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플젠에 위치한 두산스코다파워 공장. 한창 작업 중이지만 자동화율이 높아 현장에 나와 있는 직원은 많지 않다. <사진 : 이윤정 기자>

체코 서쪽 지방에 위치한 도시 플젠은 체코 내에서도 중공업 도시로 꼽힌다. 1800년대부터 기관차를 비롯해 광산·발전소·제철소 등에서 쓰이는 설비류와 중공작(重工作) 기계 등을 생산해왔다. 중공업 도시답게 다소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이 강해 관광객들에게 크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낯익은 로고를 달고 있는 공장이 하나 있다. 한국 기업 두산중공업의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다.

두산스코다파워는 2009년 두산중공업이 스코다그룹의 발전설비 전문업체 스코다파워를 인수, 3년 뒤인 2012년 ‘두산’ 사명을 새긴 곳이다. 두산스코다파워는 현재 체코 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로 꼽힌다.

스코다파워의 지역별 수주 비율을 보면, 인수 이전인 2007년까지만 해도 체코-슬로바키아 비율이 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해외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글로벌 시장이 아닌 역내 시장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인수 이후 이 비율은 정반대가 됐다. 2016년 기준 해외 수주율은 89%에 달했다. 매출 역시 같은 기간 42억6800만코루나(약 2232억1600만원)에서 79억7400만코루나(약 4170억원)로 약 86% 늘었다.


성장비결 1 | 두산중공업과의 시너지 효과

두산중공업에 인수되기 전, 스코다파워는 터빈의 설계·제조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세계적인 발전설비 업체였다. 터빈은 열·수력·풍력에너지 등을 이용한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를 회전력으로 바꾸는 터보형 기계로, ‘보일러-터빈-발전기(BTG)’로 이어지는 발전설비의 핵심 부품 중 하나다. 당시 스코다파워는 전 세계 62개국에 450여 기의 터빈을 공급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초 박용만 두산 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스코다파워 인수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속에 추진한 대형 M&A의 여파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건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2004년 고려산업개발을 M&A해 2007년 출범시킨 두산건설이 휘청이던 때였다. 이때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현 두산중공업 회장)이 스코다파워를 인수해야 한다고 박용만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경영진을 강력히 설득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맥주를 비롯해 김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 식음료 사업으로 확장 전략을 펼쳤던 두산은 2000년대 초반 산업 인프라 관련 기업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발전설비 부문을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뒤 2006년에는 보일러 부문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영국 미쓰이밥콕(현 두산밥콕)까지 품에 안았다. 이를 통해 발전설비 3대 핵심기술 중 보일러와 발전기의 원천기술을 손에 넣게 됐지만, 터빈의 경우 여전히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발전 사업을 총괄하는 박지원 사장은 M&A 시장에 나온 유일한 터빈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스코다파워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터빈 기술 확보 없이는 BTG 또는 TG 패키지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이 같은 점을 들어 박지원 사장은 두산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었고, 결국 스코다파워 지분 100%를 4억5000만유로(당시 약 8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박지원 사장은 “스코다파워 인수에 따른 전략적 가치는 2020년 기준으로 연간 매출 5조3000억원의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해외 수주 비율을 90% 가까이 올릴 수 있었던 데 대해 “두산중공업이 중동에서 발전, 담수 사업을 하면서 브랜드파워를 구축해 둔 것이 큰 힘이 됐다”며 “인수 이전 스코다파워는 동유럽, 남미 시장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이후 중동을 비롯해 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성장비결 2 | 고객 맞춤 최적화

아무리 든든한 모기업이 있다고 해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두산스코다파워는 기성품이 아닌 ‘주문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경쟁 업체의 경우 터빈 발주가 들어올 때마다 매번 새로 디자인하거나,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몇 가지 디자인 중에서 골라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사양이 아닌 고객이 기업의 사양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산스코다파워는 부품을 잘게 쪼개 조합하는 ‘모듈화’ 설계 시스템을 택했다. 터빈은 크게 증기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를 속도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노즐과 이 속도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회전력)로 바꿔주는 터빈 날개로 구성돼 있는데, 이 노즐과 터빈 한 조를 단(段)이라고 한다.

터빈 단은 또다시 고압·중압·저압 세 가지로 나뉜다. 각 단의 설계는 발전소의 운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두산스코다파워는 프로젝트마다 각 터빈 단을 새로 설계하거나 과거에 수행했던 프로젝트 중 비슷한 설계를 찾아 적용하기보다는 각 운전 조건별로 검증된 고압·중압·저압 패키지 중 골라서 조립한다. 즉 발주가 들어오면 고객 요청 사양에 맞춰 필요한 모듈을 골라 조합하는 것이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모듈화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모듈러 디자인과 세그먼트(부품)가 얼마나 잘 세분화돼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고객의 요구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주문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GE, 지멘스 등 경쟁 업체보다 두산스코다파워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빈 날개를 조립하고 있는 두산스코다파워 직원들. <사진 : 이윤정 기자>

성장비결 3 | 높은 자동화율·빠른 속도

3만4000㎡(약 1만 평)에 달하는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 들어서면 기계들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반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거의 없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공장 내부가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두산스코다파워의 총직원은 1200명이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직원은 전체의 6분의 1 수준인 200여 명에 불과하다. 직원 1인당 2~3개의 공정을 관리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이는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의 높은 자동화율로 인해 가능하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자동차 조립 공장과 같은 컨베이어벨트 제작 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자동화율을 계산할 수 없지만, 가공설비의 정미(正味)가동률로 보면 약 65%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미가동률이란 전체 가공 시간 중 제품 셋업, 조정, 치수 측정, 공구 교체 등 작업자가 개입하는 비생산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기계가 실제 제품을 가공하는 생산적 시간의 비율을 말한다. 즉 정미가동률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높고, 작업자의 개입이 최소화돼 자동화 정도도 함께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정미는 ‘물건의 겉껍질을 뺀 내용물’ 또는 ‘전체의 무게에서 포장이나 그릇 무게 따위를 뺀, 순수한 내용물만의 무게’를 의미한다.

두산스코다파워는 지난해 독일 설비전문 업체 게오르그로부터 사온 ‘울트라 턴 머신(Ultra Turn MC)’으로 자동화율을 대폭 높였다. 울트라 턴 머신은 터빈을 만드는 과정 중 선반·밀링·드릴링·연삭·측정 등 5가지 공정이 한 번에 가능한 기계다. 이전에는 밀링 과정에서만 4개월이 소요됐는데, 울트라 턴 머신 도입 이후 2개월로 대폭 줄었다. 대당 80억원에 달하는 울트라 턴 머신은 현재 전 세계 터빈 제작 업체 중 유일하게 두산스코다파워만 보유하고 있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이외에도 제품 제작 전 NC프로그램(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제어장치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프로그램)과 가공에 필요한 많은 공구들을 전문 소프트웨어로 사전 시뮬레이션해 설비 작업자가 현장에서 NC프로그램을 수정할 경우 발생하는 손실, 적용 공구의 오류로 인한 손실 등을 방지하고 있다”며 “생산설비의 자동화 비중을 높이고, 생산과정에서 생성되는 정보들을 표준화해 빅데이터 기반으로 생산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는 디지털 팩토리를 중장기적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게오르그의 울트라 턴 머신. <사진 : 두산스코다파워>

성장비결 4 | 현지 문화 존중

M&A 후, 무작정 한국식 기업 문화를 이식하기보다는 체코 현지인들의 기존 업무 방식을 존중한 것 또한 두산스코다파워가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체코인들의 업무 방식은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두산스코다파워 관계자는 “체코인들의 경우 과거 공산권의 영향 때문에 집단의사 결정체계에 매우 익숙한 업무 방식을 택하고 있었고,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인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않는 한 업무가 진행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입사원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청취할 수 있는 업무구조를 갖고 있었던 점 또한 기존 스코다파워의 특징이다.

두산중공업은 지위에 관계없이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스코다파워의 문화는 수용하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수용하고 추진력 있게 실행할 수 있는 문화를 전파했다.

이외에도 현지 경영을 존중하기 위해 인수 직후 50명 규모였던 주재원 수를 현재 4명으로 줄였다. 최고경영자(CEO) 또한 한국인이 아닌 스코다파워 엔지니어 출신인 이리 슈몬드르크를 임명했다. 슈몬드르크 CEO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9년째 CEO직을 수행하고 있다.


plus point

interview 이리 슈몬드르크 두산스코다파워 CEO
“바닥부터 쌓아올린 30년간 경험이 나의 힘”

플젠(체코)=이윤정 기자

이리 슈몬드르크(Jiri Smondrk) 두산스코다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스코다파워의 말단 엔지니어로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1986년 졸업 직후 스코다파워에서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시설인 스팀터빈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입찰, 엔지니어링, 판매 등 스코다파워의 다양한 사업 분야 총괄을 역임했다. 두산중공업이 스코다파워를 인수한 직후 COO에 임명됐고, 이후 단 3개월 만에 CEO로 파격 발탁됐다. 슈몬드르크 CEO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9년째 두산스코다파워를 이끌고 있다.

인수 당시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땠나.
“부정적 여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코다파워 직원들은 항상 스코다 브랜드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왔다. 두산이 스코다파워 인수를 결정한 이후 스코다 브랜드가 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직원들이 우려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산과 스코다파워가 힘을 합치면서 사업적으로 새롭고도 중요한 시대가 열렸다.”

두산이 스코다파워를 인수한 지 9년이 지났다. 두산과 스코다파워가 재정,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통합됐다고 볼 수 있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은 개선될 것이고, 지금도 개선되고 있다. 특히 의사소통 측면에서 그렇다. 인수 이후 일정 기간 스코다파워 직원들이 두산 직원들에게 다소 억눌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직원들의 감정은 회사 분위기는 물론 회사 전체의 발전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산과 스코다파워 양쪽 모두 굉장한 발전을 이뤄냈고, 지금은 의사 소통상 어려움이 많이 줄었다. 나는 두산과 스코다파워 양측 직원 간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논쟁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관리자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주력하고 있는 시장은 어디인가.
“동남아시아와 중동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은 이들을 중심으로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한국처럼 탈(脫)원전 정책으로 돌아선 국가도 있다. 나는 각국이 안전한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원전 기술은 여러 에너지 정책과 함께 융합돼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산스코다파워 CEO로 취임한지 9년째다.
“두산스코다파워 CEO에겐 임기가 없다.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과 그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를 맡고 내려놓을 뿐이다. 내 경우는 스코다파워 엔지니어로 30여 년간 쌓아온 경험이 CEO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많은 문제들을 겪었고, 이는 내게 공정한 관점과 효율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경험 많은 CEO의 이점은 축적된 지식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고 현명한 의사 결정으로 회사는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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