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분기 2조원 영업이익 시대’를 열 전망이다. 지난 2014년 분기 영업이익 ‘1조클럽’ 가입 3년 만이다. 영업이익률도 40%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메모리반도체 호황 속에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와 함께 가격 역시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조333억원, 2조311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5%, 영업이익은 311%나 증가한 수치다. 주력 제품인 D램의 영업이익은 1조원 후반대로 예상되고 낸드플래시는 3000억~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올해 실적 전망도 장밋빛이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東芝) 인수에 성공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올해 SK하이닉스가 전년 대비 매출액은 40.8~50.9%, 영업이익은 173.8~189.4%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호황 등으로 인해 SK하이닉스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2조원 넘게 R&D에 투자

SK하이닉스가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액 17조1980억원, 영업이익 3조276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D램 시장의 침체로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저조했다. 2분기에는 5000억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4분기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결국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섰다. 2015년 4분기 5위로 내려앉은 지 1년 만이다. 지난해 4분기 전체 반도체(메모리+비메모리) 시장점유율 1·2위는 인텔(16.0%)과 삼성전자(12.1%)가 각각 차지했다. 지난해 1∼3분기(1∼9월) 동안 5위였던 SK하이닉스는 연간 점유율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3위(4.7%)로 복귀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시장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 측면도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 중심 회사로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다진 덕분이다.


비결 1 | 과감한 투자로 주력제품 경쟁력 강화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장치산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다. 2011년 3조5000억원에 불과했던 SK하이닉스의 시설투자금액은 올해 2배 가까이 늘어나지만 연구·개발(R&D) 비용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2011년 8340억원 수준이던 연구·개발비는 이미 2015년에 2배가 넘는 1조756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2조967억원을 집행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2011년 8%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매출액 대비 12.2%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주력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했다.

반도체 메모리 시장은 크게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뉜다. SK하이닉스는 D램 부문에선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 분야의 경쟁력은 아직 약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의 71.8%를 D램, 25.3%를 낸드플래시에서 거뒀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부문에 대한 집중 투자로 삼성전자와 격차 줄이기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3차원(3D) 낸드 기술을 개선해 올해 상반기 중 대량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과감한 투자로 유명하다. 2012년 반도체 업계 전체 투자가 전년 대비 10% 감소하던 상황에도 SK하이닉스는 오히려 10% 투자를 확대하면서 경쟁력을 대폭 확보한 바 있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는 이후 3년(2012~2015년) 연속 사상 최대 경영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올해 최대 관심사는 SK하이닉스의 일본 도시바(東芝)의 메모리 사업 부문 인수 여부다. 도시바는 세계 2위의 낸드플래시 반도체기업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 5위다. 지난해 4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37.1%로 1위였고, 도시바가 18.3%로 2위, SK하이닉스가 9.6%로 5위였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단숨에 2위에 올라선다. 도시바는 6월 하순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는 우선협상자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도시바는 우선협상자 선정 후 공정거래법(독점금지법) 심사 등을 거쳐 내년 3월 말 메모리 사업 매각을 최종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기술력과 점유율 등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결 2 | 인수·합병, 인재 영입 통해 기술혁신

SK하이닉스는 최근 5년간(2012~2016년) 극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2년 2273억원 적자였던 영업이익은 2013년 3조3798억원, 2014년 5조1095억원, 2015년 5조3361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4분기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SK하이닉스의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꼽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20나노 초반급 D램을 생산하고 있으며, 차세대 제품인 10나노급 D램 양산을 올 하반기부터 시작한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용량인 8GB 모바일 D램을 출시해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기술혁신’은 설립 때부터 시작됐다. 설립 이듬해인 1984년 12월 국내 최초로 16KB S램 시험생산에 성공하며 단기간에 반도체 사업을 궤도 위에 올려놨다. 이후 SK하이닉스는 1995년 세계 최초로 256MB SD램 개발, 2003년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 2007 퓨전메모리 ‘DOC(Disk On Chip) H3’ 양산 등의 혁신을 이루며 반도체 업계를 선도했다.

SK하이닉스의 기술혁신 노력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인재 영입 등에서도 드러난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이탈리아의 ‘아이디어플래시’와 미국의 ‘LAMD’를 인수해 낸드플래시 개발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또 2014년 벨라루스의 ‘소프텍’ 등을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이들 인수기업을 R&D센터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기술 인력의 확보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최고 기술전문가로 꼽히는 박성욱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 밖에도 같은 해 이석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를 미래기술연구원장 전무로 영입하기도 했다.


비결 3 | 최태원 회장의 앞을 내다본 선택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하이닉스는 1983년 현대그룹 계열사로 출범했다. 10조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면서 2001년에는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이후 10년간 채권단의 관리 아래 겨우 연명했다. 채권단이 경영을 맡으면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1년 SK에 인수됐다. 3조3000억원이 넘는 인수 금액에 업계에서는 ‘과도한 투자’라고 우려했다.

6년이 지난 현재, 그때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SK하이닉스가 SK그룹의 ‘효자’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이런 성공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과감한 선택’이 밑거름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하이닉스 인수 당시 SK그룹 내부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태원 회장은 이 같은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 반도체 사업은 최 회장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SK는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며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가 오일쇼크로 인해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부터 하이닉스 인수를 염두에 두고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다보스포럼 등에서 만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세계적인 기업인들과 반도체 산업에 대해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의 성장가능성을 자신한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에 나섰다. 그룹 내부에선 “자칫하면 우리가 망할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무작정 밀어붙이기보다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경영진과 같이 반도체 산업을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이들을 설득했다. 반도체 전문가를 불러 수차례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그룹 내부의 공감대를 모을 수 있었다.

업계와 시장에선 SK와 하이닉스가 제대로 시너지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최 회장이 주목한 것은 반도체와 SK 관계사의 사업 내용에 따른 시너지가 아니라, 사업 모델에 따른 시너지였다. 부품인 반도체를 납품받는 곳은 휴대전화나 태블릿PC 등의 단말기 제조업체이고, 다시 이 제조업체들이 통신사에 단말기를 납품하는 구조에 주목했던 것이다.

최 회장은 SK텔레콤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단말기 업체가 하이닉스 반도체를 구매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하이닉스의 마케팅력이 커지고 시장이 확대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최 회장의 의지도 대단하다.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정식 편입된 바로 다음 날인 2012년 2월 15일, 최 회장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연구소(현 미래기술연구원)였다. 이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 최 회장의 선택이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에너지·화학과 통신의 양대 축이었던 SK그룹의 사업구조에 반도체를 추가하면서 3대 핵심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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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낸드플래시 D램은 개인용 컴퓨터(PC)와 서버 등의 저장장치로,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등에 사용된다. 낸드플래시는 저장단위인 셀을 수직으로 배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형화·대용량화가 가능한 메모리 반도체다. 이에 비해 D램은 낸드플래시보다 정보처리 속도가 1만배 빨라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적합하다.

Plus Point

올 반도체 시장 호황

올해 반도체 시장이 두 자릿수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는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기존 5%에서 11%로 상향 조정했다. 무엇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반도체 시장의 수요를 이끌면서 이에 필요한 D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으로 고해상도 사진촬영과 동영상 시청 등이 일상화되면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Plus Point

SK하이닉스 제2 전성기 연 박성욱 부회장
연구·개발에만 30년 매달린 메모리반도체 전문가

장시형 부장대우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부회장)는 메모리반도체 전문가로 SK하이닉스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부회장은 연구·개발만 30년 넘게 한,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전문가다.

박 부회장은 울산대 재료공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대전자산업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했다. 이후 하이닉스반도체 미국생산법인, 연구소장, 연구개발총괄(CTO) 등을 역임했다.

하이닉스가 SK그룹으로 인수된 뒤 SK하이닉스 연구개발총괄부사장을 거쳐 2013년 2월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반도체 제조 관련 10여건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 거듭된 적자에 파산 위기에 몰린 하이닉스는 원가절감을 위해 비싼 장비를 개조해 다시 쓰는 ‘블루칩프로젝트’를 시도했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 미국 오레곤 공장 3곳에서 진행했는데, 박 부회장이 당시 오레곤 공장의 기술총괄을 맡아 가장 먼저 성공했다.

SK하이닉스를 ‘기술 중심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한 것도 이러한 이력에서 비롯된다. 그는 대표이사에 선임된 지 하루 만에 조직개편을 실시해 연구소와 마케팅본부 산하의 상품기획 부문, 시스템 반도체사업 부문 등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뒀다. 연구소는 미래기술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미래기술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경쟁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스스로 타협하지 않는 높은 패기를 보여달라.” 지난 2월 10일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올 상반기 입사자 360여명과 가진 ‘경영진과의 대화’에서 박 부회장이 당부한 말이다. 경영진과의 대화는 경영진이 직접 신입사원과 만나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조직문화를 설명하는 소통의 장이다. 박 부회장은 상·하반기 한 차례씩 열리는 이 자리에 반드시 참석한다.


말보다 행동으로 솔선수범

박 부회장은 추진력과 철저함을 갖춘 리더로 평가받는다. 조용하지만 주도면밀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력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하기 때문에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가끔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머리를 식힌다. 존경하는 경영자로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를 꼽는다. 회사 관계자는 말수가 적고 남의 말을 잘 듣는 덕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중심 경영자다. CEO가 되기 전부터 연구소에 밤늦게 남아 일하는 직원들과 기술적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걸 즐겼다. CEO가 된 이후에도 대부분 시간을 이천 공장에서 보낸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궁금한 게 있으면 담당 임직원을 사장실로 부르는 대신 직접 공장으로 내려갈 때가 많다고 알려졌다.

그의 경영철학은 ‘스마트하고 독하게’로 요약된다. ‘깊이 고민해 새로운 방안을 만들고(스마트), 목표 의식을 갖고 집요하게(독하게) 일하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