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4월 18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 조선일보 DB

포스코가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선임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에는 정치권의 외풍을 견딜 수 있는 CEO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 기업’으로 불리는 포스코가 회장 후보군에 외국인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포스코 회장 후보군을 발굴하는 CEO 승계 카운슬(council·위원회) 역시 권오준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4월 18일) 지 5일 후인 23일 1차 회의를 열고, 새로운 회장에게 요구되는 제1 자격으로 ‘세계 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경영 역량’을 꼽았다. 포스코 CEO 승계 카운슬은 이날 회의에서 “외국인 후보를 포함해 후보군을 다양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회장 후보로 외국인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교체되는 시련을 겪었다. 2000년 10월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유상부 5대 회장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고 한 달 만에 사퇴했고, 이구택 6대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년 뒤인 2009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대통령 때 선임된 정준양(7대)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뒤 사퇴했고 이후 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권오준(8대) 회장 사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 회장은 4월 18일 임기를 2년 남기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이날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를 맡는 게 좋겠다”며 사내외 이사진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포스코 측은 건강상의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권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 불과 19일 전인 3월 31일, 창립 50주년 기자간담회까지 열면서 경영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리튬 사업 등 포스코 신성장 동력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더구나 권 회장은 2014년 취임 후 4년간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그룹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스코의 매출은 2013년 61조8646억원에서 지난해 60조6550억원으로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9961억원에서 4조6218억원으로 증가했다. 6년 만에 기록한 최대 실적이었다. 권 회장이 연임(2017년 4월)에 성공한 것도 이 덕분이었다.

정권 초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회장 중도 낙마’ 문제를 포스코가 두 손 놓고 바라만 본 것은 아니었다. 포스코는 회장을 선출할 때부터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CEO 선임 과정과 관련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포스코는 2013년부터 미국 GE 모델을 벤치마킹한 CEO 승계 카운슬을 운영하고 있다. 회장 선임 절차를 보다 독립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사외이사 중심의 CEO 승계 카운슬이 회장 후보군을 발굴하고, 역시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에 보고하면, 여기서 최종 후보를 정해 이사회에 넘기고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을 선임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화할 수 있는 장치를 추가했다. 우선 사내이사로 CEO 승계 카운슬 당연직 멤버인 권오준 회장이 “공정·객관성을 위해 향후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물러났다. 2014년 권 회장 선임 당시 3명이었던 CEO 승계 카운슬 내 사외이사는 5명으로 늘렸다.

회장 후보군 모집 범위도 확대했다. 처음으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와 노동자경영진협의회, 퇴직임원 모임의 추천도 받는다. 특히 포스코는 외부 서치 펌(search firm)을 활용, 외국인 회장 후보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임 과정을 더 투명하게 하려면 회장 추천부터 선정 기준과 선임 등 전체 과정을 단계별로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부 전문가와 포스코 내부 직원들이 회장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포스코가 회장 후보 추천부터 선임까지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심층 면접과 포스코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투표 등 전문가와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서치 펌’ 통해 외국인 후보 발굴

포스코가 외국인을 회장으로 영입하려고 공을 들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대기업 중 CEO가 외국인인 경우는 거의 없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대표, 오스만 알 감디 에쓰오일 대표 등 외국 기업의 한국 법인 또는 해외에 매각된 한국 기업의 CEO만 외국인이다. 한국 대기업 중 해외 사업 또는 연구·개발(R&D) 등 특정 부문을 총괄하는 외국인 부문장은 있지만 기업 전체를 총괄하는 CEO를 찾아보긴 힘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CEO의 역할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조직 전체를 총괄하는 데 있다”며 “국내 환경과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국인 CEO가 국내 대기업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 교수는 “기업이 글로벌, R&D 등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그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최대 제약 회사인 다케다제약은 2014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영국 제약 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출신의 프랑스인 크리스토퍼 웨버 CEO를 선임하며 현재까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웨버 CEO 영입은 당시 폐쇄적인 일본 기업 문화에선 파격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물론 포스코와 다케다제약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포스코 역시 철강은 물론 무역, 건설 등 그룹 사업 대부분이 해외 비중이 높다는 측면에서 보면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포스코를 경영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