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0억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한 한섬의 고급 여성복 ‘타임’. <사진 : 조선일보 DB>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한 한섬의 고급 여성복 ‘타임’. <사진 : 조선일보 DB>

의류 업체 한섬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한섬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7119억원, 영업이익 720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각각 15.4%, 8.9% 증가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는 매출 8274억원, 영업이익 489억원을 기록했다.

한섬은 여성 의류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브랜드 경쟁력은 의류 업체가 성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한섬은 타임·마인·시스템 등 자체 브랜드 9개와 랑방·지미추·발리 등 수입 브랜드 2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한섬은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로 편입됐다. 이후 한섬은 현대백화점의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 외형을 확대해나갔다. 사진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사진 : 현대백화점>
한섬은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로 편입됐다. 이후 한섬은 현대백화점의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 외형을 확대해나갔다. 사진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사진 : 현대백화점>

협력업체와 장기 거래해 품질 유지

이 중 고급 여성복 ‘타임’과 여성 캐주얼 ‘시스템’에서 한섬의 브랜드 파워를 엿볼 수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철저한 고객 타깃팅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한섬은 1990년 시스템, 1993년 타임을 출시했다. 당시 의류 시장은 유명 브랜드 업체가 불특정 다수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섬은 달랐다. 시장을 세분화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를 정해서 제품을 개발했다. 한섬은 20~30대 여성 고객에게 초점을 맞췄다. 이후 20대 대학생 혹은 자유분방한 라이프·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을 위한 브랜드 시스템을 개발했고, 고소득층 커리어 우먼을 공략하기 위해 고급 소재를 사용한 타임을 시장에 내놨다.

한섬의 전략은 주효했다. 타임은 최근 2000억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라섰고, 시스템 역시 2015년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조정윤 세종대 글로벌지식평생교육원 패션디자인 전공 교수는 “현재 의류 시장에서 고객 타깃팅, 세분화와 제품 콘셉트 전략은 뻔한 것이 됐지만 1980~90년대에는 흔한 전략이 아니었다”며 “이를 통해 한섬이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했고 고급화, 백화점 유통판매 전략을 이어 가며 지속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한섬은 ‘노세일’ 전략도 펼치고 있다. 가격 할인보다는 상품 개발과 높은 품질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의류 브랜드는 정가에 판매하다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할인 판매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한섬의 주요 브랜드는 정가 판매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팔리지 않은 재고 상품은 아웃렛에서 처리하지만, 물량이 거의 없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비자는 타임을 정가에 구매해도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섬이 브랜드 경쟁력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이는 한섬의 영업이익률을 봐도 잘 나타난다. 브랜드 경쟁력이 가격 결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섬은 지난해 영업이익률 10.1%를 기록했다. 일반 의류 업체와 비교해 두 배가량 높다.

한섬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체 생산은 하지 않는다. 생산은 100% 아웃소싱(외주 제작)하고 있다. 디자인과 판매 관련 핵심 부서만 회사 내에 두고, 생산은 협력업체에 맡기는 것이다. 국내 의류 업체 대부분이 이런 형태로 자체 브랜드를 제작하고 있다. 원가를 줄이고, 제품 기획·디자인·유통에만 전념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섬만의 특별한 원칙도 있다. 믿고 거래한 협력업체와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한섬이 협력업체와 거래한 기간을 보면 평균 10년이 넘는다. 이는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협력업체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 시장 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한섬은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로 편입됐다. 한섬의 최대주주는 지분 34.6%를 보유한 현대홈쇼핑이다. 이후 한섬은 현대백화점의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 외형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현대백화점의 사업 확장 전략과 맞물리며 백화점, 아웃렛 매장 수를 늘려 나갔다.


현대백화점 편입되며 외형 확대

현대백화점은 2015년 2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 5월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8월 수도권 최대 규모인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출점했다. 지난해에는 3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 4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을 오픈했다. 한섬의 백화점, 아웃렛 매장 수도 2015년 620개에서 지난해 660개, 2017년 11월 현재 약 700개로 증가했다.

의류업의 핵심 경쟁력인 디자이너도 적극 충원했다. 현재 한섬에 근무 중인 임직원은 약 1000명이다. 이 중 디자이너는 400명가량으로 전체 임직원 대비 40% 수준이다. 현대백화점그룹 편입 전과 비교하면 디자이너가 250명 늘었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 제도도 강화했다. 한섬의 전체 임직원 중 약 70%는 여성 인력이다. 한섬은 임산부 전용 휴게실,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 출근시간 탄력 운영, 점심시간 30분 연장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한섬 관계자는 “기술과 전문성은 사람에서 나온다”며 “훌륭한 복지 제도는 직원들이 상품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고 이직률을 낮춰 핵심 인재를 육성하는 데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백화점그룹 조직 문화 개선 방향인 ‘일하고 싶은 회사’와도 일치한다.


한섬은 타임·마인·시스템·SJSJ 등 자체 브랜드 9개와 랑방·지미추·발리 등 수입 브랜드 2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한섬은 타임·마인·시스템·SJSJ 등 자체 브랜드 9개와 랑방·지미추·발리 등 수입 브랜드 2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SK네트웍스 패션 부문 인수해 시너지

한섬은 올해 2월 SK네트웍스 패션사업 부문(현 한섬글로벌, 현대G&F)을 인수했다. 현재 한섬글로벌과 현대G&F 법인을 통해 SK네트웍스 패션사업 부문이 보유한 12개 브랜드(오브제·오즈세컨·세컨플로어 등 국내 브랜드, 타미힐피거·DKNY·CK 등 수입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한섬은 최근 브랜드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우선 오브제·오즈세컨·세컨플로어 등 SK네트웍스 패션 부문의 여성복 브랜드를 재정비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SJSJ 등 여성 캐주얼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이명진 캐주얼사업부장을 한섬글로벌 여성복 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한섬의 강점인 브랜딩과 상품 기획 역량을 활용해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상품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10년 이상 SK네트웍스 패션사업 부문을 이끈 조준행 대표도 영입했다. 타미힐피거·DKNY·CK 등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수입 브랜드의 유통 채널을 다각화하고, 상품 라인을 확장해 브랜드별로 차별화된 가치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백화점은 의류 사업을 그룹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향후 5년간 한섬글로벌과 현대G&F의 상품 기획 경쟁력 강화, 인프라 구축 등에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한섬은 신규 브랜드 론칭과 디자이너 확보 등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높은 매출 성장과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다”며 “올해 인수한 SK네트웍스 패션 브랜드와의 시너지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Plus Point

김형종 한섬 대표
“해외 시장 진출 적극 추진”

김형종 한섬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상품 기획 회의에 참석한다. 브랜드별로 판매 실적 등 재무성과 점검은 기본이고, 어떤 상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새로운 상품의 콘셉트는 무엇인지, 출시 시기는 언제로 잡을지 등을 함께 논의한다. 이런 회의를 통해 한섬은 최근 3년 동안 덱케(잡화), 더캐시미어(라이프 스타일), 래트바이티(여성복) 등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

김 대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한섬을 인수한 후 현대백화점에서 한섬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2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투입됐고, 201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그는 1985년 현대백화점에 입사,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경영개선팀장, 목동점장, 상품본부장을 거친 ‘현대백화점맨’이다.

김 대표는 품질과 디자인을 중요시한다. 의류 업체가 성장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이를 통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백화점의 유통망도 확보했다. 브랜드, 기술과 디자인, 유통 등 의류 산업 성장을 위한 3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력과 상품력, 맨 파워를 지닌 한섬이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으로 편입된 후 시스템과 체계를 정비하며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해외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섬은 매출 대부분을 국내 시장에서 올린다. 그러나 2020년까지 해외 매출 비율을 약 1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한섬을 내수 브랜드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한섬은 현재 프랑스·영국·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