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의 첫 모듈형 아키텍처를 활용해 나온 신형 포커스. 모듈형 아키텍처를 활용하면 포커스와 같은 크기의 준중형차뿐 아니라 소형차부터 중대형차, 승용 SUV까지 다양한 차량을 더 쉽고 빨리 만들 수 있다. / 포드

“포드의 성배(聖杯·the Holy Grail)가 될 것이다.”

조 바카이(Joe Bakaj) 포드 유럽 부문 제품개발 총괄 부사장은 4월 10일 발표한 준중형차 포커스(Focus) 신형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확히 말하면 신형 포커스에 처음 도입된 포드의 새로운 설계 철학, 통칭 ‘모듈형 아키텍처’를 성배라 지칭했다. 33년 경력의 정통 자동차 엔지니어가 서구문명에서 최고 보물을 비유할 때 쓰는 성배라는 말을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5개 키워드로 분석했다.


1 살아 남으려면 모듈형 아키텍처

포드는 포커스에 사용된 모듈형 아키텍처를 시작으로 포드 차량 개발에 혁명을 예고했다. 앞으로 나올 거의 모든 포드의 세단·해치백과 승용형 SUV는 신형 포커스에 사용된 아키텍처를 사용하게 된다. 소형차 피에스타, 준중형차 포커스, 중형차 퓨전, 승용SUV 이스케이프·에코스포트·엣지 등을 새로 개발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로써 폴크스바겐, 도요타, 르노-닛산, GM 등 글로벌 선도 자동차 업체 대부분의 제품 개발이 모두 모듈형 아키텍처 기반으로 바뀌게 됐다. 지난 5년간 폴크스바겐과 도요타가 모듈형 아키텍처를 진전시켜 왔지만, 포드 같은 전통 강자가 이를 따르지 않아 모듈형 아키텍처가 진짜 대세인지에 논란이 있었다. 이 기술을 폄하하며 굳이 참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동차 회사도 있었다. 그러나 포드마저 모듈형 아키텍처로 전면 이행함에 따라 논란이 무의미해졌다.


2 중국 시장 부진의 해법

포드가 모듈형 아키텍처로 개발 전략을 바꾼 것은 이것이 포드를 괴롭혀 온 중국 시장 부진을 해결해줄 묘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제이슨 루오 중국 총괄 사장이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루오 사장이 작년 8월 포드에 합류한 이후 중국 판매 부진을 개선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루오의 갑작스러운 사임이 포드뿐 아니라 다른 다국적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의 변화로 인해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작년 포드의 중국 판매량은 119만 대로 2016년보다 6% 감소했다. 올해 1~3월 누적 판매는 20만7000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나 감소했다. 원인은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춘 최신 중소형 SUV가 부족한 데다 원가 경쟁력까지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업을 잘해서 해결될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인력·자금을 대거 투입해야 하는 기존 설계 방식을 고수해서는 중국에 신차를 빨리 투입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모듈형 아키텍처로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인수한 볼보의 모듈형 아키텍처. 앞 차축부터 운전자의 발이 페달에 닿는 부분까지는 고정된 부품으로 만들되, 나머지 부분은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도록 했다. / 볼보

3 원가와 제품 경쟁력의 양립

짐 팔리(Jim Farley) 포드 글로벌시장 담당 사장은 “포드는 가격 경쟁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설계 전략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신형 포커스는 신차 설계 때마다 드는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설계 유연성을 높여 세계 어디서나 빠르고 쉽게 생산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기존에는 미국 판매용 포커스를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서 생산했다. 신형 포커스는 미국 생산을 하지 않고, 중국에서 만들어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에서도 판다. 중국산 포커스를 미국에 판다고 해도 품질·이미지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중국 공장의 실력과 규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고, 포드의 최신 모듈형 아키텍처 전략에 따라 기존보다 더 뛰어난 차가 판매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형 포커스는 이전보다 휠베이스(앞뒤 차축 간 거리)가 53㎜ 늘어나 실내공간이 넓어졌고, 주행 품질을 높여주는 차체 강성이 20% 향상됐다. 더 커지고 단단해졌지만 차량 무게는 이전 모델보다 88㎏이나 가벼워졌다. 이런 마법과 같은 일은 기존 설계방식으로는 어렵다. 포드가 모듈형 아키텍처로 돌아선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포드가 가격 경쟁이 치열한 준중형차급에서도 일본·한국 차에 이길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4 다차종 개발 능력 갖기

포드는 2025년까지 중국에만 50종 이상의 신형 또는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겠다고 최근 밝혔다. 이 가운데 8종은 신형 SUV다. 중국 소비자들이 세단보다 SUV를 선호하고 취향이 더 고급화되고 다양화되면서, 이런 수요에 맞춰 더 많은 SUV와 신차를 더 좋은 디자인과 고품질로 더 빨리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드가 더 많은 자원을 중국에 투입하기는 어렵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모듈형 아키텍처다. 바카이 부사장은 “모듈형 아키텍처를 통해 개발비를 아꼈고, 미국에 판매할 신형 포커스의 옵션 구성을 360개에서 26개로 크게 단순화할 수 있었다”면서 “대신 (비용을 아낀 만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급 사양을 훨씬 다양하게 제공해 대당 판매단가를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단일 아키텍처로 많은 차종을 만들기 때문에 포커스뿐 아니라 포드의 다양한 신차를 출시할 큰 계획을 그리기가 더 쉬워진다. 이걸 하지 못하면 차종 하나하나를 개발할 때 많은 인력과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면서도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허덕이기 쉽다. 이런 식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회사는 모듈형 아키텍처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에 밀릴 수밖에 없다.


5 미래 차에 대비하기

포드는 2025년까지 중국에만 15종의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답은 역시 모듈형 아키텍처에 있다. 모듈형 아키텍처의 특징은 이 방식을 내연기관차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차 설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량 구조 자체를 거대한 부품 덩어리들의 조합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전기차의 개발 철학과 맞닿아 있다.


Keyword

모듈형 아키텍처
모듈형 아키텍처는 차량마다 설계 효율을 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회사가 만드는 모든 차량의 설계를 하나의 거대한 ‘계획(plan)’이나 ‘건축구조(architecture)’로 보고 전체 설계의 효율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엔진·차체·조향·배기·시트 등의 차량 각 부분을 레고블럭처럼 일체화해 개발하고 이 레고블럭을 조합해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모듈형 아키텍처의 시작은 폴크스바겐이었다. 2012년 2월 자사의 모듈형 아키텍처 전략인 MQB(Modulare Quer Baukasten)를 발표했다. ‘큰 덩어리의 부품들이 서로 다른 차종을 넘나들며 결합되는 구조’라는 의미의 독일어 알파벳 첫글자를 땄다.
MQB는 다양한 자동차의 외형적인 부분을 공용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기능을 가진 부문의 ‘설계 개념’ 자체를 규격화하고 공용화하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자동차를 차체,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내·외장, 전자 장치의 4가지 부분으로 나누고, 그 하위 개념으로 30개 부품군(tool kit)을 만들었다. 30개 부품군을 레고블록 쌓듯 조립하여 새로운 차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폴크스바겐이 MQB 로 승부를 건 이후 세계 주요 회사들의 자동차 설계 전략이 급변했다.

최원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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