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차세대 항공기인 B787-9의 모습. <사진 :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차세대 항공기인 B787-9의 모습. <사진 :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지난 몇 년간의 실적 부진을 털고 다시 날아오를 채비를 마쳤다. 증권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올해 7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전망이 맞다면 대한항공은 5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것이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항공 여행객과 항공 화물 물동량이 늘고 있고, 수익성이 좋은 중장거리 노선을 강화하는 대한항공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여행객 늘고 항공 화물도 증가

그동안 대한항공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기업 지배구조도 개선되고 있다.

올해부터 대한항공의 새로운 수장이 된 조원태 사장은 한진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손을 떼고 대한항공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진해운 등 부실 자회사에 대한 지원 부담이 사라지면서 대한항공의 발걸음이 여러모로 가벼워졌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항공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 수는 2238만3190명으로 전년 대비 15.9% 증가했고, 올해도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항공 화물 물동량도 계속 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한국의 대표 수출 상품인 반도체, 휴대전화 같은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출 물량이 늘어났다. 올해 1분기 대한항공 항공 화물 매출액은 6397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대한항공 화물 운임이 전년 대비 3.5% 오르는 등 항공 화물 부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업계 실적에 큰 영향을 끼치는 환율과 국제유가도 호전됐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구입 때문에 대규모 외화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실적이 악화되고 반대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실적이 좋아진다. 올해는 원화 강세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말 1200원을 웃돌던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최근 1140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대한항공은 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추정한다. 환율 하락으로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에만 7000억원이 넘는 외화환산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제유가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40달러대다. 강성진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유류비가 영업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항공업계에 유리한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며 “2016년 상반기까지 지속된 저유가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유가 안정화 효과는 올해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5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여객·화물 수요 증가와 환율·국제유가 안정화에 힘입은 것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업계는 올해 대한항공이 7207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의 전망이 맞는다면 2012년 2595억원의 순이익을 낸 이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실적 개선이 확실시되면서 증권사들은 대한항공 목표주가를 잇따라 높여 잡고 있다.

저비용항공사의 성장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항공사에 악재가 됐다. 국내 노선이나 단거리 해외노선에서 저비용항공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대형항공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들과 출혈 경쟁을 지속하기보다는 중장거리 노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대한항공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인 ‘코스모 스위트’ . <사진 :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인 ‘코스모 스위트’ . <사진 : 대한항공>

델타항공과 합작, 태평양 노선 공동 운영

세계 최대 항공사 중 하나인 미국 델타항공과의 합작 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항공은 이달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에서 조인트벤처(합작회사)를 운영한다는 내용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조인트벤처는 항공기 좌석 일부를 다른 항공사에 위탁 판매하는 ‘공동운항(Code Share)’이나 마일리지, 체크인 카운터 등을 공유하는 항공동맹(얼라이언스)보다 진일보한 협력 방식이다. 태평양 노선에 한해서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한 회사처럼 움직인다. 수익과 비용을 공유하고, 두 회사의 항공기를 이용하는 탑승객에게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대한항공을 이용해 미국을 방문하는 탑승객은 델타항공의 미국 국내 연결편 항공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델타항공을 이용해 한국이나 아시아를 방문하는 탑승객도 마찬가지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두 항공사의 조인트벤처는 미주 250여개, 아시아 80여개 도시에서 항공 노선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미주노선 운영 비용을 절감하고 환승객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장거리 노선을 위한 항공기 도입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인 B787-9을 2019년까지 총 10대 보유할 계획이다. B787-9은 좌석 수가 250~290석으로 중형급 항공기지만 연료 효율성이 좋아 장거리 운항이 가능하다. 차세대 초대형 항공기인 B747-8i도 2015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10대가 도입된다. B747-8i는 기존 B747-400보다 동체 길이가 5.6m 길어서 50여석의 좌석을 추가로 넣을 수 있다.

대표적인 중장거리 노선인 미주노선과 유럽노선에서 대한항공의 점유율은 각각 48%, 32%에 달한다. 이런 중장거리 노선에는 저비용항공사가 진출하기 힘든 만큼 대한항공의 선전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여객사업 노선별 매출 비중을 보면 미주노선과 유럽노선이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데, 조인트벤처와 중대형 항공기 도입에 힘입어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차세대 항공기 도입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항공시장 네트워크를 미주,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등으로 대거 확대할 계획”이라며 “현재 운항 도시가 132개인데 2019년까지 140여개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에 대한 프리미엄 서비스도 대한항공의 강점 중 하나다. 대한항공은 1997년부터 ‘모닝캄 클래스’라는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닝캄 클래스는 좌석 등받이가 150도까지 뒤로 젖혀지고, 개인용 모니터를 최초로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이후 대한항공의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은 승객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전했다.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개선

대한항공의 최신 퍼스트 클래스 좌석인 ‘코스모 스위트(Kosmo Suite)’는 좌석 폭이 등받이를 세웠을 때는 24인치(60.9㎝)지만 침대 모드로 180도 뉘였을 때는 80㎝까지 넓어진다. 개인용 옷장이 좌석에 포함돼 있고 슬라이딩 도어가 장착돼 쾌적한 분위기에서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다. 대한항공은 코스모 스위트 좌석을 만들기 위해 영국의 항공기 좌석 전문회사인 아큐맨(Acumen)에 설계를 의뢰했다.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 장착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남다르다. 대한항공은 많은 승객이 스마트폰 사용 환경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해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의 리모컨을 터치가 가능한 제품으로 바꿨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글로벌 항공사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항공기 좌석과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한항공은 글로벌경영협회가 실시하는 글로벌고객만족도(GCSI) 조사에서 12년 연속으로 항공여객운송서비스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Plus Point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직원과 고객 목소리 직접 듣는 ‘소통 경영’으로 무장

이종현 기자

“김포공항에서 근무하는데, 메뉴·반찬 등을 비롯한 식사 여건이 너무 열악합니다. 사내에서 운영하는 식당 수준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방안을 좀 찾아주세요!”

지난 3월 대한항공 사내 익명 게시판인 ‘소통광장’에 올라온 글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이 글을 읽자마자 김포공항의 대한항공 직원용 식당으로 향했다. 대한항공 임직원 복지를 담당하는 임원과 함께였다. 조 사장은 직원용 식당에서 직접 식사를 한 뒤, 그 자리에서 담당 임원에게 식사 단가를 높이고 다른 식당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 경쟁을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의 사소한 불평이나 불만도 놓치지 않고 해결해주는 조원태 사장의 ‘소통경영’의 단적인 사례다.

조 사장은 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대학원(MBA)을 나온 뒤 2003년 한진그룹 IT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담당(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기획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 대한항공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뒤 올 1월 사장에 취임했다. 조 사장의 취임 일성은 ‘소통’이었다. 조 사장은 한진그룹 임원세미나 자리에서 “회사 구성원 간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조 사장의 소통경영은 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조 사장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대한항공 노동조합 방문을 택했다. 대한항공에는 조종사노조, 조종사새노조, 일반노조 등 3개의 노동조합이 있는데 조 사장은 각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노조 관계자들과 대화를 가졌다. 지난 3월에는 파업을 앞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를 직접 만났고 그 결과 조종사노조가 파업을 취소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문제해결 답 찾아

조 사장은 평소에도 직원들과 소탈한 만남을 자주 갖는다. 올 설날에는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승무원 브리핑실을 방문해 비행을 준비 중이던 객실승무원들을 격려했고, 차세대 항공기인 B787-9 도입 행사를 치른 뒤에는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고객서비스 강화를 위해 직접 현장에 나서기도 한다. 2009년 여객사업본부장이었던 조 사장은 B777-300ER 항공기의 명품 좌석 사양 선정을 위해 모델을 자처했다. 직접 누워보고 좌석의 크기와 사양을 결정한 것이다. 조 사장은 “과거의 항공기가 기성복이었다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도입한 항공기는 맞춤복”이라며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에게 기존 서비스를 그대로 제공하는 것은 퇴보이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