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한방병원이 있는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전경.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경희대한방병원이 있는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전경.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뇌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과 혈액이 혈관을 통과하지 못해 뇌세포가 괴사하는 뇌경색은 응급 수술 과정에서 신경(神經)을 잘못 건드리면, 후유증이 남는다. 손발, 다리 일부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거나 발음이 새는 등 언어 장애도 나타난다.

김성수 경희대한방병원장은 뇌졸중(腦卒中) 한방재활치료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그는 한약과 침 치료로 뇌혈류를 상승시키거나 염증 발생을 막아 뇌졸중 치료 후 마비, 감각 장애, 실어증 등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로도 선임됐다. 


전문의·한의사 140여명이 진료

경희대한방병원과 한의학연구원이 진행한 치매 전조 현상 개선에 관한 임상 시험도 주목받고 있다. 인지 장애가 있는 실험 쥐의 뇌를 전기 침(鍼)으로 자극했더니 인지 능력이 20% 향상됐다. 치매 전조 현상인 인지 장애 개선에 한방 침의 효능을 입증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한방병원인 경희대한방병원은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의학의 표준화와 과학화를 선도하며 동서양 의학 협진이라는 치료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

140여명의 각 진료과별 전문의와 한의사가 매년 40만명의 입원 및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국제적 수준의 임상 인프라인 ‘한약물연구소’와 ‘한의약임상시험센터’를 중심으로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 마련을 위한 임상연구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학교법인 경희학원은 경희대한방병원 외에 경희대병원, 경희대치과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양의학과 치의학, 한의학 협력진료와 정밀의학 등 산하 의료기관의 역량을 한데 모은 ‘후마니타스 암병원’의 준공(2018년)도 앞두고 있다.

경희학원 설립자인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과대학인 동양의과대학을 인수해 경희대와 통합했다. 동양의대는 1947년 설립된 동양대학관이 모태다. 동양대학관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인가를 받아 서울한의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가 1957년에는 동양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경희대한방병원 약제실. 경희대한방병원은 엄격한 품질 관리로 한약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경희대한방병원 약제실. 경희대한방병원은 엄격한 품질 관리로 한약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침으로 마취하고 맹장수술 성공

조 박사는 동양의대를 합병한 뒤 1966년 경희대 의과대학을 설립, 국내 최초로 동서의학을 망라한 의학 교육기관으로 면모를 갖추고 병원 설립 작업을 추진했다. 1971년 10월 경희대병원과 경희대치과병원, 경희대한방병원이 복합된 동서의학의 요람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경희대한방병원은 설립 이후 양·한방 협진으로 탁월한 성과를 거둬 주목을 받았다. 개원 1년 뒤인 1972년 9월 침구과의 류근철 교수 연구팀이 침술 마취를 이용한 맹장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1973년에는 침술 마취로 이를 뽑는 발치술도 성공했으며 3년 뒤에는 침술 마취에 의한 제왕절개 수술도 성공했다.

경희대한방병원의 노력은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았다. 198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경희대한방병원을 전통의학연구협력센터로 지정했고, 2004년에는 세계적인 의과대학인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한의학 분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

지난 2012년에는 경희대한방병원 연구진과 한국한의학연구원, 중국중의과학원 등 연구진이 공동으로 알레르기 비염에 침 치료가 과학적인 효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 238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코막힘이나 콧물 증상이 36.4%, 눈 가려움이나 두통 등 증상은 29.8%, 수면장애나 감정 등 삶의 질이 37.4%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원장은 “경희대한방병원은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하는 한국산업브랜드파워 한방병원 부문 1위를 10년 연속 달성했다”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한방병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한방병원은 한의사 한두명이 맥을 짚고 침을 놓는 일반적인 한의원과는 달리 전문진료과가 세분화돼 있다. 간장·조혈내과, 심장·순환내과, 위장·소화내과, 폐장·호흡내과, 신장·내분비내과, 한방부인과, 사상체질과, 한방신경정신과, 한방안·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침구과, 한방피부과 등에 약 140여명의 한방 전문의가 포진해 있다.

세분화된 전문 진료과 외에도 질병 예방과 광범위한 건강관리를 위한 전문진료센터 및 클리닉도 있다. 한방중풍, 척추관절, 안면마비, 한방여성의학, 한방소아청소년, 한방건강진단, 비만 등 7개의 센터와 암클리닉 등이다.

김 병원장이 직접 이끄는 한방중풍센터는 중풍 재활 환자가 약 200병상 가까이 채워질 정도로 중풍 재활 치료가 활발하다. 정형외과 수술을 받고 난 뒤 한방재활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경희대한방병원의 장점으로 꼽힌다.

김성수 원장은 “중풍 재활 환자가 약 200병상 가까이 채워질 정도로 중풍 재활 치료가 활발하다”며 “한약과 침 치료를 통해 뇌혈류를 상승시키거나 염증 발생을 막고 뇌혈류를 개선해 환자의 만족감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진용 기획진료부원장이 이끄는 한방소아청소년센터도 유명하다. 이 교수는 비염·축농증·식욕 부진·아토피피부염·야뇨증 등 다양한 소아 질환과 성장 부진, 허약아, 수험생 관리 등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에 대한 양·한방 협진은 동서협진실이 주도한다. 동서협진실은 협진이 필요한 환자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 뇌졸중, 치매, 고혈압, 당뇨 등 현대 성인 질환에 대한 협진 치료도 진행한다.

양·한방의 협진이 필요한 환자에 대한 판단과 의학 치료는 물론 한약 및 침 치료를 병행해 암, 당뇨에 따른 합병증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현재 뇌졸중, 치매, 고혈압, 당뇨 등 현대인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인 질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연구중이다.


경희대한방병원 탕제실. 체계적인 제조 설비를 갖췄다.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경희대한방병원 탕제실. 체계적인 제조 설비를 갖췄다. <사진 : 경희대한방병원>

엄격한 품질 관리로 한약 신뢰도 높여

진단·생기능의학과는 인체의 상태를 정량적으로 평가, 관리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진단·생기능의학과는 질병과 건강 상태의 경계를 뜻하는 ‘아건강(亚健康) 상태’를 중점 관찰한다.

아건강 상태란 기존 검사로는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건강한 사람은 5%이고 질병에 걸린 환자는 20%이며, 나머지 75%는 아건강 상태다. 진단·생기능의학과 박영배 교수가 한의학적 시각에서 각종 생기능 검사를 통해 건강지표를 산출하고 건강 유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약재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승인 제도를 도입했다. 한약재 유통과정의 신뢰도를 높이고 안전한 한약재를 시중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경희대한방병원은 식약처 승인 업체의 약재만 공급받는 동시에 최상 등급의 원료 수급을 위해 생산자와의 계약방식을 통해 약재를 직접 재배하고 구매한다.

경희대한방병원은 식약처 기준 외에 3가지 원칙을 더해 약재를 관리하고 있다. 우선, 생산지로부터 원형 상태로 약재를 구입하고 표백제, 잔류농약, 중금속, 발암물질 검사 등을 통과한 약재만 쓴다. 수급된 원료는 반드시 항온, 항습, 방충 시설이 완비된 장소에 보관한다. 이미 검증된 한약재도 병원 자체 품질검사 시설을 통해 성분검사, 잔류농약 검사 등을 한 번 더 시행한다.

경희대한방병원은 환자가 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한약 제형(劑形)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매년 3~4종의 새로운 제형을 개발, 현재 40여개의 새로운 한약물을 출시했다. 캡슐형 제제(製劑), 트로키형 제제(녹여먹는 형태), 젤리형 제제 등이다.

대표적인 캡슐형 제제인 ‘거풍청혈단’은 혈액순환장애 관련 뇌질환에 유효한 한약제제로, 출시 이후 약 50만포 이상의 처방이 이뤄졌다. 트로키형 제제의 대표격인 ‘청인유쾌환(인후통이나 기침에 효능)’은 지금까지 약 1500만포 이상이 팔렸다. 이 밖에도 약효가 작용부위에 직접 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샴푸형 제제, 연고 제제, 비누형 제제 등의 외용제제를 개발했고 비만치료에 활용되는 선식형 제제도 개발했다.


한약·양약 동시 투여로 치료 효과 높여

경희대한방병원은 또 한의약품의 임상시험을 이끄는 핵심 연구기관 ‘한의약임상시험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한의약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의약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수립,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약재의 세포실험과 동물실험 등을 통해 약리학적 작용과 약재의 유효성분을 연구한다. 동물실험을 통해 한약과 양약의 병용 투여 시 인체 변화를 각종 분석기기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동서의학을 결합한 약물병용요법의 유효성 연구를 추진하고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김 병원장은 “다양한 제형개발과 약리효과 연구를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동시에 보장된 한약을 개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며 “한약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전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대통령 주치의’ 김성수 경희대한방병원장
“동서의학 융합 역량 높여 한의학 표준화 이룰 것”

“한방과 양방이 같은 건물에 있어 동서의학을 융합하는 국내 유일 의료기관이 경희대한방병원입니다. 한의학적 치료의 표준화를 통해 선진 한의학의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김성수 경희대한방병원장은 양·한방 협진과‘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의 성공적인 정착 및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추나요법이란 수술을 하지 않고 척추 질환을 치료하는 비수술 치료법으로 척추와 주변 인대, 근육을 키워 허리 통증과 디스크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밀고 당기거나 마찰을 일으켜 체형을 교정하는 식이다.

추나요법은 2002년 한국 한의학으로는 최초로 뇌신경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U.C.어바인 의과대학의 선택과목으로 채택돼 임상에서 사용할 만큼 효과와 효능을 인정받았다.

김 원장은 “한의학은 정부 보험정책에 적용될 때 객관적인 표준화가 돼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며 “추나요법의 경우 2018년부터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의학의 표준화가 곧 한의학이 대중화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김 원장을 포함한 경희대한방병원 교수들이 추나요법을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환자의 치료 방법이나 기간, 진료비 등을 표준화하는 ‘한의학 임상표준진료지침’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원장은 한방 치료가 응급 상황에서는 양방 못지않은 효과가 있다고 자부하며 일화를 소개했다. 3년 전 그가 스페인 여행을 할 때 동행했던 80대 현지 노부부 중 부인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공공의료시설이 열악한 스페인에서 김 원장은 응급 처치로 침을 놓고 마사지를 하며 비상약을 먹였다. 쓰러진 할머니는 응급 처치를 받고 15분이 지난 뒤 체온이 정상화되고 1시간 반가량 뒤 의식을 차리고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해외에 다닐 때도 항상 휴대용 침을 갖고 다닌다. 김 원장은 “스페인 할머니는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고맙다는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주치의로도 활동하고 있다. 6월 초 대통령 진료를 위해 청와대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한방주치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생겼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방주치의가 자리잡아 협진이 활성화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한의사는 매년 12개 대학에서 900여명이 배출된다”며 “한의학에 뜻을 품은 젊은 인재들이 연구 역량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축된 한방의료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