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 열린 5G 주파수 경매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순용 KT 정책협력담당 상무, 강학주 LG유플러스 공정경쟁담당 상무, 임형도 SK텔레콤 정책협력실 상무. 사진 연합뉴스
통신사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 열린 5G 주파수 경매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순용 KT 정책협력담당 상무, 강학주 LG유플러스 공정경쟁담당 상무, 임형도 SK텔레콤 정책협력실 상무. 사진 연합뉴스

5G(5세대 이동통신)용 주파수를 차지하기 위한 ‘쩐의 전쟁’은 없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5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5G용 주파수 경매가 총낙찰가 3조6183억원으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당초 5G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통신사들이 4조원이 넘는 돈을 경매에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정부가 과열 경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경매를 유도하면서 다소 ‘싱겁게’ 끝났다는 반응이다. 주파수 경매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5G 상용화를 위한 카운트다운도 본격화됐다.

이번 경매에 나온 5G용 주파수는 3.5기가헤르츠(㎓) 대역과 28㎓ 대역 두 개였다. 이 중 28㎓ 대역은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도심지역에서 주로 활용되는 주파수다. 28㎓ 대역에서는 모두 2400㎒ 폭이 경매에 나왔는데, 통신 3사가 800㎒씩 균등하게 나눠가졌다. 통신 3사가 지불해야 하는 낙찰가는 총 6223억원이다. 5G 서비스를 위한 핵심 주파수가 아닌 데다 정확하게 3등분이 가능했기 때문에 경매 시작가(6216억원)와 거의 비슷하게 낙찰가가 정해졌다.

경쟁이 붙은 건 5G 전국망을 구축하는 데 쓰이는 핵심 주파수인 3.5㎓ 대역이었다. 이번 경매에는 3.5㎓ 대역에서 280㎒ 폭이 나왔다. 주파수는 흔히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에 비유된다. 도로가 넓을수록 더 많은 자동차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주파수 폭이 넓을수록 더 많은 이용자가 더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쓸 수 있다. 보통 5G 주파수에서는 10㎒가 있고 없고에 따라 240Mbps의 속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번 경매에서 정부는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한 통신사가 최대 100㎒ 폭까지만 가져갈 수 있게 했다. 100:100:80의 비율로 3.5㎓ 대역 주파수를 나누면 80을 가져가는 통신사의 5G 속도가 480Mbps 정도 느릴 수 있다는 의미다. 

480Mbps는 현재 쓰이는 LTE(4세대 이동통신)로 이용할 수 있는 최고 속도 수준이고, 5G 최고 속도인 20Gbps의 40분의 1 수준이다. 이번 경매는 하루 만에 끝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20㎒를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른 속도 차이는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라서 통신사들이 눈치 싸움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100㎒의 주인공은 자금력에서 앞서 있는 SK텔레콤과 KT의 차지였다. SK텔레콤이 1조2185억원, KT가 9680억원을 각각 썼고, LG유플러스는 8095억원에 80㎒ 폭을 확보했다. SK텔레콤과 KT가 같은 100㎒ 폭을 가져가고도 낙찰가가 2500억원 이상 차이가 나는 건 위치 때문이다. SK텔레콤은 경매 과정에서 2505억원을 추가로 제시해서 가장 높은 위치를 확보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가장 위쪽 주파수를 확보했기 때문에 추후 더 위쪽으로 주파수 폭을 확장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도 80㎒ 폭을 확보하는 데 그쳤지만, 351억원을 추가로 써서 가장 아래쪽 위치를 확보했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다른 공공 주파수와 간섭 문제로 확장이 어렵지만 나중에 기술이 발달하면 주파수 폭을 아래로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 서비스 가능해져

주파수 경매가 끝나면서 5G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통신 3사는 올해 10월 중으로 네트워크 장비 업체와 계약을 마무리 짓고 5G 이동통신망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경매에 사용된 주파수는 올해 12월부터 쓸 수 있는데, 통신 3사는 내년 3월을 상용화 시점으로 잡고 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은 “이번 경매는 통신 3사가 5G 시장에 대한 전망, 투자비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며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 이동통신에 필수적인 3.5㎓ 대역과 28㎓ 대역의 주파수 할당을 마친 만큼 5G를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 혁신을 선도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에서 통신 3사의 총낙찰가는 3조6183억원에 달하지만 이 돈을 한꺼번에 내는 건 아니다. 주파수를 사용하는 첫해에 낙찰가의 4분의 1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사용 기간 동안 분할 납부하면 된다. 사용 기간은 3.5㎓가 10년, 28㎓는 5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매의 낙찰가액 자체가 예상을 밑도는 데다 분할 납부 방식이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 3사가 주파수 대금으로 낸 돈은 8273억원이었다. 과거 세 차례(2011·2013·2016년) 주파수 경매 대금을 더한 가격이다.

여기에 이번 경매 결과를 반영하면 올해 내야 할 주파수 대금은 1조7318억원, 내년은 1조1937억원이다. 정지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주파수 경매로 인한 비용 증가는 통신 3사의 연간 경영 계획에 포함돼 있는 수준”이라며 “주파수를 낮은 가격에 할당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비용 효율화 같은 노력을 통해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의 이수민 수석연구원도 “예상보다 낮은 낙찰가로 경매가 끝났기 때문에 5G 주파수 경매가 통신 3사의 재무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5G 주파수 낙찰가가 예상보다 낮게 결정되면서, 통신 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계에서는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낙찰가가 4조~5조원에 달하면 장기적으로 통신 요금이 오르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총낙찰가가 4조원에도 못 미치면서 이런 우려는 힘을 잃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번 경매는 처음부터 주파수 경매 대금이 통신 요금으로 전가되지 않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주파수 경매와 통신 요금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해외 3G 주파수 경매와 통신 요금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KISDI는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경매 결과가 통신 요금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독일,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4개국은 3G 주파수 경매 낙찰가가 높았음에도 경매 이후 10년간 연평균 요금 인하율은 낙찰가가 낮은 국가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KISDI는 “주파수 경매 대금은 초기 매몰비용(sunk cost)에 해당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통신 요금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며 “경매 대금보다는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활성화돼 있는지, 독과점 상태에 있는지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