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 : 세브란스 병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 : 세브란스 병원>

2016년 10월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최기홍 간담췌외과 교수와 김명수 이식외과 교수는 국내 최초로 로봇수술기를 이용해 간(肝) 공여자의 간을 절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환자는 만성 B형 간염에 의한 중증 간경변증으로 치료법이 간이식밖에 없었다. 환자의 아들에게서 간을 받은 한 환자는 간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퇴원했다.

간 이식 수술에서 간 공여자는 간을 절제하기 위해 개복해야 한다. 간 공여자가 수술 후 회복하는 데도 보통 한 달 정도 걸린다.

로봇수술로 간을 절제하면 개복 부위도 줄고 공여자의 회복 기간도 대폭 줄어든다. 로봇 팔이 몸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구멍과 절제된 간을 꺼내는 데 필요한 10㎝ 정도 크기의 절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당시 간 공여자인 환자의 아들은 열흘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김명수 교수는 “장기 공여자는 수술 후 합병증과 긴 회복 기간, 큰 수술 흉터 등 여러 요인으로 장기 기증을 꺼려하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장기를 기증받는 환자도 심리적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로봇수술이 환자와 공여자의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난도 외과수술인 간 이식의 국내 최초 로봇수술 성공은 세브란스병원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보여준다. 세브란스는 의료진의 기초 의학 지식과 노하우를 로봇수술이라는 첨단 기술과 융합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해왔다.

이병석 신촌세브란스병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으로 시작한 만큼 환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사명감을 갖고 병원을 이끌 것”이라며 “현재 세계적 수준인 한국의 의료 서비스로 4차 산업혁명은 물론 한국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濟衆院)’을 모체로 하는 연세대 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은 132년 동안 한국의 의학과 의료 발전을 선도해왔다. 세브란스병원의 탄생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4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의사로 입국한 H.N.알렌(Horace Newton Allen) 박사가 1884년 12월 갑신정변으로 부상(負傷)을 입은 조정 실세를 구하고 고종황제의 신임을 얻은 뒤 1885년 1월 ‘병원설립안’을 제출했다.

이 안에 따라 1885년 4월 10일  국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이 개원한다. 왕실 중심이었던 광혜원은 곧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제중원은 ‘모든 이를 구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어 1886년 3월 29일 제중원의학교도 개교해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이 시작된다. 알렌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하루 최고 260여명의 환자를 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제중원과 제중원의학교는 관리들의 부정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00년 4대 원장이었던 에비슨 박사가 조선에서의 근대식 병원 설립을 ‘만국선교대회’에 호소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미국 클리블랜드의 대부호 L.H.세브란스가 1만달러를 기부, 병원 재건축이 시작돼 1904년 기부자의 이름을 딴 국내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개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일제 수난과 6·25전쟁을 겪은 후 기독고등교육기관인 연희대학교와 병원의 통합이 결정돼 1957년 연세대 의과대학으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1962년 서울 신촌캠퍼스로의 이전사업에 따라 의대와 세브란스병원 건물이 완공되고 상위 조직으로 연세의료원을 설치, 지금의 세브란스병원에 이르게 됐다.

세브란스병원 로봇 수술장면 <사진 : 세브란스 병원>
세브란스병원 로봇 수술장면 <사진 : 세브란스 병원>


수술로봇 ‘다빈치’ 국내 최초 도입

근대 역사와 함께 최초의 현대식 병원으로 성장해 온 세브란스병원은 ‘최초’ 타이틀이 많다. 1996년 이뤄진 첫 전국의과대학 평가에서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됐고 의학연구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대학 연구부를 창설한 이후 1933년 첫 영문 의학잡지인 ‘저널오브세브란스(Journal of Severance)’를 창간했다. 이 잡지의 명맥을 잇는 ‘연세 메디컬 저널(Yonsei Medical Journal)’은 2014년 국내 의대 발간 잡지 중 처음으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학술지에 이름을 올렸다. 세브란스병원은 또 2013년 아시아 최대 동물실험실 및 첨단 연구 장비를 갖춘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를 개소해 의료산업화로 연계하는 중개연구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지닌 ‘최초’ 타이틀 중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2014년 종합 암병원으로 탈바꿈한 연세암병원이다. 세브란스병원은 196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암전문 센터를 건립하고 3년 전인 2014년 새 건물을 신축 이전하면서 국제 수준의 연세암병원을 개원했다. 연세암병원은 세계 최고 암병원으로 알려진 미국 MD앤더슨암센터와 자매 결연을 한 국내 유일의 암병원이다.

2013년에는 항암 연구 분야 세계적 석학인 백순명 교수가 연세암병원에 합류했다. 백 교수는 유방암 항암치료제 ‘허셉틴’이 수술 환자들의 재발을 현저히 낮춘다는 임상 연구를 주도했다. 또 새로운 유전자 검사법을 개발해 항암 화학요법이 불필요한 환자군을 선별하는 방법을 제시해 올 4월 호암 의학상을 수상했다.

연세암병원은 암 예방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예방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암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병석 원장은 “암에 걸린 뒤 재발한 환자들의 유전체와 세포를 분석해 좀 더 나은 항암제를 선택하도록 하는 개인화된 치료를 암병원에서 제공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로봇수술기 ‘다빈치’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곳도 세브란스병원이다. 12년 전인 2005년 다빈치를 최초로 도입한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1만6000건의 다빈치 수술을 기록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다빈치로 수술한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로봇수술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정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빈치로 얻은 경험과 노하우가 세브란스병원이 개발한 국산 로봇수술기 ‘레보아이’의 밑거름이 됐다.

세브란스병원과 LCD 장비업체 미래컴퍼니는 10여년 동안 국산 로봇수술기 개발에 매달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다빈치에 버금가는 성능을 자랑하는 로봇수술기 ‘레보아이’다.  최근에는 나군호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가 레보아이를 이용해 전립선암 수술 임상시험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난이도가 있는 전립선암 수술에 성공한 로봇수술기로는 다빈치에 이어 레보아이가 세계 두 번째였다. 레보아이는 현재 식약처 의료기기 인증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병석 원장은 “레보아이가 의료기기 인증을 받으면 유지보수 비용이 비싼 다빈치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 수출 등 의료산업적 측면에서도 기대하는 성과가 크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3월 말 국내외 정보기술(IT)기업들과 함께 의료용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임클라우드, 센서웨이, 셀바스AI, 마젤원, 디엔에이링크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손을 잡았다. 의료진은 의료 분야 빅데이터를 활용한 아토피와 심혈관, 당뇨, 천식 등 주요 질환의 진단 및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한국형 의료분야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세웠다.

IT기업들과 의료 빅데이터 활용 협력을 주도한 장혁재 심장내과 교수는 “세브란스는 자체 예산을 데이터 정비 사업에 투입해 양질의 데이터를 기업들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데이터 정비에 약 100억원, 정밀의료 시대에 맞는 의료정보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약 5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밀의료란 유전자 분석과 개인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 개인별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해 아토피·당뇨·천식 진단

의료 빅데이터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강조돼 왔지만 정작 데이터가 정제돼 있지 않아 활용하기 어려웠다. 의료 기관들이 데이터를 정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데다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개인 의료 정보를 데이터로 구축해 활용하는 데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데이터 정제에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사업 모델이 많지 않은 측면도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적극적으로 정밀의학 구현에 나서는 이유는 IBM 왓슨 등의 AI 진단 시스템이 국내 병원을 장악할 경우 정밀의료 플랫폼의 시장 구조가 외국 기업 위주로 공고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장 교수는 한국이 정밀의학을 구현하는 데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 비해 한국은 4~5개 병원에 중요한 의료 데이터가 집중돼 있고 건강검진이 의무화돼 양질의 데이터가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국내 의료 데이터로 외국 기업의 AI 시스템을 고도화시켜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면서 “주요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정밀의학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혁신과 융·복합 연구를 이끄는 이들은 중견 의료진들이다. 나군호 비뇨기과 교수를 비롯해 심규원 신경외과 교수, 나동욱 재활의학과 교수, 박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 허용민 영상의학과 교수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나군호 교수는 로봇수술기 다빈치의 국내 첫 도입에 앞장섰다. 다빈치 개발사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이 있는 미국에서 비뇨기암에 한정됐던 활용 범위를 대부분 암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수술기법 개발에 앞장섰다. 특히 지난 10년간 국산 수술로봇 ‘레보아이’ 개발과 임상시험을 주도하면서 국내 의료 혁신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14년 6월 국내 최초로 3D프린터를 이용한 두개골 성형수술을 성공한 심규원 신경외과 교수는 3D프린터 활용 연구를 이끌고 척추뼈, 발꿈치뼈 이식 등으로 활용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2014년 당시 심 교수는 사고로 두개골이 손상된 환자에게 3D프린터를 이용해 손상된 부위에 정확히 맞는 티타늄 소재 인공두개골을 제작해 이식하는 데 성공, 주목받았다.


환자가 로봇을 장착한 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가 로봇을 장착한 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유명 의료진이 융·복합 의료 연구 이끌어

재활의학과의 나동욱 교수는 교통사고나 낙상으로 척수가 손상된 하반신 마비 장애 환자들의 재활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강대 공대 연구팀과 ‘외골격 착용로봇’을 개발, 작년 10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에 처음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이배슬론은 재활보조 로봇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대회다.

박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와 허용민 영상의학과 교수는 진단키트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박중원 교수는 알레르기 검사 시 사용되는 외국산 진단키트를 대체하기 위해 국내 벤처기업과 공동 연구를 통해 지난 2009년 국내 처음으로 알레르기 진단 키트 개발에 성공했다.

허용민 교수는 유전체 분석을 통해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체외진단 의료기기 시약과 관련 치료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허 교수는 지난 2010년 연세 의대 교수로는 처음으로 교내 벤처인 ‘노보믹스’를 창업하기도 했다.

이병석 원장은 “연구중심병원으로서 기초 의학 지식을 산업화에 응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성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의료 산업화는 국민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이병석 신촌세브란스병원장
“병원도 무한경쟁 시대, 빠른 변화가 생존 비법”

“병원들은 이제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전문성과 의료진의 역량 등 많은 부분이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맹아’는 보건의료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병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병석 신촌세브란스병원장은 발 빠른 변화를 통해 존스홉킨스병원이나 메이요클리닉, MD앤더슨암센터 등 세계 굴지의 병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세브란스’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이 보는 세브란스병원의 한발 앞선 변화는 12년 전인 2005년부터다.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국내 처음으로 로봇수술기 ‘다빈치’를 도입했으며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약 물질과 임상, 의료기기 기술에 대한 특허, 산업화를 시도했다.

이 원장은 “2016년 말 기준으로 누적된 특허 등록 신청은 1667건, 등록건수는 623건에 이른다”며 “의과대학은 연 1000억원 이상의 외부 연구비를 수주해 최근 3년 동안 국내 의과대학 중 가장 많은 외부 연구비를 수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령, 2015년 연세대 의과대학 윤호근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와 정재호 외과학교실 교수팀이 연구·개발한 위암 표적치료용 항암신약 개발 기술을 바이오기업 ‘ATGen’에 이전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특허를 관리하고 이전해주는 전담부서가 따로 있다.

미국 텍사스 의대 부속병원이자 세계적인 암센터로 알려진 MD앤더슨암센터는 2011년 기준 병원 총수익의 16.5%인 6억달러 이상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나왔다. 존스홉킨스병원도 같은 해 총수익 대비 10.6%인 2억5000만달러 이상을 연구·개발 분야에서 얻었다. 신약과 의료기기 등 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통한 영리병원을 지향해 의료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세브란스병원의 비전이다.

이 원장은 “선진국에서는 10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을 찾아보기 어렵다(세브란스병원은 2017년 3월 기준 총 2442병상을 운영한다)”며 “선진국 병원의 의사수는 세브란스보다 많은 곳이 대부분인데 상당수 의사들이 연구 분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병원은 재정적으로 취약하다. 병원의 수익 구조가 정부의 건강보험시스템으로 묶여 있어 앞을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국내 대학병원들은 병원 경영을 진료수익과 보험수가(급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게 이 원장의 분석이다.

이 원장은 “이런 구조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영리병원화, 적극적인 외부 연구비 수주, 특허 건수 확대 및 산업화로 이어지는 구조가 궁극적으로 병원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원격 의료 시스템도 선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의사들이 밥그릇 문제로 원격 의료 도입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이 원장은 “해외 환자들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데 그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툴은 원격 의료”라며 “세브란스는 외국인 환자 대상 원격 진료를 준비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한국관광공사 지사에 원격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