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8단지. 이곳은 2021년 디에이치자이 개포로 재탄생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임영근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내 위치한 ‘디에이치자이 개포’ 모델하우스. 주말까지만 해도 관람객들로 넘쳐났지만 이날은 조용했다. 특별공급 추첨 때문에 19일부터 모델하우스 관람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출입구 앞 보안요원들은 특별공급 접수증을 소지한 이들만 안으로 들여보냈다. 검게 선팅된 창문 탓에 안을 들여다 볼 순 없었지만, 문틈으로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오후 3시를 넘기니 특별공급 당첨자가 하나둘씩 모델하우스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당첨자를 기다리고 있던 방송사 카메라를 보자 이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다자녀 가구 전형으로 당첨된 김수진(가명)씨에게 당첨 소감을 물었다. 그는 다소 주저하다 “바로 옆 래미안 루체하임에 프리미엄이 최고 7억원까지 붙었다니, 디에이치자이 개포도 그 정도는 오르지 않을까 싶다. 개포동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기대가 크다”고 말한 뒤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특별공급은 아파트 분양 물량에서 일정 비율을 따로 떼어내 신혼부부, 다자녀, 노부모 부양자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만 청약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조건이 까다로워 미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달랐다. 458가구 모집에 991명이 최종 접수해 경쟁률 2.16 대 1을 기록했다. 21일 진행된 일반 분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1246가구 모집에 3만3123명이 청약해 1순위 마감됐다. 평균 경쟁률은 25.22 대 1. 최고 경쟁률은 최소형 전용면적 63P㎡(이하 전용면적 기준)에서 나왔다. 단 16가구 모집에 1451명이 몰려 90.69 대 1을 기록했다.

1980년대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촌으로 꼽혔던 개포동, 일원동 일대 개포지구가 재건축을 통해 ‘신흥 부촌’ 타이틀을 넘보고 있다. 1만5700여가구의 주공아파트 9개 단지는 각 대형 건설사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달고 2만3000여가구의 고급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개포주공8단지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청약 열기에서 떠오르는 개포지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10만 청약설’ 나온 디에이치자이 개포

최고 12층, 10개동, 1680가구였던 강남구 일원동 개포주공8단지는 2021년 7월, 최고 35층, 15개동, 1996가구의 디에이치자이 개포로 재탄생한다.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분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재건축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분양 물량이 1690채로 전체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임대주택이다. 이 단지는 공무원연금공단이 임대아파트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GS건설·현대엔지니어링)이 이를 매입, 철거해 자체사업으로 진행했다. 보통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들이 먼저 동호라인을 선점하고, 일반인들은 남아있는 물량 중에서 분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조합원이 없어 일반인들도 좋은 집을 받을 수 있다. 물량이 많은 만큼 청약 당첨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컸다.

정부 규제 탓에 시세 대비 저렴해진 분양가도 인기 요인이다. 이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4160만원이다. 그러나 인근 새 아파트 값은 이미 3.3㎡당 5000만원을 넘어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일원현대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루체하임의 경우, 84㎡ 분양권은 지난 1월 19억5261만원에 거래됐다.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같은 평형 분양가는 12억5000만~14억3000만원이다. 최소 5억원, 최대 7억원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청약통장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뛰어들 것’이라며 ‘10만 청약설’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프리미엄만 보고 청약하기엔 리스크가 많다. 디에이치자이 개포 분양가는 최소 9억8010만원으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2016년 6월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며 9억원 이상 아파트 중도금 대출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계약 후 3년 내에 집값 70%를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즉 최소 7억원 이상의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고가의 강남 아파트인 만큼, 정부는 이 아파트 당첨자를 대상으로 위장전입 조사와 함께 고액의 현금 출처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도 예고하고 있다.

최근 강남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한 만큼, 디에이치자이 개포 등 강남 새 아파트 가격에 ‘버블(bubble·거품)’이 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시세조사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14.53%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1.9%)의 8배에 달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에이치자이 개포가 수익성·성장성·안정성 모두 높은 ‘블루칩’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의 새 아파트 공급 자체가 많지 않은 반면,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면서, 대다수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사업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국내 기준으로만 보면 강남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볼 수 있지만, 세계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을 보면 서울, 강남 집값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입주 물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실수요가 많다 보니 프리미엄이 형성된 만큼, (디에이치자이 개포) 가격이 떨어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대치동·개포동·일원동 일대. 사진 네이버

수년 내 가격 조정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그러나 단기간 내 가격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개포동 일대 부동산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최근 정부가 부동산 관련 전방위적 규제 폭탄을 잇따라 던지고 있는 데다, 금리는 점점 오르고 있고, 재건축 아파트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투자자의 피로감도 있다”며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면 단기간 내 조정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실 개포지구엔 개포동, 일원동 외에 대치동 일부도 함께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는 같은 지구라 할지라도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대치동까지만 진정한 ‘강남’이고, 대치동 아래쪽인 개포동과 일원동은 이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개포동, 일원동에 고가의 새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이들이 대치동을 넘어 ‘신흥 부촌’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대 부동산 관계자들은 개포동, 일원동이 대치동을 넘어서기엔 무리라고 본다. 먼저 ‘구성원’ 측면에서 대치동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치동의 경우 고위 공무원, 전문직, 기업 임원 등이 터를 잡고 있지만, 개포동과 일원동은 이 부분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개포동 B부동산 관계자는 “부촌은 단순히 집값이 비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부와 명예, 학력 등 모든 것이 갖춰져야 부촌이 된다”며 “이 일대가 제대로 된 부촌이라면 대치동 수요가 이쪽으로 몰려와야 하는데, 그러한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개포동 H부동산 관계자 역시 “개포동 5층짜리 아파트가 15억원, 20억원이 됐다고 해서 바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거 요건은 좋아지겠지만 ‘최상위층’을 위한 부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포동 아파트 가격은 재건축 이슈에 힘입어 대치동, 압구정동 등 강남 전통 부촌을 앞지른 지 오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3.3㎡당 개포동 아파트 평균 가격은 5553만원이었다. 이는 압구정동(5404만원), 대치동(4575만원)보다 최대 1000만원 비싼 가격이다. 심지어 10년 전인 2007년에도 개포동 아파트 가격(4385만원)은 압구정동(4102만원), 대치동(3829만원)보다 비쌌다. 그러나 이미지는 여전히 전통 부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철거가 덜 된 개포주공4단지(왼쪽)와 철거가 끝나고 공사를 시작한 개포주공3단지(오른쪽). 사진 C영상미디어 임영근

입지·주거 여건에서는 대치동에 밀려

입지 역시 대치동에 비하면 외진 곳이라는 점이 개포동과 일원동의 발목을 잡는다. 대치동의 경우 학원 1000여개가 밀집돼 있는 명실상부한 사교육 1번지다. 개포동, 일원동 학부모들은 대치동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디에이치자이 개포에서 대치역 3호선까지는 도보로 20분 가량 소요된다. 대치동 서울공인중개사의 박기서 대표는 “대치동과 개포동, 일원동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거리가 있다”며 “학부모들은 집을 좁혀서라도 대치동에 있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포동과 일원동이 예전보다 대치동과 간극을 좁힐 수는 있겠지만, 입지가 외진 만큼 ‘강남’이 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주거여건에서도 부동산 관계자들은 개포동, 일원동이 대치동에 비해 밀린다고 분석한다. 최상위층의 경우 여전히 중대형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이곳 재건축 아파트는 중소형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경우 전체 일반분양 물량 중 65%가 85㎡ 이하 중소형가구다. 용적률, 건폐율이 대치동에 비해 높은 점도 문제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이고, 건폐율은 대지 면적 대비 건물 1층의 바닥면적을 말한다. 두 비율이 높을수록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있지만, 넓은 땅을 차지하는 바람에 동간 간격이 좁아져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중간층까지는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경우 용적률과 건폐율이 각각 336%, 28%에 달한다. 반면 대치동 한보미도맨션의 경우 용적률과 건폐율이 각각 179%, 15%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포동과 일원동이 ‘신흥 부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개포지구엔 이미 래미안 블레스티지(개포주공2단지), 디에이치 아너힐스(개포주공3단지), 래미안 루체하임(일원현대) 등이 들어서기로 돼 있고, 나머지 아파트도 모두 재건축된다면 일종의 신도시급 주거지가 조성될 것”이라며 “강남 내 톱클래스 주거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포동 D공인중개사 관계자 역시 “인근 대모산과 양재천 등 자연조건이 훌륭하고, 재력 있는 젊은 세대가 유입될 것”이라며 “문화적 기반부터 교육 여건까지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Plus Point

누런 모래밭에서 황금밭으로 변한 강남


1970년대 압구정 현대아파트. 사진 네이버

올해는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체제가 생겨난 지 30년째다. 시세조사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 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1988년 350만원에서 지난해 4082만원으로 1066% 급등했다. 1988년 7500만원이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는 지난해 14억7670만원을 기록해 1868% 올랐다.

지금은 서울 강남이 한국 최고의 부촌으로 꼽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은 전답과 한강변 모래밭에 불과한 ‘깡촌’이었다. 명칭도 강남이 아닌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의 ‘영동’이라 불렸다.

그랬던 강남은 1970년 강북의 인구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인구 6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신시가지를 개발하는 ‘남서울개발계획’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1971년 서울시는 지금의 강남구 논현동에 5층짜리 현대식 아파트인 영동공무원아파트를 시범적으로 건설했다. 정부는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부동산 투기 억제세 면제’ 조처를 단행하는 등 각종 개발 특혜를 제공했다. 이어 1975년 ‘강남구’를 신설하고, 강북 명문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을 단행했다. 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 서울고 등이 모두 강북에서 옮겨온 학교들이다.

교육열 높은 부모들 덕분에 강남으로의 주거 이전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고, 이후 강남은 부동산 개발, 투기의 장으로 거듭났다. 강남구는 1979년, 탄생 4년 만에 강동구를 분리시킬 정도로 급팽창한다. 이어 1981년엔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잠실 개발이 본격화됐고, 7년 후인 1988년 정부는 서울 강남구에서 서초구를, 강동구에서 송파구를 떼어내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한다. 이른바 ‘강남3구’의 탄생이다.


Plus Point

대치동의 자부심, 우선미


한보미도맨션. 사진 C영상미디어 임영근

“미도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라, 선경에서는 ‘빽(인맥)’ 자랑하지 말라, 우성에서는 학력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선미(우성·선경·미도)의 벽은 견고하다.”

개포동에서 22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개포동과 대치동의 간극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개포우성1차, 선경1·2차, 한보미도맨션 세 단지는 모두 1983년 같은 해에 입주를 시작했다. 대부분이 50~60㎡로 구성돼 있는 개포동, 일원동 아파트들과 달리, 우선미는 가장 작은 평형이 101㎡였고, 최대 220㎡에 달했다. 개포시영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이민정(33)씨는 “지금이야 개포동 이미지가 조금은 나아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선미 사람들은 개포동 사람들을 다 못사는 사람들로 봤다”며 “우선미는 아파트 가격부터 주민들의 생활 방식까지 모든 것이 개포동과 달랐다”고 했다.

완공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선미는 여전히 이 일대 선망의 대상이다. 은마아파트 앞 서울공인중개사의 박기서 대표는 “은마아파트의 경우 아이들이 입학하는 초등학교도 두 군데로 나뉘는데, 이곳 엄마들은 지금도 삼성역 방향에 있는 대현초등학교보다는 미도아파트 앞에 있는 대곡초등학교를 훨씬 선호한다”며 “부촌 아이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미의 집값 역시 여전히 이 일대 대장주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미도 159㎡(10층)와 선경2차 160㎡(7층)는 각각 32억원, 30억원에 거래됐다. 2월 우성아파트 158㎡(1층)는 29억8000만원에 팔렸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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