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기공의 한 직원이 권총 시험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다산기공의 한 직원이 권총 시험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귀마개부터 한 후 반드시 그 위에 헤드셋도 착용하시고요, 왼손이 권총 위로 올라가면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탕! 탕! 탕!”

등골이 서늘했다. 군 제대 후 19년 만에 처음으로 만져보는 총이었다. 게다가 장교가 아닌 사병 출신인 기자에게 권총은 생애 처음이었다. 다행히 모든 총알이 표적에 날아가 박혔다. 10월 21일 오후 3시, 전북 완주군에 있는 다산기공 본사 공장 지하 1층 사격장. 여기는 이 회사가 자체 생산한 피스톨(권총)과 라이플(소총) 등 완성 총기류를 시험 발사하고, 성능을 테스트하는 장소다.

다산기공은 1992년 창사 후 정밀 기계 제조라는 한 우물을 판 중소기업이다. 2016년부터 정밀 가공 역량을 방위사업청(방사청)으로부터 인정받아 방위산업체로 정식 지정됐다. 이후 본격적인 총기류 설계 및 생산을 통해 연평균 매출 6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정직원은 약 350명. 주조에서 절삭가공, 조립, 사격테스트에 이은 마무리 작업으로 포장 및 배송까지, 총기류를 중심으로 완제품 라인을 갖췄다. 현재 권총 5종, 소총 9종, 샷건 1종 등 총 15종의 완성 총기를 생산한다. 현대차의 2차 벤더(협력사)로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다양한 기계 부품도 만든다. 이곳은 평생을 기계와 벗 삼아 지낸 엔지니어 김병학(62) 창업자 겸 대표의 일생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방문한 본사 공장 내부에는 ‘쉭! 쉭!’ 하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하고, 익숙한 쇳내가 났다. 수십 명의 직원이 생산라인마다 설치된 각각 다른 모양의 자동화 기계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동행한 보안과장이 마지막 조립 작업을 하는 조립실은 보안상 사진을 공개할 수 없는 곳이라고 경고했다. 이곳에선 딱 봐도 숙련된 엔지니어 십여 명이 집중해서 총의 주요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하고 있었다. 이후 개발된 총기류는 진흙·모래·물 등에 담갔다가 발사하는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현재 국내에서 총기류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이곳과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무기를 만들던 ‘조병창’이 민영화한 S&T모티브(옛 대우정밀) 두 곳밖에 없다. S&T모티브는 방산업체로 K시리즈 총기류를 국내에 납품하고 있다. 반면 다산기공은 미국에 현지 법인과 공장을 두고 그곳에서 부품과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한국에선 동남아시아와 유럽, 중동 등으로 부품과 완제품을 직접 수출한다. 매출의 90%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수출 효자 기업이기도 하다.

집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내 소요 사태 등 위기감이 강해지면서 총기류 판매량이 늘어 호재를 맞았다. 이를 시장 개척의 기회로 삼을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산기공의 주력 소총 DSAR-15P. 사진 다산기공
다산기공의 주력 소총 DSAR-15P. 사진 다산기공

총열 수명 늘려 방사청도 인정

안전과 직결되는 총기류 제작은 초정밀 가공 기술이 핵심이다. 이날 공장에서 만난 엔지니어들은 총기류는 미세한 가공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품질 개선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총의 핵심 부품은 총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총열이다. 동행한 이준옥 다산기공 관리부장은 “총의 총열은 자동차의 타이어와 같아 수명이 다하면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 부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산기공의 경우 30억원에 달하는 해머포징(총열 안의 강선을 파는 게 아니라 두들겨 만드는 방식의 기계) 설비를 통한 정밀 가공 기술력으로 총열 수명을 1만 발 이상으로 향상 시켰다”고 귀띔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산기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K-1, K-2 소총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방사청에 납품했고, 최근에는 방사청 완성총기 경쟁입찰에 참여해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연구개발 사업의 우선협상 대상 업체와 기종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기종은 3년간의 추가 개발 기간과 1년여간의 사업 타당성 평가를 거쳐 이르면 2024년 후반기부터 약 2만여  정이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1981년 첫 국산 기관단총인 K-1A가 특전사에 도입된 이래 40년 만에 주력 화기가 바뀌는 것이다. 향후 이 제품은 공군·해군 및 해병대로도 전력화될 예정이다. 다산기공의 성장으로 수십 년간 한 기업이 독점하던 군용 총기류 시장도 본격적인 경쟁 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됐다.


Plus Point

[Interview] 김병학 다산기공 대표
“미국서 총기는 기호품…컬러풀한 권총 신세계 개척할 것”

김병학중앙대 경영학 학사,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석사
김병학
중앙대 경영학 학사,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석사

김병학 다산기공 대표는 정밀 기계 및 가공 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장인(匠人)’으로 꼽히는 인물로 40여년을 정밀가공 분야에서 일했다.

또한, 경영인으로서 학구열도 남달라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코스를 밟은 엘리트 경영인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조선’은 10월 21일 오후 전북 완주군 다산기공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나 신제품 개발 계획과 그가 장인으로서 겪은 에피소드를 들었다.


회사를 소개해달라.
“1992년 11월 1일 창업했다. 최근 연평균 매출은 600억원 수준이다. 올해는 3분기 말 현재까지 570억원의 매출을 올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성장이 전망된다. 연간 기준으로 하면 750억원의 매출이 기대된다. 이는 오만 경찰청에 납품한 소총 3만 정과 한국군에 K시리즈 부품을 납품한 것이 주효했다.”

경쟁사가 많아 해외 수주가 어려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총기류를 잘 만드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의외로 많지는 않다. 미국·독일·러시아·체코·이탈리아·벨기에 정도다. 중국의 경우 아직은 품질이 좋지 않고, 일본은 해외 영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분단국가인 한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품질도 인정받는다.”

방위산업(방산) 분야는 진입장벽이 높나.
“방산은 판로와 기술 개척이 모두 어려운 분야다. 기계와 제조 분야는 평생의 관심사였고, 과거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중요한 것은 작은 부품부터 하나하나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맨 처음에는 총열부터 시작해서 방아쇠·슬라이드·프레임 등으로 생산 및 수출 부품 개수를 서서히 늘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 총까지 제품이 확대됐다. 그리고 미국과 독일은 물론 러시아까지 세계 유수의 총기류 제작 업체는 거의 다 직접 가봤다. 선진국의 핵심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현재 개발 중인 신제품은 무엇이 있나.
“패셔너블한 권총이다. 그립(손잡이) 부분에 나사를 없애고 간단한 조작으로 누구나 쉽게 그립을 원하는 색으로 교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총기는 스마트폰 같은 기호품이다.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전략인데 아직 이 같은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도 없는 것으로 안다. 11월부터 미국 현지에서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관총의 경우 중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구경도 더 다양화할 계획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창업 초기에는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다. 총기부품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취약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노력으로 제품의 높은 품질, 정확한 납기준수, 경쟁력 있는 가성비 등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해외 업체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국내 방산업체 지정도 받게 되었다. 화가는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 엔지니어는 어떤 걸 해야겠다고 구상하면 바로 실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집요함이다. 악착같이 될 때까지 끝까지 파야 결과물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