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불가리 매장. <사진 : 블룸버그>
영국 런던 불가리 매장. <사진 : 블룸버그>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나오는 제품이라 해도 ‘급’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엔트리(entry) 제품이 있는가 하면, 워낙 귀해 웬만한 매장에는 진열조차 되지 않는 최상급 제품이 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BVLGARI)가 선보이는 하이주얼리 컬렉션은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제품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VIP를 대상으로 하는 하이주얼리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인 명품 시장은 죽고 있지만, 희소성이 큰 ‘명품 중의 명품’인 우버럭셔리(uber luxury)의 매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희승 롯데백화점 수석바이어는 “최근 5년 사이 하이엔드 파인주얼리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지난 2월 명품관 에비뉴엘에 전시한 불가리 주얼리 세트(8억원대) 역시 문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성공비결 1 | 보석의 자산가치

대부분 명품 브랜드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코리아의 매출은 2013년 이후 꾸준히 성장세다. 2년 전 이미 국내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불가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654억원으로 전년(1097억원) 대비 5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94억원으로 전년(125억원)과 비교해 두배 넘게 늘었다. 앞서 2015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5%, 30% 증가했다.

하이주얼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보석의 ‘자산 가치’ 때문이다. 보석은 증여세를 피하면서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어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불가리 하이주얼리 컬렉션은 전 세계에 1600여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테크 가치도 크다. 김종목 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 회장은 “안전자산인 금 투자를 하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금은 보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진짜 부자들은 일찍이 보석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다이아몬드의 경우 보관과 이동이 용이하고 희소성과 환금성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에 따르면 1캐럿 다이아몬드 가격은 지난 10년 사이 약 두 배 뛰었다.

지난해 보석에 대한 개별소비세가 완화된 점도 호재다. 작년 1월부터 보석에 대한 26%의 개별소비세 과세 기준가격이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또 매 공정 부과되는 데서 반출 할 때 한번 과세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많은 패션 전문가들은 불가리의 성공 비결을 시대와 취향의 변화를 제품에 적절히 반영한 것에서 찾고 있다. 불가리의 장인들은 스타일이 시간의 흐름, 사람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불가리의 스타일은 고전 정신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디자인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공비결 2 | 차별화한 디자인

불가리의 주얼리는 창립 초기부터 프랑스계 브랜드인 카르티에나 반클리프 앤드 아펠, 미국계 브랜드인 티파니나 해리 윈스턴과는 사뭇 달랐다. 특유의 대범하고 관능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채 조합은 이탈리아 브랜드만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고, 이내 불가리 고유의 스타일로 대중들 사이에서 각인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풍요, 부활, 불멸을 상징하는 뱀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스타일의 시계와 주얼리를 선보인 불가리의 대표적인 제품은 ‘세르펜티(Serpenti·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함) 컬렉션’이다. 세르펜티 컬렉션은 뱀의 비늘 모양에서 힌트를 얻어 개별 부속을 연결해 뱀이 똬리를 트는 동작을 시계와 주얼리의 디자인으로 형상화했다. 1940년대 출시해서 70년이 넘도록 옐로 골드와 자개,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핑크 골드와 오닉스 등의 소재를 활용한 다채로운 제품으로 나왔다.

니콜라 불가리(Nicola Bulgari) 불가리 이사회 부회장은 “과거의 명성만으로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성공하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공비결 3 | 현지화 전략 

불가리의 가장 큰 강점은 현지화 전략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불가리는 각 시장 소비자 입맛을 고려해 나라별로 출시한 제품에 약간씩 변형을 준다. 프란체스코 트라파니 최고경영자는 과거 상하이에서 열린 비즈니스 오브 럭셔리 포럼에서 “아시아 고객의 경우 약간 널찍한 디자인의 반지를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해 아시아 시장에서 판매하는 반지류는 타 시장에 비해 폭을 넓게 디자인했으며 또 아시아 고객들이 섬세하면서도 상큼한 과일향을 좋아한다는 점을 감안해 이 지역을 위해 ‘옴니아 크리스털라이즈’ 향수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불가리가 패션과 거리 있는 호텔 산업에 명품업계 최초로 진출한 이유도 불가리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불가리 전체 사업에서 호텔은 비즈니스라기보다는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불가리가 무엇이든 탁월하게 해내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불가리는 불가리 호텔이 해당 도시의 핫스폿이 되도록 레스토랑과 장소 등 분위기에 신경 썼으며 해당 지역에 대한 환원에도 치중했다. 트라파니는 “불가리 호텔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불가리 스타일을 나타내고 강조한다. 모든 호텔 디자인이 확실하게 불가리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Plus Point

그리스 銀 세공 집안서 시작

불가리 ‘세르펜티(Serpenti·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함) 컬렉션’ . <사진 : 불가리>
불가리 ‘세르펜티(Serpenti·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함) 컬렉션’ . <사진 : 불가리>

불가리의 시작은 ‘은(silver)’ 이었다. 불가리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는 그리스의 작은 마을 에피루스에서 대대로 은을 세공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은을 세공하던 소티리오는 1879년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했고, 한 그리스 상인의 매장 진열대 한편에 자신의 상품을 놓고 팔았다.

이후 불가리는 1970년대 뉴욕에 최초의 해외 매장을 연 데 이어 파리, 제네바로 진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 1980년대 초반에는 스위스의 뉴샤텔에 불가리 시계 라인을 담당하는 ‘불가리 타임’ 을 설립하고 2011년에는 브랜드의 역사, 장인정신을 지키며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에 합류했다. 불가리는 현재 창업자 소티리오의 3세대 후계자인 파올로(Paolo)와 니콜라(Nicola)가 각각 회장과 부회장을 맡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불가리의 명성은 실로 대단했다. 1952년 영화 ‘로마의 휴일’ 촬영 당시 오드리 헵번이 불가리의 비아 콘도티 본점을 방문해 여러 주얼리를 주문한 것은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뱀을 휘어감은 듯한 형상의 불가리 세르펜티 주얼리를 착용하고 나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