번에는 조직 상층부를 흔드는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도요타가 급변하는 환경에서 받은 충격과 그에 따른 대책이 이번 조직 개편에 반영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세 가지로 정리했다.


충격 1│IT 플랫폼의 위력 앞에 주도권 박탈의 공포 느끼다
대책 1│구글·아마존과 경쟁할 체제 만든다…아키오 사장 아들, AI 자회사에 배치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과 우버 등 차량 공유 회사들은 자동차 산업이 마주하게 된 새로운 경쟁 상대다. 현재 자동차 산업은 대변혁을 겪고 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차, 차량을 구입하지 않고 ‘대여’하는 차량 공유 개념이 등장했다.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신기술을 보유한 IT 기업에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도요타의 이 같은 현실 인식은 후계자의 경영 수업이 AI 관련 회사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63) 도요타 사장의 30대 아들은 AI 관련 도요타 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키오 사장의 차차기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대개 기업의 예비 후계자들은 기업의 핵심 부서에서 실무 경험을 하면서 경력을 쌓는다. 아키오 사장도 도요타의 주요 부서인 공장 내 생산조사부 등에서 실무 감각을 익혔다. 그런 그의 아들이 AI 관련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도요타가 바라보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주축이 전통적인 제조 부서가 아니라 IT에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IT 기업들의 무기는 투자다. 도요타의 지난 2017년 연구·개발(R&D) 투자비는 1조642억엔(약 11조944억원)으로 일본 기업 중엔 1위지만,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도요타보다 1.6배나 많은 비용을 R&D에 썼다.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에 따른 성과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초 알파벳의 자율주행차 사업 부문인 웨이모는 세계 최초로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상용 자율주행차 택시(일명 로봇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충격 2│IT 업계의 초스피드 의사 결정, 권한 위임에 놀라다
대책 2│ ‘층층시하’ 구조 단번에 날리다

도요타는 지난해 차량 공유 업체 ‘우버’에 5억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했다. 2016년에 이은 추가 투자였다. 같은 해 6월에는 동남아시아 시장의 1위 차량 공유 회사 ‘그랩’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P2P(개인 간) 차량 공유 회사 미국 ‘겟어라운드’에도 3억달러(약 3300억원)를 투자했다.

이런 회사들은 조직 문화가 자유롭다.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일선 직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의사 결정 속도도 몹시 빠르다.

도요타는 지난해 이 같은 벤처 회사들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층층시하의 의사 결정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아키오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격동의 시대에서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프로’가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는 기업 풍토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990년대 디지털화가 이뤄지자 일본 전자 회사들이 무너진 것처럼, 도요타가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이번엔 자동차 회사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면서 “그 당시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를 만든다는 일본의 제조 철학)’를 통해 살아남았던 자동차 산업이 4차산업혁명의 물결에 마냥 버틸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충격 3│소프트뱅크는 30대, 도요타는 50대가 의사 결정…소뱅과 제휴하며 업무 파트너의 어린 나이에 놀라다
대책 3│중간 관리자 단일직급으로 통합…유능한 젊은 직원에게 전폭적인 권한 위임

소프트뱅크와의 협업도 도요타가 직급 통합을 통해 결과적으로 의사 결정권자의 연령을 낮추도록 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도요타는 사업 성격이 전혀 다른 일본의 거대 통신사 소프트뱅크와 AI를 활용해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사업을 함께하겠다며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소프트뱅크의 조직은 도요타에 비해 젊다. 소프트뱅크의 자율주행차 개발 자회사인 SB드라이브의 사장 등 핵심 경영진은 전부 30대다. 젊은 직원들에게 많은 권한을 이양하고 있는 반면, 도요타는 50대 상무급에서 의사 결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요타에서는 젊은 직원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졸 신입사원이 상무가 되려면 적어도 50대 초반이 돼야 했다. 30대 후반의 과장급 중간 관리자가 상무가 되려면 그 전에 차장, 부장, 이사 등 3개 사다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개편된 인사제도에서는 40대 초반도 능력만 있다면 기존에 상무가 하던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된다.

겐다이비즈니스는 “다른 업종의 회사와 제휴하는 일이 점차 늘어날 텐데, 기술 혁신이 빠른 새로운 영역에서 50대 아저씨가 우물쭈물하다 내리는 의사 결정으로는 30대의 참신한 발상이나 행동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