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캔에 1만원’ 판매 전략으로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수입맥주. 사진 조선일보 DB
‘4캔에 1만원’ 판매 전략으로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수입맥주. 사진 조선일보 DB

2010년 3~4%에 불과했던 수입맥주 시장점유율이 최근 10%를 넘어섰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맥주 10병 중 9병은 아직 국산맥주인 만큼 수입맥주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편의점·대형마트 중심의 가정용 맥주 시장에서는 이미 수입맥주가 시장 주도권을 잡았는데, 이것이 국내 업계에 주는 신호가 상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CU·GS25·세븐일레븐 등 3대 편의점의 맥주 매출 중 수입맥주의 비율은 2012년 10%대에서 지난해 각각 56.7%, 55%, 52.9%로 증가하며 국산맥주를 앞질렀다. 이마트 역시 전체 맥주 판매에서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3년 32.2%에서 지난해 처음 절반을 넘어섰다.

수입맥주의 가파른 성장세는 최근 ‘혼술’ 풍조가 확산된 영향이 크다. 보해양조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성인남녀 9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2.1%의 응답자가 ‘혼술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혼술 시 선호하는 주종으로는 맥주가 74.2%로 1위를 차지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이른바 ‘혼술족’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런 혼술족들은 개인 취향에 따른 다양한 맥주를 선호하기 때문에 수입맥주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회식이 줄어드는 추세도 소비자들이 국산맥주에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이 됐다. 식당·유흥주점에서는 국산맥주가 강세를 보이는데,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이 국산맥주를 접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판교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재민(27)씨는 “카스나 하이트를 먹는 것은 회식 때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마실 때뿐”이라며 “요즘에는 회식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만 하는 데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도 사라지고 있어 국산맥주를 마실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맥주 수입량은 매년 연평균 30% 안팎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맥주는 10년 전인 2007년 3057만9000달러(약 331억3200만원)어치 수입되는 데 불과했지만, 2014년 1억1169만달러로 올라선 데 이어 지난해엔 2억6309만달러(약 2850억5800만원)로 3년 만에 2억달러 선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올해 맥주 수입금액이 3억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산맥주보다 수입맥주에 유리한 주세 체계가 한동안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앞으로 수입맥주의 국내 시장 잠식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 체계에 따르면, 국산맥주 가격은 원재료 구매비용, 제조비용, 판매관리비, 판매이윤이 모두 포함된 출고원가에 주세(출고원가의 72%)·교육세(주세의 30%)·부가가치세(출고원가와 주세, 교육세를 모두 합한 가격의 10%)를 더해 산정된다. 하이트진로 맥주의 경우 500㎖병 기준 원가는 538.44원에 불과하지만, 주세(387.68원)와 교육세(116.3원), 부가가치세(104.24원)가 붙으면 최종 출고가는 1146.66원으로 올라간다.

반면 수입맥주는 과세표준이 훨씬 낮다. 판매관리비와 이윤 등이 모두 빠진 수입원가에 관세를 더한 가격의 72%가 주세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입원가는 수입업체가 정부에 신고한 가격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정확한 가격을 확인하기 어렵다. 업체들 역시 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수입맥주가 ‘4캔에 1만원’ 등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주세 적용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맥주 업체들은 세금을 부과받고 추후에 이윤을 붙여 판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고, 제품 가격 결정폭이 넓다”며 “반면 국산맥주는 국세청에 제조원가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고,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할인판매할 수 없어 훨씬 불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국내 생산 역차별에 외투기업 철수도

이 같은 불리한 시장 구조 때문에 한국 맥주 산업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최근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는 5월 1일부터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카스를 미국에서 만들어 수입하기 시작했다. 740㎖인 이 맥주 가격은 3500원으로, 100㎖당 가격이 473원이다. 500㎖짜리 국산 카스가 540원인 것과 비교하면 67원 싸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내에 740㎖짜리 맥주를 생산할 공장이 없어 해외에서 만들어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외국계 회사인 오비맥주가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을 보낸 것”이라며 들끓었다. 오비맥주는 글로벌 주류회사인 AB인베브의 자회사다.

투자를 약속했던 외국 기업이 떠나는 사례도 발생했다. 체코의 강소 맥주기업 브레브노스키 브루어리는 2015년 한국 맥주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 한국인들에게 브래브노스키란 이름이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프라하의 골드(Gold of Prague)’라는 새로운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들은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500만달러(약 53억원)를 투자해 연간 500만ℓ를 생산할 수 있는 체코 전통 양조시설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1월, 프라하의 골드는 결국 국내 진출 계획을 전면 철회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국내에서 맥주를 생산·판매할 때 받는 역차별이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와 이와 관련된 고용까지 막은 셈이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국산맥주는 주류회사의 영업을 바탕으로 업소용 시장에서 현재 점유율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면서 “가정용 시장에서 번지고 있는 수입맥주의 맛에 소비자들이 더욱 익숙해질 경우, 앞으로 업소용 시장에서조차 국산맥주는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도 “현재 국산맥주에 불리하게 책정되는 주세 체계가 지속될 경우, 국내 맥주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이는 결국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나아가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이트진로는 맥주사업 적자가 4년간 지속되자 지난해 가동률이 낮은 공장 세 곳 중 한 곳을 매각하기로 했다가 소주라인을 확대하는 것으로 한숨 돌린 상황이다.

대안으로는 세율 적용의 기준이 되는 출고원가에서 판매관리비, 판매이윤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제조원가에 따라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수입원가에 과세만 더해 세율을 책정하는 수입맥주와 가격 차이를 좁힐 수 있다. 또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종가세가 아닌, 생산량이 많고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세금을 더 부과하는 종량세 방식으로의 전환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대표적 서민 주류인 소주의 가격이 대폭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맥주업계의 주장은 소주 등 전 주류에 종량세를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맥주에 국한해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주세 체계가 개편되기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배정훈 기획재정부 환경에너지세제과장은 “주세 개편 여부는 물론 주세 개편 방향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최근 국내 맥주 제조업체들이 현 주세 체계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등 관련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