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의 대명사 몽블랑은 가죽 제품, 시계, 주얼리 등 다양한 상품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진 : 몽블랑>
만년필의 대명사 몽블랑은 가죽 제품, 시계, 주얼리 등 다양한 상품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진 : 몽블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공통으로 즐겨 쓰던 애장품은 무엇일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조약서에 서명할 때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의 손에 동시에 들려 있던 물건은? 바로 몽블랑이다.

역사 속 중대한 의사결정자들의 손에는 몽블랑이 들려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 기록 문화의 상징물이었던 몽블랑.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몽블랑 만년필을 수십 개 갖고 있을 만큼 애호가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은행에는 물러나는 행장이 신임 행장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성공한 비지니스맨의 필수품이라는 이미지로 성장했지만, 때는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필기 문화’라는 아날로그적인 유산을 가진 몽블랑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몽블랑은 중국∙한국∙홍콩 등 아시아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세계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고무적이다.


“몽블랑 한국 매출 세계 3위”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몽블랑 매출 중 한국 매출 신장률이 1위를 기록했다. 가죽 제품과 시계 부문에서 한국 매출액은 전 세계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김혜경 몽블랑코리아 차장은 “2014년 한국법인을 설립한 후 3년 연속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몽블랑은 성공’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면서 “일반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중국 관광객 매출이 많은 데 반해, 몽블랑은 국내 고객층이 탄탄해 사드 같은 변수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 시장에 뛰어들어 디지털 럭셔리 분야의 개척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몽블랑의 성장에 대해 세 가지 성공 비결이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만년필을 통해 구축한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 둘째, 장인정신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혁신. 셋째, 유럽 공방을 기반으로 한 상품 다각화다.


성공비결1 프리미엄 전략으로 희소가치 높여

몽블랑 하면 떠오르는 대표 상품은 만년필이다. 가장 유명한 펜은 1924년 출시된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명작)’으로 새까만 몸체와 정교한 장식의 금빛 펜촉, 육각형 모양의 하얀 별 엠블럼이 특징이다. 하얀 별은 눈 덮인 몽블랑 산봉우리를 표현한 것으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몽블랑의 만년필은 독일 함부르크 본사 장인들에 의해 200단계가 넘는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만년필 한 자루가 만들어지는 데만 6주 이상이 걸린다.

몽블랑이 명품으로 굳어진 데는 장인정신 외에도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있다. 1987년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로버트 플라트는 취임 이후 20달러 이하의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희소성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당시 정보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만년필의 사용자가 줄 것이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로버트 플라트 전 CEO는 “방에 앉아 사이버 갤러리를 둘러보는 시대가 왔어도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 모나리자의 진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메일과 자료에 파묻힐수록 노트 한 권과 만년필 한 자루가 더 소중해질 것”이라며 우려를 잠재웠다. 실제로 차별화 마케팅을 시행한 후 몽블랑 만년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 이상 증가했다.


성공비결2 ‘디지털 럭셔리’ 시장 개척

몽블랑은 3월 12일 ‘몽블랑 서밋 컬렉션’으로 스마트 워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몽블랑의 스마트 워치 서밋 컬렉션은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결과물이다. 구글의 웨어러블 OS인 안드로이드 웨어2.0을 탑재하고, 외형은 기존의 시계 라인인 몽블랑 1858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살렸다.

몽블랑이 디지털 기술력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몽블랑은 시곗줄에 스마트 기술을 탑재한 e-스트랩을 선보인 데 이어, 종이에 필기하면 디지털 기기로 내용이 전송되는 ‘어그멘티드 페이퍼’를 출시해 필기 문화에 디지털 흐름을 접목한 바 있다.

제롬 랑베르 리치몬드 그룹 이사(전 몽블랑 CEO)는 “몽블랑의 새로운 혁신을 담은 몽블랑 서밋 컬렉션은 단순하면서도 기능성이 뛰어난 제품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비결3 유럽 공방 통한 ‘상품 다각화’

몽블랑이 기존의 필기구에 가죽 제품, 시계, 주얼리 등을 추가해 종합 패션 브랜드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다. 이 과정에서 몽블랑은 라이선스나 외주 제작을 통한 사업 확장 대신 유럽 각 지역에 공방을 설립하고 직접 제조하는 ‘정공법’을 구사했다. 필기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가죽 제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계는 스위스의 매뉴팩처(수공예 공장)에서 제작하는 식이다.

몽블랑은 1997년에 카르티에,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등 고급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에 인수∙합병되었다. 뒤늦게 뛰어든 시계 사업이 빨리 자리를 잡은 이유도 전통적인 스위스 시계 제조방식을 고수한 덕분이었다. 현재 몽블랑은 스위스에 위치한 두 곳의 시계 매뉴팩처에서 전통 제조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희승 롯데백화점 수석 바이어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만년필이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했지만, 최근엔 가죽 제품과 시계의 성장으로 전 라인이 고른 매출 구성비를 보인다”고 말했다.

다각화 전략으로 인해 몽블랑은 스위스 시계 시장 위축에도 타격을 적게 받고 있다. 리치몬트그룹의 매출이 주력사업인 시계 부문의 부진으로 하락한 것과 달리, 몽블랑이 주도하는 가죽 제품과 문구류의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몽블랑의 사업 안정성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Plus Point

몽블랑의 지속된 혁신, 불황에도 끄떡없어

몽블랑은 1906년 독일 함부르크의 상인 알프레트 네헤미아스와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 문구상 클라우스 포스가 공동 창업했다. 처음엔 ‘심플로 필러 펜’이라는 회사로 창업했으나, 1909년 몽블랑으로 개명했다. 몽블랑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동그라미에 하얀 별모양 엠블럼을 만든 것도 이때다.

럭셔리 필기 문화를 상징하던 몽블랑은 1990년대 들어 가죽 제품과 시계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했다. 이어 1997년에는 카르티에,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등 고급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에 인수·합병되면서 시계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최근에는 e-스트랩, 증강 종이, 스마트 워치 등 장인정신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제품으로 ‘디지털 럭셔리’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몽블랑은 한국 등 전 세계 120여개 국가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1975년 유로통상을 통해 소개됐으며, 2014년 한국법인 설립 이후 3년 연속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여성용 시계의 매출 신장이 두드러진다.

몽블랑은 매년 ‘몽블랑 문화 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수상자에게 해당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을 수여하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이 시상식은 1995년까지 유럽·아시아·북미 등 3대륙에서 시행하다가, 지금은 전 세계 11개국으로 확대됐다. 한국은 2004년 시상국으로 추가됐다. 금호문화재단의 고 박석용 회장이 수상했으며 작년에는 유상덕 송은문화재단 이사장이 그 영예를 안았다.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