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와 구직단념자가 150만명인 시대다. 청년층과 베이비붐 세대, 경력단절여성 등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매년‘신(新)직업’을 발굴해 육성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던 유망한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 널리 확산될 직업에 먼저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매매주택연출가가 방의 가구를 재배치하기 전(위)과 후의 모습. 침대와 테이블 위치를 바꾸고 벽에 시계대신 사진과 미술작품을 걸어 분위기를 살렸다. <사진 : 전성필>
매매주택연출가가 방의 가구를 재배치하기 전(위)과 후의 모습. 침대와 테이블 위치를 바꾸고 벽에 시계대신 사진과 미술작품을 걸어 분위기를 살렸다. <사진 : 전성필>

주부 A씨는 작년 초 거주하던 서울 목동의 99㎡형 아파트를 부동산 중개소에 내놨다. 집이 팔리면 곧바로 주변에 있는 148㎡형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었던 A씨는 급한 마음에 주변 시세보다 1000만원 정도 낮게 집값을 책정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올해 초까지 집은 팔리지 않았다. 부동산에서는 “5층 이하 저층이라는 점 외에는 안 팔릴 이유가 별로 없는데 왜 다른 집이 먼저 팔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 이사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던 A씨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매매주택연출가(홈스테이징 전문가)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고 매매주택연출가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매매주택연출가는 A씨의 집을 둘러보고는 “침대나 옷장 등 가구가 집이 좁고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다”며 “이 가구들의 배치만 다시 해도 집이 금방 팔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매매주택연출가는 약 8시간에 걸쳐 안방 벽면에 붙어 있던 침대를 방 중앙으로 옮기고, 거울 달린 화장대를 벽 한쪽으로 붙이는 등 집 안 가구를 재배치했다. 3일 뒤 집은 시세보다 1000만원 높은 가격에 팔렸다. A씨가 홈스테이징에 들인 돈은 약 100만원이다.


공사없이 간단하게 주택 가치 끌어올려

최근 실내 공사나 리모델링 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주택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홈스테이징(Home Staging)’이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홈스테이징은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벽면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간단한 소품을 활용해 실내 공간을 재단장하는 서비스다. 주택 구매 희망자들에게 집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홈스테이징이 알려지면서 주택 실내 공간 연출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매매주택연출가’가 새로운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에 따라 매매주택연출가를 민간육성 분야로 선정했다.

지난 2월 10일 오후 서울 강서구 송정역 인근 한 정형외과 건물. 약 231㎡(약 70평) 크기의 3층은 병원장 가족이 생활하는 가정집이다. 집주인 이백란(62)씨는 이날 주택매매연출가에게 새로 산 가구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해달라고 의뢰했다.

이씨는 “딸이 결혼해 밖으로 나가면서 좁았던 방 2개를 하나로 합쳐 아들이 사용할 예정”이라며 “이 방에 침대와 옷장 등 새 가구들이 들어와 집이 넓어 보이게끔 홈스테이징을 맡겼다”고 말했다.

매매주택연출가 조석균 인테리어 비디 대표는 가장 먼저 방에 이미 놓여 있는 가구들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아들이 사용할 방 한가운데에는 컴퓨터가 있는 책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컴퓨터용 전선이 방을 가로질러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출입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침대가 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침대 옆에는 옷장이 있었다. 방 왼쪽에는 1인용 테이블도 있었다. 조 대표는 “침대를 재배치해 방의 균형감을 살리는 작업을 먼저 하겠다”며 “컴퓨터 책상도 콘센트가 있는 벽면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 이씨의 동의를 구한 조 대표는 곧바로 방 오른쪽에 있던 침대를 두 개의 창문 사이로 옮겼다. 방의 한가운데에 침대가 있어 좁아 보일 것 같았지만, 출입문 정면 창문 두 개 사이에 침대가 들어서자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후 조 대표는 방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컴퓨터 책상을 방 오른쪽 벽면으로 옮겼다. 방 왼편에 있던 테이블은 컴퓨터 책상 뒤편으로 옮겼다.

조 대표는 “테이블 의자에서 편안하게 쉬기 위해서는 방 안쪽으로 테이블을 옮기는 것이 좋다”며 “옷을 입고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옷장도 출입문 앞쪽으로 옮기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약 20분 동안 아들 방의 가구를 재배치했다. 이어 서재로 쓰일 방도 홈스테이징이 진행됐다. 집주인 이씨는 “가구를 재배치한 것만으로도 집 안 공간이 10%는 넓어 보인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날 이씨의 집 홈스테이징 작업은 약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전체 벽면을 허무는 등 실내 공사와 도배 및 바닥재 인테리어 비용까지 총 7000만원이 들었다. 홈스테이징에는 약 200만원 정도가 들었다.


국내 매매주택연출 시장 걸음마 단계

국내에서는 아직 홈스테이징이 생소한 개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일본 등 해외에서는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다. 미국 콜드웰뱅커 부동산 협회 조사에 따르면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 평균 판매가격은 해당 지역 평균 시세보다 6%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은 그렇지 않은 주택보다 빨리 팔리기도 했다. 미국 부동산 스테이징 협회 조사 결과,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은 일반 주택보다 매물로 나와 팔리는 기간이 평균 21%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홈스테이징은 재료 구매 비용이나 노동력이 인테리어에 비해 적게 들어가 수익성이 높은 편이다. 조 대표는 “홈스테이징만으로 한 달에 400만~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며 “시공비가 들어가지 않는 업무라 노동력을 제외하면 100%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지는 않다. 홈스테이징 업계로 들어가 현장 경험을 쌓으면 매매주택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다. 숙련되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린다. 물론 주택 및 인테리어 관련 전문지식이 있으면 매매주택연출가 업무 적응에 유리하다. 체력과 성실함은 필수적이다. 책장이나 장롱 등 무거운 가구를 직접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매매주택연출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인테리어나 건축디자인과 달리 홈스테이징을 고객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 용산구 이촌동 등 고급 주택가를 중심으로 홈스테이징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조 대표는 “고급 주택 거주민들 사이에서 홈스테이징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의뢰 횟수도 늘고 있다”며 “지난 몇 년 동안 한 달에 1~2건 정도 의뢰가 들어오다 최근 들어 한 달 평균 5~6건으로 늘었다”고 했다.

조 대표는 “원룸이나 사무실 매물이 많은 국내 주택 시장에서 홈스테이징은 다른 매물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홈스테이징을 통해 특별한 시공 없이도 내부 공간을 새롭게 연출할 수 있어 매매주택연출가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keyword

매매주택연출가 매매하려는 집의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새 벽지나 페인트를 바르고 소품을 통해 꾸미는 등 여러 방법으로 집의 가치를 한층 높여 매매가 원활하게 이뤄지게 만드는 직업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업이지만,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협회가 만들어지는 등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