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소호에 위치한 에버레인 쇼룸(왼쪽)과 에버레인 웹사이트. <사진 : 에버레인>
뉴욕 소호에 위치한 에버레인 쇼룸(왼쪽)과 에버레인 웹사이트. <사진 : 에버레인>

여름을 맞아 패션 유통가가 일제히 할인에 돌입했다. 최대 70%까지 내려간 파격적인 할인가에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다 보면 문득 이 옷의 제조원가가 얼마인지 궁금해진다. 대체 원가가 얼마길래 이렇게 할인을 하는 걸까?

미국 온라인 패션업체 에버레인(Everlane)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에버레인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부풀려 판매되는 패션 시장에 반기를 들고 고급 원단과 안전한 공급처, 투명한 원가 공개 등을 내세워 기존 패션기업들을 위협하는 차세대 패션기업으로 부상했다.

에버레인의 매출은 2013년 1200만달러(약 135억원)에서 2015년 5000만달러(565억원), 2016년 1억달러(1130억원)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기업가치는 2억5000만달러로 추산된다.


성장비결 1 |
원가 공개해 소비자 신뢰 확보

에버레인 웹사이트의 ‘박스-컷 티 드레스’의 상품 페이지에는 “우리는 고객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문구와 함께 ‘진짜 원가(True Cost)’가 상세히 설명돼 있다. 이에 따르면 원재료비가 4.79달러, 인건비 3.7달러, 관세 98센트, 운송비 50센트로 총원가는 10달러 정도다. 에버레인은 여기에 이윤 15달러를 더해 판매가를 25달러로 책정했다. 가격 옆에는 전통적인 소매업체에서는 50달러에 판매한다는 도발적인 문구도 첨부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들어졌다’는 원산지 표시 문구를 클릭하면 공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볼 수 있다. 공장의 위치는 물론 사장의 이력, 직원 수와 근무환경까지 모두 공개된다.

원가에 따라 판매가는 변동한다. 물론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 판매가도 내려간다. 2012년부터 125달러에 팔았던 캐시미어 스웨터의 경우, 지난해 캐시미어 가격이 16% 하락하자 이를 반영해 100달러로 가격을 낮췄다. 에버레인은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렇게 밝혔다.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품값을 올리지만, 원자재 가격이 떨어졌을 때는 제품값을 내리지 않는다. 이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성장비결 2 |
해외 공장 근무여건 개선해 도덕성 강화

원가가 얼마인지, 생산지가 어디인지 밝히는 것은 농산물에서는 당연했지만, 패션계에선 오랫동안 거론되지 않았다. ‘패션은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환상을 주는 것’이라는 정의가 심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과정이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에버레인은 이런 패션업계의 관행에서 벗어나 각 공정에 맞는 합리적인 의류 공장을 선별했다. 의류는 베트남, 가죽 가방은 스페인, 가죽 신발은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식이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깨끗한 공장 사진과 함께 이 공장과 언제 인연을 맺었는지, 공장장은 어떤 사람인지, 직원 수와 근속기간, 근무환경 등을 모두 공개했다.

2012년 미국의 최대 세일 축제인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는 합리적인 가격대에 어긋나는 소비에 동참할 수 없다며 휴업을 선언했다. 2014년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참여를 재개했는데, 이 기간에 판매된 수익금을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했다.

당시 에버레인은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올해는 합리적 소비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오늘 하루 수익금으로 중국 항저우에 있는 협력공장 직원 320여명과 가족들에게 실외 농구장과 여가시설을 지어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는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목표액의 네 배에 가까운 11만3000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진정성 있고 독창적인 취지에 밀레니얼 소비자들이 열광한 것이다.


성장비결 3 |
고품질 의류 싸게 판매한다는 원칙 준수

에버레인은 고품질의 제품을 싸게 파는 것을 원칙으로, 기본에 충실한 간결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기존 의류 회사의 방식이 아닌 픽사와 구글, 애플의 비즈니스 방식을 도입했다. 의류 회사는 일반적으로 디자이너와 상품기획팀이 분리돼 있어,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만들면 상품 기획자가 판매 가능한 상품을 선정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에버레인은 이를 통합해 디자이너가 고객을 이해하도록 했다. 이는 제작자가 영화 제작을 총괄하는 픽사의 모델을 따온 것이다.

또 애플이 아이폰이나 애플 워치를 출시할 때처럼 ‘고객이 이 옷을 어떻게 입을지’에 대한 고객 경험에 주목해 옷을 제작했다. 이에 대해 창업자 마이클 프레이스먼(Michael Preysman)은 “우리는 10년 후에도 착용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훌륭한 품질의 옷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Plus Point

패션업계 거품 빼기 나선 마이클 프레이스먼

에버레인 창업자 마이클 프레이스먼 <사진 : 에버레인>
에버레인 창업자 마이클 프레이스먼 <사진 : 에버레인>

2010년 벤처캐피털에 다니던 마이클 프레이스먼(Michael Preysman)은 우연히 50달러짜리 티셔츠의 원가가 7.5달러에 불과하다는사실을 알고, 패션계의 천문학적인 수준의 이윤 부과방식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에버레인을 창업했다.

그가 내세운 것은 새로운 수준의 ‘투명성’ 이다. 에버레인은 제품 생산 비용과 판매가 책정 방식을 고객들에게 숨김없이 공개했다. 또 이윤을 최소화해 고객과 신뢰 구축에 성공했다. 기존의 패션업체들이 생산 원가의 4~5배로 소비자가격을 책정했다면, 에버레인은 정확히 2배로 판매가를 매겼다. 이에 대해 프레이스먼은 한 인터뷰에서 “모든 소비자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잘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에버레인은 온라인 유통을 전문으로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청에 따라 뉴욕과 LA에 쇼룸과 스튜디오를 예약 방문제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뉴욕 웨스트빌리지에 팝업스토어 ‘캐시미어 캐빈’을 오픈해 캐시미어 의류를 한시적으로 판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