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들. 강남 4구 아파트 전세가 하락 영향으로 위례신도시 아파트 전세가도 떨어지고 있다. 사진 김리영 땅집고 기자
위례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들. 강남 4구 아파트 전세가 하락 영향으로 위례신도시 아파트 전세가도 떨어지고 있다. 사진 김리영 땅집고 기자

“2년 전 위례신도시에 들어온 전세 세입자 중에는 올해 계약이 끝나면 ‘송파헬리오시티’로 가겠다는 이들이 많아요. 전세금 빼면 송파헬리오시티로 충분히 갈 수 있거든요.”

위례신도시에 있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 ‘위례아이파크 2차’ 아파트 전용면적 108㎡는 2016년 11월 최고 7억원(20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이 아파트는 입주 2년차를 맞아 계약이 끝나는 전세 세입자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들 중에는 전세금 7억원에 조금 더 보태 인근 새 아파트나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겠다는 수요가 적지 않다.

실제로 송파구 잠실동 ‘트리지움’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전세금이 5개월 새 1억5000만원 정도 떨어져 7억8000만원(18층) 선에 거래된다. 올 연말 입주할 송파구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 아파트는 6억5000만원이면 전용면적 84㎡ 전셋집을 구할 수 있어 오히려 5000만원이 남는다. 위례신도시에 비해 평수를 좁혀 가야 하는 제약은 있지만, 입지의 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동을 고려할 만하다.

위례신도시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위례에 들어온다던 전철이 자꾸 늦어지고 출퇴근 여건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다시 서울 시내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전세 세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위례신도시 전세 시장이 서울 강남권 아파트 전세금 하락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다. 강남 지역에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어 전세금이 1억~2억원씩 빠지자, 위례에 살던 기존 전세 세입자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더구나 재계약 시즌을 앞두고 기대했던 교통망 개선이 늦어지는 것도 전세 세입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또 다른 악재도 있다. 위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송파구 가락동에 올 연말 1만가구 규모의 송파헬리오시티 입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위례신도시에 추진 중인 트램이 통과할 위례중앙역 광장. 사진 김리영 땅집고 기자
위례신도시에 추진 중인 트램이 통과할 위례중앙역 광장. 사진 김리영 땅집고 기자

위례신도시는 강남권에서 가장 가까운 신도시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보다 교통과 생활 인프라는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지은 지 20~30년 지난 강남권 아파트에 비해 새 아파트라는 프리미엄을 누렸다. 지난 2~3년간 집값과 전세금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강남에 비해 저렴한 것도 매력이었다.

그런데 올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강남 4구 아파트 전세금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6월 첫째 주 송파구와 서초구 전세금 변동률은 각각 -0.38%, -0.11%로 서울 25개구 가운데 하락률 1·2위를 기록했다.

송파헬리오시티 입주 대기 여파가 나타난 송파구 일대에는 올 들어 1억원 이상 전세금이 내린 단지도 많다. 이렇게 되면 기존 세입자들 중 상당수가 인프라가 열악한 위례신도시를 떠나 서울로 옮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

위례신도시 세입자들 중에는 송파헬리오시티 입주를 기회로 삼는 이들이 많다. 이 아파트는 위례신도시에서 3㎞ 정도 떨어졌고 지하철역도 단지에 붙어있다. 아직 입주까지 5개월여 남아있지만 송파헬리오시티 전세 매물은 전용면적 84㎡가 7억원대에, 59㎡는 5억~6억원대에 각각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84㎡ 급매물의 경우 6억5000만원에도 계약하겠다는 집주인이 있다.

위례신도시 전세금 하락 폭은 강남 4구보다 더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위례신도시에는 지난해 12월과 비교해 전세금이 1억~2억원 이상 내린 단지들이 늘고 있다. ‘위례그린파크푸르지오’ 전용면적 101.1㎡는 작년 12월 6억7000만원(12층)에 거래됐지만 올 5월 4억8000만원(11층)에 계약이 체결돼 6개월 만에 1억9000만원 하락했다.


10년 기다린 트램 사업 좌초 위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례신도시 전세 시장에는 또 다른 악재도 터졌다. 지난 2일 신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핵심 교통망 ‘트램(tram)’의 민간투자 사업이 무산된 것이다. 이 트램은 신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며 지하철 5호선 마천역~8호선 복정역 5.4㎞ 구간, 9개 정거장을 잇는 노면 전차다. 지하철이 멀고 버스를 이용해야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트램마저 무산되면서 세입자들은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위례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박모(42)씨는 “대중교통이 부족해 차 없이는 위례에서 사는 게 어렵다”고 했다. 현재 지하철 노선이 없는 위례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시내로 나가려면 버스로 이동한 후 8호선 장지역과 복정역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대 버스와 지하철로 위례에서 강남까지는 통상 30~40분, 많게는 1시간 정도 걸린다.

트램뿐만이 아니다. 위례에 추진 중인 전철 노선은 3개가 있지만 착공 시기조차 가늠할 수 없다. 8호선 복정역과 산성역 사이에 신설할 역은 2019년 12월 준공 목표인데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사업타당성 검토가 진행 중인 ‘위례~신사선’과 ‘위례~과천선’ 역시 착공은커녕 사업 진행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위례신도시의 경우 전세금 하락세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위례신도시 아파트값은 올 1월만 해도 평균 4.3% 올랐다. 서울 전체 평균이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 3.41%)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하지만 5월에는 0.11% 내려 하락세로 돌아선 데 이어 6월에는 0.24% 하락해 낙폭이 더 커졌다. 같은 기간 강남 3구는 각각 0.02%(5월), -0.04%(6월)로 위례신도시보다 높았다.

다만 올 하반기부터 위례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이 재개되는 건 호재로 꼽힌다. 신도시 안에서 입지가 좋은 북위례에서 새 아파트가 분양되면 시장의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올 8월에 A3-1블록에서 559가구가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10월에 A3-4B블록과 A1-6블록에서 921가구와 502가구를 각각 분양할 계획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수도권 신도시 분양 단지는 희소성이 높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가격 경쟁력도 있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금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투자 수요 위축은 각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은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강남권 세입자 상당수가 최근 부동산 상승기에 집을 구입했고 새 아파트 공급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어 연말까지 강남 전세 시장은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전세금 하락 현상은 도심보다 주변부에서 크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교통 여건이 나아지기 전까지 위례신도시 전세금은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