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5월 15일 계열사별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몰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온라인 사업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사진 조선일보 DB
롯데그룹은 5월 15일 계열사별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몰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온라인 사업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사진 조선일보 DB

세계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 월마트는 ‘온라인 공룡’ 아마존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2015년 들어 본격적으로 온라인 사업 강화에 나섰다. 그해 온라인 분야에 100억달러(약 10조8000억원)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고, 웹사이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2016년에는 온라인 유통업체인 제트닷컴을 인수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각 지역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에게 바로 배송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한편 미국 고급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은 오프라인 매장을 적극 활용해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구현하기 힘든 ‘상품 체험’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고객이 매장에 가서 다양한 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온라인을 통해 주문하는 형태다. 온라인 기반의 유통 시스템을 접목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온라인이 따라올 수 없는 고급스럽고 편한 쇼핑 환경을 조성해 고객을 유혹하겠다는 것이다.

두 해외 유통업체 사례를 통해 한국의 ‘유통 공룡’ 롯데그룹의 온라인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롯데는 5월 15일 전자상거래(e커머스) 사업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전략의 핵심은 ‘통합’. 백화점·할인점·면세점·홈쇼핑·하이마트·롭스 등 부문별로 각각 운영하던 온라인몰을 하나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롯데는 온라인몰 통합은 물론 시스템 개발과 고객 유지·확보 등 온라인 사업에 향후 5년 동안 3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온라인 사업은 백화점·할인점 등을 운영하는 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맡는다. 이를 위해 롯데쇼핑은 오는 8월 1일 그룹 전자상거래 계열사인 롯데닷컴을 흡수 합병하고, e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한다. 다른 계열사의 전자상거래 조직과 인력도 끌어모은다.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는 5월 15일 열린 간담회에서 “롯데그룹의 온라인몰을 통합, 38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롯데 멤버십 회원과 계열사 매장 1만1000여 개(백화점·마트 등)를 활용해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 유통 강자로 발돋움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가 온라인 사업 강화에 나선 것은 백화점 등 기존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성장 방식으로는 현상 유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롯데 유통 사업의 전체 매출은 40조원에 달한다. 국내 1위다. 하지만 온라인 부문 매출은 17.5%(7조원)에 불과하다. 현재 롯데는 사업 별로 엘롯데(백화점), 롯데마트몰(마트), 롯데인터넷면세점(면세점), 롯데아이몰(홈쇼핑), 롯데닷컴(전자상거래) 등 각각 온라인몰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는 2000년 롯데닷컴을 설립하며 온라인 사업을 펼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을 만큼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2013년을 기점으로 국내에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됐지만, 롯데는 여전히 백화점·할인점 등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실적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롯데쇼핑의 실적을 보면 2014년 영업이익 1조1883억원을 기록하며 최고 실적을 달성한 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5298억원으로 감소했다. 매출은 2015년(29조1276억원) 이후 줄기 시작해 지난해 18조1798억원을 기록했다.

그러자 롯데는 2015년 옴니채널 전략을 꺼내들었다. 옴니채널이란 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구분 없이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를 말한다. 이 전략을 펼치면서 롯데는 계열사 간 온라인 사업 부문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롯데는 2018년 5월에서야 온라인 통합 전략을 발표했다. 올해 백오피스(온라인몰 운영 관리 시스템과 조직체계)를 합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통합 온라인몰은 2020년부터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월마트가 아마존에 맞서기 위해 2015년 온라인 사업 강화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약 3년이란 시간적인 차이가 난다. 국내 라이벌인 신세계그룹과 비교해도 한참 늦었다. 신세계는 2014년 신세계백화점의 신세계몰과 이마트의 이마트몰을 ‘SSG닷컴’으로 통합하며 현재까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는 왜 늦은 걸까. 전문가들은 그룹 계열사가 서로의 이익을 챙기는 데 바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실 롯데 내부에선 온라인 사업을 통합, 하나의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통합 후 어떤 계열사가 더 이익을 챙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고객을 다른 계열사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 결과 계열사별로 온라인 사업을 진행했다. 롯데라는 타이틀만 달았지 그룹으로서 내는 시너지는 제로(0)에 가까웠다.

한류(韓流)로 인해 급격히 증가한 중국 관광객도 한몫했다. 이들은 한국의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겼다. 특히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이 큰 인기를 끌었다. 롯데의 실적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2016년부터 중국 관광객이 줄기 시작했고 롯데의 실적도 급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성장 정체 현상을 겪었는데, 롯데는 중국 관광객 변수가 기대 이상으로 크게 작용했다”며 “현재의 성공에 매몰돼 미래(온라인 사업)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1번가’ 인수 실패, 자체 강화로 방향 전환

롯데의 온라인 사업 강화 물꼬는 예기치 않은 시기에 트였다. 지난해 신동빈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으면서 그룹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신 회장은 올해 2월 법정 구속됐고, 그룹은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자 각 계열사가 성과 내기에 나섰다. 각자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던 때와는 달랐다. 각 계열사·부문의 이익보다 그룹 전체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롯데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롯데는 처음에는 월마트가 제트닷컴을 인수한 것처럼 경쟁력 있는 기업을 사들여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려고 했다. 롯데가 지난해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온라인몰 ‘11번가’를 인수하려고 했던 이유다. 11번가는 G마켓과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인수에 실패했고 자체적으로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의 방향을 틀었다. 롯데는 크게 세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자금력, 백화점·할인점·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 포트폴리오, 38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멤버십 회원이다. 롯데는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우선 백화점·마트·롯데닷컴 등 각각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몰을 하나로 통합해 고객이 보다 편하게 제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계열사 간 경계 없이 제품을 자유롭게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는 형태다.

노드스트롬과 같이 매장에 가서 제품을 실제로 입어보고 모바일로 구매하는 등 온·오프라인 채널 구분 없는 쇼핑 환경도 구축한다. 계열사별로 보유한 고객 3800만 명의 구매 데이터를 통합해 1 대 1 맞춤형 마케팅과 서비스도 제공한다.

오프라인 매장 1만1000여 개를 배송 거점으로 삼고 계열사 간 ‘배송 경계’도 없앤다.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집 근처에 있는 롯데슈퍼·롯데하이마트 등 계열사 매장에서 제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