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이 2015 광저우 오토쇼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전기차 콘셉트카 ‘쉐보레 FNR’. 사진 블룸버그
GM이 2015 광저우 오토쇼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전기차 콘셉트카 ‘쉐보레 FNR’. 사진 블룸버그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정보기술(IT) 기업과 자동차 기업 간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동안 압도적인 주행 실적과 기술력으로 독주했던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에 대항해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GM의 자회사 크루즈 오토메이션(이하 크루즈)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크루즈는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이 운영하는 비전펀드와 일본 자동차 기업 혼다로부터 총 50억달러(약 5조7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자율주행차를 공개했다. 크루즈는 1000명인 직원 수를 올해 말까지 2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신규 인력 대부분은 IT 분야 엔지니어다.

최근 4~5년 동안에는 구글·인텔·바이두 등 IT 기업들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앞서 있었지만, 이제 자동차 제조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상용화를 앞두고 자동차 제조·유통·제조물책임 등 자동차 회사의 전통적인 대응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GM이 미래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선두를 잡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GM이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에 현재 핵심 플레이어로 꼽히는 구글 등을 제치고 최강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GM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GM이 자율주행차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판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세 가지 측면으로 살펴봤다.


포인트 1│불요불급 거점·조직 걷어내다

GM 자율주행차 공략의 첫 단추는 과감한 구조조정에서 시작됐다. 2014년 당시 판매 대수 세계 1위였던 GM은 이후 3년 동안 러시아와 호주·인도네시아 등 5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13개 공장의 문을 닫았다. GM은 이를 통해 지난 몇 년간 50억달러(약 5조3600억원)가 넘는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까지 60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목표다.

인도네시아 시장 철수는 공장 가동 2년 만에 이뤄졌다. 몇 년 내에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인도 시장에서도 발을 뺐다. 시장 점유율이 1%도 안 될 정도로 너무 낮고 더는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앞서 2013년 말 GM은 ‘유럽 지역 브랜드 강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각각 운영하는 자회사 오펠과 복스홀에 집중하기 위해 유럽에서 쉐보레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GM은 2017년 오펠과 복스홀마저 프랑스 푸조시트로엥그룹(PSA)에 22억유로(약 2조9000억원)를 받고 팔아치웠다.

오펠과 복스홀 매각은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GM 수뇌부가 그리는 글로벌 전략의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포기할 시장은 빠르게 포기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자율주행 등 미래 자동차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컨설팅 그룹 메리앤켈러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메리앤 켈러 대표는 “파산 후 GM의 경영적 결정은 단기적 이익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성을 보면서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북미 생산에 집중하는 것은 가장 수익성이 좋은 자동차 회사가 되기 위한 현명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수익성이 낮은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이미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중국·미국에 집중하는 GM의 전략은 주효했다. 2009년 경영 악화로 한 차례 파산했던 GM은 회생 이후 최근 4년간 해마다 사상 최대 수준의 영업이익(연간 12조~14조원)을 내고 있다. GM은 2017년 전 세계에서 960만 대를 팔았는데, 이 중 42%인 404만 대를 중국에서, 37%인 357만 대를 북미 시장에서 팔았다. GM이 판매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북미와 중국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다는 의미다.


포인트 2│‘카가이’ 대신 전략가가 채운 이사회

GM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해 기존 자동차 회사들과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GM의 최고이사회 구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GM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인 메리 바라 현 CEO가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라 CEO를 제외하면 GM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은 금융·국제 전문가와 전략가다. 휴렛팩커드(HP)·시스코 등 IT 회사 출신도 상당수다. 평생을 자동차에 바친 ‘카가이(car guy)’가 주를 이뤘던 과거 GM 이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약력도 다양하다. 먼저 댄 암만 GM 사장은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위원회의 최고재무담당자와 모건스탠리의 산업 투자 총괄 이사 등을 역임한 재무·투자 전문가다. 2010년 GM으로 자리를 옮긴 암만 사장은 GM이 2016년 5억달러를 투자한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리프트 이사도 겸하고 있다. 배리 앵글 GM 해외 사업 부문 담당 사장은 2015년 중남미 담당 부사장으로 GM에 합류했다.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북미·중국을 제외한 GM의 해외 사업 전반을 떠맡을 만큼 국제 업무에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GM이 ‘카가이’가 아니라 다방면의 최고 전문가들로 경영진을 구성한 이유는 미래 자동차 산업이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통(通)’들로만 굴러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GM은 회사의 수익기반을 받치고 있는 내연기관차 비중은 줄여나가는 한편 전기차·자율주행차·수소연료전지차 등 미래 자동차의 중심이 될 차세대 자동차에 전력 투자하고 있다. 책 ‘2022 누가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다나카 미치아키 일본 릿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동차, IT, 전기·전자 등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고 이들 업종이 하나로 융합하면서, 기존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산업 구조가 나타날 것”이라며 “기존 자동차 회사들도 자율주행·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차세대 자동차 산업에 요구되는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인트 3│전폭 투자로 자율주행 승기 잡아

GM이 다양한 분야에서 영입한 최고경영진, 사업 효율화로 확보한 자금을 기반으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미래 ‘자율주행차’ 시장의 승기(勝機)를 잡는 것이다. 이미 이 목표는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내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GM은 2019년 1분기 세계 자율주행차 톱 10에서 구글 웨이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GM은 같은 조사에서 지난해엔 1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내비건트 리서치는 이들 기업의 전략과 경영(실행)을 평가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GM은 IT 기업인 구글 웨이모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IT 기업으로서 구글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결국 미래 차 시장에서 자율주행차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은 GM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차 사고가 났을 때 이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능력에서 지금까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온 제조사가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사고 책임과 해결은 결국 제조사 몫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나카 미치아키 교수는 “미래 차가 여전히 자동차 형태를 유지하고 하드웨어가 여전히 기존 휘발유차의 연장선에 있는 한 기존 자동차 산업의 양산화 기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이유에서 거대 IT 기업이 양산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기존 자동차 제조사가 반격하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현재 GM은 미국 전역에서 자율주행차가 운행될 수 있도록 운수부 고속도로 교통안전국과 협의 중이다. 이미 샌프란시스코·피닉스 등에 이어 뉴욕 맨해튼에서도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 중이다.

이대로라면 불과 몇 년 후 미국 주 대부분에 GM이 만든 무인 택시가 돌아다니거나 GM을 필두로 한 기존 자동차 제조사가 테슬라 등 신흥 참여자를 앞설 가능성도 있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선택과 집중 전략, 미래 차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경영진, 자율주행에 대한 집중 투자가 GM이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의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