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청자동차의 SUV 브랜드 하푸 <사진 : 블룸버그>
창청자동차의 SUV 브랜드 하푸 <사진 : 블룸버그>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올 2월 선정한 전 세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 영향력 순위에서 지프와 랜드로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중국 브랜드 하푸(哈弗·HAVAL).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작년까지 14년 연속 SUV 1위, 19년 연속 픽업트럭 1위 판매 업체. 2016년 100만대 생산과 순이익 100억위안(약 1조6500억원)을 돌파한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

1990년 69명에 불과한 직원들 급여도 못 주던 부실투성이 특장차 생산공장의 위탁 경영을 맡겠다고 나선 고졸 출신의 26세 젊은이가 27년 만에 자회사 40여곳에 총직원 7만여명의 자동차 그룹을 일구며 이뤄낸 성적표다.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에 본사가 있는 창청(長城)자동차는 지난해 107만4500대를 팔아 목표(95만대)를 초과 달성했다. 매출과 순이익은 984억위안(약 16조3000억원)과 106억위안(약 1조7500억원)으로 7년 새 각각 8배와 10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웨이젠쥔 창청자동차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웨이젠쥔 창청자동차 회장. <사진 : 블룸버그>

픽업트럭 생산으로 출발

브랜드파이낸스가 작년 10월 발표한 ‘2016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100강(强)’에서 창청은 30위지만 중국 브랜드 중에선 1위에 올랐다. 창청의 성장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45%(1분기 기준)를 차지하는 토종 브랜드의 약진을 보여준다.

웨이젠쥔(魏建軍∙53) 창청자동차 회장은 설립된 지 6년 된 집체소유제(한 마을이 집단으로 소유권을 갖지만 의결권을 지방정부가 행사하는 사실상 국유기업) 기업을 위탁경영하면서 턴어라운드를 시킨 덕에 받은 현금 인센티브(세후 이익의 10%)를 차곡차곡 쌓은 뒤 이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웨이 회장이 1998년 46%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오너 경영’을 하게 된 배경이다.

웨이 회장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갑작스러운 작은아버지의 사망이었다. 1984년 설립된 창청공업공사는 자동차를 냉장차나 유조차로 개조하는 공장을 운영했다. 이를 경영하던 작은아버지가 1989년 세상을 뜨자 웨이 회장의 부친은 사람을 보내 위탁경영을 시켰다. 하지만 부채가 200만위안(약 3억3000만원)으로 불어나고 직원들 급여도 못 줄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동차와 무관한 공장에서 일해온 웨이 회장이 직접 경영해보겠다며 손을 들었다.

처음부터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1993년 승용차 자체 생산을 시도했다. 수작업으로 개조해 만든 승용차를 팔려고 할 때 정책 리스크가 덮쳤다. 1994년 자동차 산업정책 시행과 함께 리스트 관리 제도가 실시된 것이다. 리스트에 못 들면서 생산을 할 수 없게 돼 첫 번째 좌절을 겪었다.

기회는 1995년 미국과 태국 시장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찾아왔다. 도로 곳곳에서 픽업트럭을 목격한 웨이 회장은 귀국 후 시장 조사를 했다. 당시 중국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한결같이 승용차 생산에 매달렸다. “우리 기술과 자원은 모두 승용차를 만드는 경쟁자들에게 뒤진 상태였다. 그런데 픽업트럭을 만드는 곳은 부채비율이 높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유기업들이어서 비교적 (경쟁력이) 약했다.” 웨이 회장이 ‘디어(DEER)’란 브랜드로 첫 픽업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유다.


늑대의 공격성과 토끼의 생존의식 주문

승부처는 성능 대비 낮은 가격, 즉 좋은 가성비였다. 가격을 6만~7만위안으로 설정했다. 당시 유행하던 호화 픽업트럭의 가격 10만위안(약 1600만원)에 비해 30~40% 싼 편이었다. 1997년 1700대 팔리던 창청의 픽업트럭은 1998년 7000대로 급증하면서 중국 1위에 올랐다. 1999년 1만3000대로 1위 굳히기를 하면서 19년 연속 1위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2002년엔 역시 당시엔 경쟁사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SUV를 출시하면서 이듬해인 2003년부터 1위 SUV 업체로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웨이 회장은 “어떤 기술이나 인재, 장비 등을 투입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뭘 해도 안 되지만 정확한 방향으로 일하면 뭘해도 잘못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픽업트럭과 SUV를 택한 방향이 성공의 절반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창청은 중국의 SUV시장이 급성장하자 가장 큰 수혜기업으로 부상하게 됐다.

창청이 지난해 생산·판매한 SUV는 93만8000대로 중국에서 팔린 SUV 10대 가운데 한 대는 창청의 SUV 브랜드 하푸였다. 특히 하푸 가운데 H6는 58만1000대가 팔려 4년 연속 단일 브랜드 판매 1위에 올랐다. H6 판매량은 작년 12월의 경우 8만대를 돌파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89.2% 급증했다.

웨이 회장이 위탁경영을 할 때부터 내세운 기업이념은 ‘매일 조금씩 진보’다.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랑투(狼兔·늑대와 토끼)행동’을 하라고 지시했다. 늑대처럼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도적으로 공격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토끼처럼 강력한 생존의식과 위기의식을 갖고 유연하게 빨리 반응하는 능력을 갖춘 직원이 돼야 한다는 게 웨이 회장의 주문이다.

강한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웨이 회장은 ‘전념·전문·전문가’를 브랜드 이념으로 설정했다. 연구·개발에 매달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창청자동차는 2015년에만 연구·개발에 28억위안(약 4600억원)을 투입했다. 연구 인력도 7000여명에 이른다. 웨이 회장이 연구·개발에서 견지하는 원칙 중 하나가 ‘과도한 투입’이다.

창청자동차는 10억위안(약 1650억원)을 투자해 중국에서 가장 크고 수준이 높다고 자평하는 45㎢ 규모의 자동차 테스트장을 설립했다. 50억위안(약 8200억원)을 투자해서 만든 자동차 기술센터는 26만㎡ 규모에 이른다. 2007년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과기부 등 5개 부처가 국가급 기업기술센터로 인정한 곳이다. 2015년엔 발개위로부터 국가급 우수기업 기술센터란 칭호도 받았다. 작년 10월 중국 과학기술부는 창청자동차 산업단지를 국가 과학기술성과 사업화 시범원구로 지정하기도 했다.

동종 업체 간 기술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초 창청자동차와 14개 회사들이 스마트자동차와 교통시스템 개발을 위한 혁신센터를 세운 게 사례다. 글로벌 연구자원 확보에도 나섰다. 작년 1월 일본 요코하마에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창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첫 번째 연구센터다.


해외시장 공략 박차

창청자동차는 연구·개발에서부터 사후서비스까지 모든 과정에서 최고를 지향한다. 올해 3월 2016년 중국 자동차 애프터서비스(AS) 탁월서비스상을 받기도 했다. 하푸의 경우 AS 만족도지수가 798포인트로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지난해 14.5% 증가한 2811만900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중국이지만 같은 기간 수출은 81만대로 7.2%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수출을 금액으로 보면 114억2000만달러로 8.2% 감소했다. 저가 자동차 수출이 많았다는 얘기다. 중국이 자동차 수출 대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작년 중국 자동차 수출은 상하이 치루이, 베이징 화천, 장후이자동차순으로 이뤄졌다. 창청은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개도국 중심으로 시장을 공격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2013년 3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모터쇼에 출품한 중국 유일의 자동차 회사이기도 하다. 창청의 국제화는 2006년 이탈리아에 SUV 500대를 판매하고 유럽 지역을 상대로 미니 밴 수출에 나선 게 신호탄이 됐다. 그해 중국 상무부와 발개위는 창청에 국가급 완성차 수출기지 기업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창청은 2009년 진출한 호주에서 올해 SUV를 5000대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2년 불가리아와 이란에서 각각 창청자동차가 보낸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 가동에 들어가는 등 에콰도르·이집트·에티오피아·인도네시아·우크라이나 등지의 현지업체 공장에 녹다운 방식의 수출을 늘리고 있다. 2015년 9월 러시아에서 공장 착공에 들어가는 등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다. 창청은 미국에서도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멕시코에 공장을 세워 북미 시장 진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자동차공장에서 만든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 인상 방침을 밝히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창청은 2020년 이전까지 북미 시장 진출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2020년 하푸 판매량 200만대를 돌파해 세계 SUV 판매 1위 업체가 되겠다는 비전도 숨기지 않는다.

창청자동차에 드리운 그림자도 적지 않다. 우선 실적과 괴리된 주가다. 창청은 2003년 홍콩증시에 중국 민영 자동차 회사로는 처음 상장했고, 2011년에는 상하이증시에도 상장했다. 상하이증시에서 창청은 2015년 4월 최고치를 찍었다. 상하이모터쇼에 새로운 SUV를 내놓자 주가가 59.5위안까지 오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창청의 주가는 12.21위안(6월 8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최고점 대비 79%나 밀린 것이다.

부진한 실적의 배경 중 하나가 향후 성장동력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창청의 질주에 카펫을 깔아준 SUV시장의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창청의 판매량은 6만8900대로 작년 5월(7만1500대)보다 3.76% 감소했다. 올 들어 5월까지 판매량이 39만6300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3.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창청의 SUV 판매량은 34만22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6.54%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창청의 SUV가 전년 대비 35% 이상 많이 팔린 것과 비교된다. 창청의 1분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8.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률도 3.2%포인트 하락한 22.1%에 그쳤다.


창청자동차의 프리미엄 SUV 웨이의 실내. <사진 : 블룸버그>
창청자동차의 프리미엄 SUV 웨이의 실내. <사진 : 블룸버그>

미래 성장동력 찾기 고심

중국 전체의 SUV 판매량이 감소세를 겪은 탓이다. 4월 중국의 SUV 판매량은 67만4000대로 16.8% 감소했다. 올 들어 4월까지 3월을 제외하곤 모두 감소세를 겪고 있다.

창청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급화와 전기자동차에서 찾고 있다. 4월 상하이모터쇼에 프리미엄급 새 SUV ‘웨이(WEY)’를 내놓았다. 가격이 16만~18만위안대로 올해에만 5만6000대 판매 목표를 세웠다. 5월엔 누적 판매 60만대인 창청C30 승용차를 순수 전기자동차로 개조한 모델을 처음으로 출시했다. 전기 SUV는 2018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하지만 시장 진입 초기 경쟁이 심하지 않았던 픽업트럭이나 SUV와 달리 고급 SUV와 전기차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창청 앞에 난관이 적지 않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슝안(雄安)신구 개발 사업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제2의 선전으로 육성될 슝안신구가 바로 창청의 본사가 있는 바오딩시 인근이기 때문이다. 2015년 말 톈진과 바오딩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돼 1시간 거리로 좁혀지면서 대도시에 거주하는 인재 유치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Plus Point

현대차 중국서 SUV 출시 제때 못 해 위기

현대차 베이징 매장. <사진 : 조선일보 DB>
현대차 베이징 매장. <사진 : 조선일보 DB>

현대자동차가 중국 진출 1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베이징현대는 5월 판매량이 3만51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65% 감소했다. 올 들어 4월까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한 23만1100대에 그친 데 이은 것으로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현대는 중국 승용시장신식연석회 기준으로 3월부터 중국 승용차 판매량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작년만 해도 6위를 차지했지만 ‘기타’로 분류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4월 기준으로 베이징현대의 순위가 17위까지 밀렸다고 전한다.

베이징현대의 중국 측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그룹의 회장이자 베이징현대 회장인 쉬허이(徐和誼)는 4월 상하이모터쇼에서 “정치와 경제, 시장 경쟁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 라고 말했다. 롯데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 부지를 제공한 2월 말 이후 급속도로 심화된 반한(反韓) 정서가 베이징현대의 판매에 직격탄을 안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실적 부진은 예고된 것으로 SUV 시장의 급성장에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만 해도 창청에 이어 중국 SUV시장에서 2위를 기록한 베이징현대는 지난해엔 창청 SUV 판매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8만4542대 판매에 그쳤다. 순위도 5위로 미끄러졌다. 중국 토종 창안자동차와 둥펑닛산, 상하이GM 등에 SUV 판매량을 추월당한 것이다.

베이징현대는 작년 10월 가동에 들어갔던 허베이 창저우(滄州)공장을 올 3월 말에 일시 가동중단하고, 대부분 중국 내 공장에서 잔업을 멈추는 등 재고 조정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 여파로 현대차와 동반진출한 한국의 협력업체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베이징에 있는 현대차 협력업체들 사이에서 파업으로 인한 조업 중단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일부 협력업체 공장은 잔업을 포함 매달 4500위안을 급여로 줬는데 잔업이 중단되면서 2500위안 수준으로 급여가 줄자 근로자들이 보조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충칭(重慶)에 8월께 완공하려던 베이징현대 공장도 판매 악화로 가동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충칭에 동반진출한 협력업체들은 공장을 계속 놀릴 수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일부는 물류비를 감수하고라도 현대차의 베이징 공장에 납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소화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