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오포·비보가 애플을 넘어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화웨이·오포가 국내에 출시한 스마트폰. <사진 : 조선일보 DB>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오포·비보가 애플을 넘어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화웨이·오포가 국내에 출시한 스마트폰. <사진 : 조선일보 DB>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성장이 무섭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턱밑까지 쫓아왔고, 미래 신성장동력인 드론·가상현실(VR) 등에서도 중국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기술력은 물론 탁월한 가격경쟁력으로 경쟁사들을 누르며 패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스마트폰·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 이어 첨단분야에서 강국으로 도약하면 우리 기업이 설 땅이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빅3’가 올해 스마트폰 1위 가능성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애플의 양강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글로벌 상위 업체들의 점유율이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중국 업체만 유일하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빅3 제조사의 스마트폰 합계 판매량이 사상 처음 애플을 앞질러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급증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빅3의 지난해 1∼11월 스마트폰 출하량이 총 2억5540만대로 조사됐다.

이는 같은 기간 애플의 1억8680만대보다 많고, 삼성전자의 2억8700만대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치다. 중국 빅3 제조사가 애플보다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만 해도 삼성전자가 3억1970만대, 애플이 2억3150만대로 ‘양강구도’가 뚜렷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 판도가 뒤집혔다.

2015년 1억710만대 판매로 처음 1억대를 돌파하며 글로벌 3위 자리를 굳힌 화웨이는 지난해 1억3900만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전체 판매량은 최소 3억대가 넘는다. 실적을 공개하지 않은 화웨이가 올 신년사에서 밝힌 2016년 매출액은 5200억위안(약 90조5000억원)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45% 수준이다.

오포와 비보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11월 오포는 7250만대, 비보는 6100만대를 팔았다.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각각 2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 제조사들의 성장세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초창기 중국산 스마트폰은 ‘짝퉁’과 ‘싸구려’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디자인과 성능이 애플과 삼성전자의 최신 프리미엄폰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대표주자로 이미지를 굳히며 삼성전자를 따돌렸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빅3 제조사가 올해도 약진을 계속해 삼성전자마저 제치고, 합산 스마트폰 출하량으로 세계 1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드론·증강현실 등에서 선도자로 변신해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진은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이항이 개발한 1인용 유인(有人) 드론 ‘이항 184’.
중국은 드론·증강현실 등에서 선도자로 변신해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진은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이항이 개발한 1인용 유인(有人) 드론 ‘이항 184’.


CES 참가 드론 업체 절반이 중국 기업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드론·VR 시장도 벌써부터 중국 업체 중심으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아직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중국 업체 중심으로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1월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 2017. 드론 전시장에 부스를 차린 41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인 22곳이 중국 업체였다. 특히 중국 최대 규모의 드론 업체인 DJI 부스는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햇빛이 비쳐도 선명함을 유지하는 디스플레이 기술과 각종 드론 신상품 및 액세서리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DJI 부스를 관심 있게 지켜봐 화제가 됐다.

드론 시장은 글로벌 1위인 중국 DJI의 공세로 나머지 업체들은 생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2위의 프랑스 드론 업체인 패럿은 최근 전 직원 840명 중 290명을 줄이기로 했다. DJI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당초 목표인 1억유로(약 1260억원)에 못 미치는 8500만유로(약 1000억원)에 그쳤다.

소비자용 드론의 원조 격인 미국의 3D로보틱스는 개인용 드론 생산을 중단하고 산업용 드론에 집중하기로 했다. DJI 등 중국 업체들과 경쟁으로 수익성이 계속 하락하면서 사업을 지속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론 업계의 신흥강자인 DJI는 드론 신제품을 다른 업체보다 빠르게 출시하고, 기존 제품을 할인해주는 전략을 펼치면서 개인용 드론 세계 시장 점유율을 77%까지 확대하는 중이다.

드론 시장에서 DJI 외에도 중국 드론 업체들이 거침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 CES에서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인 이항이 공개한 드론택시는 승객이 좌석 앞에 있는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자율비행을 시작한다. 100kg을 싣고 최고시속 100km로 날 수 있는데, 위급상황에서는 비상착륙 기능이 작동한다.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VR 분야도 중국 업체들이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번 CES의 VR과 증강현실(AR) 전시장은 중국 업체 차지였다. VR 전시장 참가 업체 75곳 중 28곳(37.3%), AR 전시장 참가 업체 24곳 중 6곳(25.0%)이 중국 스타트업이었다. 두 전시장에서 한국 스타트업은 단 2곳뿐이었다. 차세대 산업에서 중국과 한국은 이미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셈이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신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핵심분야에 대한 중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정부 규제에 막힌 한국 첨단산업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드론을 보고 있다.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드론을 보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드론·AR·VR 등 미래 첨단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아직 지지부진하다. 국내에서 첨단산업 육성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로 정부 규제가 꼽힌다.

드론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드론 산업 관련 규제가 일부 완화됐지만 복잡한 절차와 조건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일단 무게가 13kg 이상인 드론은 비사업용일지라도 해당 지방항공청에 ‘장치신고’를 해야 한다. 25kg이 넘으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안전성 인증’도 받아야 한다. 무게와 상관없이 지방항공청이나 국방부의 ‘비행승인’도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중국 드론 산업이 단기간에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로 관련 규제를 확실하게 풀어준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민간용 드론 산업에 대해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인 미비점을 보완하는 사후적 접근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드론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 경쟁력은 이미 갖추고 있지만 규제로 인해 자유로운 발전 시도가 봉쇄돼 세계적인 드론 기업 육성에 실패했다. 우리 정부는 드론을 포함한 첨단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 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가 무산된 데 이어 20대 국회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