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콴타스항공이 운항하는 보잉 787-9 드림라이너의 비행 모습. 사진 콴타스항공
호주 콴타스항공이 운항하는 보잉 787-9 드림라이너의 비행 모습. 사진 콴타스항공

대형 항공사 간 초(超)장거리 직항 노선 개설 경쟁이 뜨겁다. ‘초장거리’라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업계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편도·직항 기준 비행 거리와 시간이 8000마일(약 1만2870km), 15시간 이상인 경우 그렇게 부른다. 10년 전엔 10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3개에 달한다. 참고로 서울~뉴욕 직항 비행 소요시간은 약 14시간, 서울~파리는 약 12시간이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3월 25일(현지시각) 서호주의 중심도시 퍼스와 영국 런던 사이 1만4498㎞ 항로를 17시간에 주파하는 논스톱 항공편을 취항했다. 호주와 유럽을 오가는 역사상 첫 직항편이다. 앨런 조이스 콴타스항공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런던 히스로공항 착륙 직전 기내 방송을 통해 “호주와 영국 사이를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날아왔다”며 성공적인 비행을 자축했다.

콴타스항공이 호주~영국 노선을 처음 취항한 건 71년 전인 1947년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려 7번이나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을 해야만 했다. 비행시간만 무려 55시간에 달했고, 꼬박 나흘이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툭하면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비행하는 것이 껑충껑충 뛰는 캥거루 같다고 ‘캥거루 노선’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퍼스~런던 구간은 운항 거리 기준 세계 2위의 장거리 직항 노선이다. 세계 최장거리 노선은 카타르항공의 카타르 도하~뉴질랜드 오클랜드 간 1만4535㎞(17시간 40분 소요) 구간으로 지난해 2월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순위가 바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싱가포르항공이 오는 10월 11일 싱가포르와 미국 뉴욕(정확히는 뉴저지주 뉴어크)을 연결하는 직항 노선을 취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운항 거리 1만5300㎞에 총비행시간은 18시간 45분이나 된다.

현재 3위는 에미리트항공의 두바이~오클랜드 노선(1만4201㎞·17시간 5분), 4위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로스앤젤레스~싱가포르 노선(1만4114㎞·17시간 55분)이다. 이들을 포함해 장거리 직항 노선 순위 1~6위가 모두 2016년 이후 신설된 노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사실 초장거리 직항 운항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싱가포르항공의 싱가포르~뉴욕 직항편은 2004년 신설됐다가 2013년 말 폐지됐다. 중요한 건 수익성이다. 초장거리 노선의 수익성이 높아진 데는 보잉사의 787-9 드림라이너와 에어버스의 A350-900ULR 등 연료 효율이 높은 차세대 항공기의 등장이 큰 몫을 했다.

2014년 배럴당 100달러 선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2016년 초 20달러 선까지 급락하는 등 저유가 시대가 지속된 것도 초장거리 노선 경쟁에 촉매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저비용항공사(LCC)의 급성장도 초장거리 노선 확산을 도왔다. 2010년대 들어 중·단거리 노선 경쟁에서 LCC에 밀린 대형 항공사들이 확실한 차별화를 위해 초장거리 노선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LCC의 상승세는 국내에서도 두드러진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LCC 6곳의 지난 6월 기준 국내선 수송 점유율은 58.9%, 국제선 점유율은 28.7%에 달했다. 그렇다고 국내 양대 대형 항공사가 초장거리 노선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높은 부채 비율에 오너갑질과 기내식 대란 등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초장거리 노선을 운영한다면 브라질과 멕시코 등 중남미가 취항지로 유력하겠지만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 대한항공은 2008년 브라질 상파울루 노선(로스앤젤레스 경유)을 주 3회 운항했지만, 수익 악화를 이유로 리우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16년 9월 운항을 중단한 바 있다.

국제 유가가 수익성의 중요한 변수

향후 초장거리 노선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는 유가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국제 유가가 최근 배럴당 70달러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17~19시간 동안 쾌적한 비행을 보장하는 것도 과제다. 싱가포르~뉴욕 노선의 경우 이코노미클래스 없이 67석의 비즈니스클래스와 94석의 프리미엄 이코노미클래스 등 모두 161개 좌석만 제공할 예정이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A350-900ULR 기내 LED 조명을 총 24종류로 서비스하고 있다. 승객의 피로 회복과 숙면을 돕기 위해서다. 홍콩 캐세이퍼시픽은 기내 요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개발한 혈액 순환을 돕는 기내 스트레칭법을 보급 중이다.

Plus Point

초장거리 비행 가능케 한 탄소섬유 혁명

싱가포르항공이 운항하는 에어버스 A350-900ULR의 비지니스 클래스. 사진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항공이 운항하는 에어버스 A350-900ULR의 비지니스 클래스. 사진 싱가포르항공

2016년 이후 취항한 초장거리 직항노선은 보잉사의 787-9 드림라이너와 에어버스의 A350·380 등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항공기는 연료 효율성이 기존 동급 모델 항공기보다 20~25%가량 높다.

드림라이너는 기체의 50%를 탄소복합재로 제작해 연료 효율성을 높였다. A350-900ULR의 동체와 날개도 탄소섬유 소재로 만들었다.

일반 금속으로 된 비행기 동체는 각각의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든다. 이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기압을 높이면 이음새가 헐거워져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기내 기압을 지상에서보다 낮추기 때문에 비행기를 오래 타면 쉽게 피곤해진다. 반면 탄소섬유로 만든 기체는 이음매 없이 하나로 돼 있기 때문에 기압을 지상과 비슷한 상태로까지 높여 피로감을 덜어준다.

탄소복합재 강도는 철의 10배지만 무게가 4분의 1에 불과하다. 녹이 슬지 않는 데다 탄성률은 철의 7배에 달할 정도로 내구성이 우수하다.

4개의 엔진으로 비행하는 기존 장거리 여객기와 달리 A350-900ULR과 787-9 드림라이너는 엔진이 2개뿐이다. 단일 엔진의 성능과 효율을 그만큼 높인 것이다. 비행기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인 엔진의 수를 줄였기 때문에 실을 수 있는 연료량은 그만큼 늘어난다. A350-900ULR의 경우 A350 표준형보다 2만4000L(리터)가 늘어난 16만5000L의 연료를 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