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는 지난해 옷과 가방에 동식물을 요란하게 수놓아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 : 구찌>
구찌는 지난해 옷과 가방에 동식물을 요란하게 수놓아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 : 구찌>

2016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핸드백은 ‘구찌백’이었다. 수많은 명품업체가 매장을 철수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사이 구찌(Gucci)는 지난해 17%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구찌 모기업의 주가는 지난 한해 53% 상승했다. 지난해 환생에 성공한 최고의 브랜드로 구찌를 꼽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해도 구찌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찌의 모기업 케링(Kering) 주가는 지난 16일 242.80유로로,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케링 매출의 60%가 구찌에서 나온다. 

구찌는 5년 전만 해도 해마다 매출이 20% 이상 줄어드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핸드백 시장에 ‘로고리스(logoless·로고가 잘 보이지 않는)’ 열풍이 불면서 로고가 크게 박힌 제품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구찌가 그간 고루하고 절제됐던 이미지를 벗고 화려함을 더하는 등 디자인 파격을 시도하면서 시장에서의 반응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구찌의 부활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 가지 성공 비결이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무명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한 파격 인사. 둘째, 온라인 채널의 강화. 셋째, 고객 맞춤 서비스 라인의 확대다.  


성공비결 1 | ‘빈티지 미학’으로 디자인 혁신

구찌는 지난해 세계 패션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자사에서 13년 동안 묵묵히 일하던 무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44)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

미켈레는 임명되자마자 패션 업계를 뒤집어놓았다. 절제된 구찌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꽃과 나비, 새, 잠자리, 도마뱀 등을 요란하게 옷과 가방에 수놓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마치 할머니 옷장에 깊숙이 넣어둔 옷처럼 촌스럽고 요란했다. 그러나 따뜻한 자연미를 살린 빈티지 미학은 차갑고 획일화된 도시 스타일에 지친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여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됐다. 빈티지란 옛것을 재구성해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개성을 찾아주는 정서적인 콘셉트를 말한다.

세월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던 구찌에 싫증을 냈던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깬 미켈레의 화려한 디자인에 열광했다. 한동안 정체했던 매출액도 증가했다. 2015년 구찌 매출액은 38억9800만유로(약 5조1460억원)를 기록하면서 2014년 34억9720만유로(약 4조6174억원)보다 12% 늘었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취임한 이래 빈티지 ‘긱 시크(geek chic·컴퓨터와 기술 마니아들의 괴짜 패션)룩’을 시도한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구찌는 최근 주요 매장을 바로크 스타일의 페르시안 카펫으로 단장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찌의 2016년 봄·여름 신제품 홍보 영상 장면. <사진 : 구찌>
구찌의 2016년 봄·여름 신제품 홍보 영상 장면. <사진 : 구찌>

성공비결 2 | ‘온라인 전용’ 상품 개발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구색 맞추기 식으로 웹사이트를 운영해 왔던 것과 다르게 구찌는 온라인 판매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구찌는 ‘구찌닷컴’을 통해 ‘구찌가든’이라고 명명된 ‘온라인 온리(only)’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이 상품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하고 온라인에서만 구매 가능한 웹사이트 전용상품이다. 의류 13종, 구찌 최고 인기 가방인 디오니소스백을 포함한 가방 2종, 지갑과 스카프 등 잡화 3종, 신발 2종 등으로 풍성하게 구성됐다. 한국어 버전 서비스를 시작함에 따라 한국 소비자 역시 2~3일이면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구찌는 이 밖에 젊은 작가들이나 유명인을 섭외해 구찌 제품을 활용한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었다. 구찌가 자사 신발 제품 ‘에이스 스니커즈’를 알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젊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 신발을 신고 자유롭게 롱보드를 타는 한국의 ‘롱보드 여신’ 고효주씨와 노르웨이 스냅챗 스타 ‘지오스냅’ 등과 함께 만든 콘텐츠는 구찌 인스타그램에서 조회 수 수십만 건을 기록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는 대부분 고객과의 거리가 멀수록 희소 가치가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 자체를 꺼려왔다. 하지만 구찌의 경우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먼저(2002년) 웹사이트를 여는 등 온라인 분야에서 선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성공비결 3 | DIY 제품으로 고객맞춤 서비스

지난해 미켈레는 구찌 사상 처음으로 고객의 개성을 반영한 맞춤형 디자인 가방인 ‘DIY(Do It Yourself)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인기 제품인 디오니소스백에 다양한 동식물 자수를 넣거나 다양한 색상의 악어가죽과 뱀가죽, 스웨이드(새끼양이나 새끼소 가죽 뒷면을 보드랍게 가공한 가죽) 소재를 장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

밀라노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 플래그십 매장에서 처음 시작한 DIY 서비스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 매장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구찌는 앞으로 에이스 스니커즈와 프린스타운 신발, 남녀 의류 등에도 DIY 서비스를 적용할 계획이다.

구찌 관계자는 “DIY 서비스의 목적은 고객에게 구찌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공동 디자이너가 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Plus Point

명품 불황속 구찌 성장 비결

구찌는 창업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1921년 피렌체에 최고급 가죽 공방을 세우며 탄생했다. 그가 1953년 세상을 떠난 후, 손자 파울로 구찌가 자신의 이름으로 핸드백과 액세서리, 와인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자 구찌 이사회의 반발이 심해졌다. 그 사이 재정난도 악화됐다. 이에 구찌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1994년 디자인 팀원이었던 톰 포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격시키며 가족 경영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변화를 맞이한다. 톰 포드는 젊은층을 공략해 구찌를 고급스러우면서도 도발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어 1999년 케링그룹(구 PPR그룹)과 제휴를 맺어 독립 브랜드가 아닌 럭셔리 대기업의 소속이 됐다. 케링그룹은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럭셔리 그룹으로 스텔라, 이브생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등의 브랜드를 보유했다.

구찌는 이후 프리다 지아니니를 거쳐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가성비 열풍과 SPA 브랜드의 약진으로 명품 산업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을때 구찌는 파격적인 다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켈레가 얼굴이 된 이후로 구찌의 매출은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루이비통 상하이 매장은 이달 6년만에 문을 닫았고, 루이비통 산시성, 타이위안점도 함께 폐쇄됐다. 프라다, 버버리 등도 잇따라 지점을 닫고 있다. 심지어 프라다의 경우 2015년 매출이 전년 대비 8% 줄고 순이익은 27% 급감하는 등 5년래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