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LA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의 시범경기에서 르브론 제임스(노란옷)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전날 대릴 모레이 휴스턴 로키츠 단장이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을 했는데,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을 모두 취소했다. 9일 중국 베이징 NBA 기념품 가게 전경(작은 사진). 사진 AP연합·EPA연합
10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LA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의 시범경기에서 르브론 제임스(노란옷)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전날 대릴 모레이 휴스턴 로키츠 단장이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을 했는데,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을 모두 취소했다. 9일 중국 베이징 NBA 기념품 가게 전경(작은 사진). 사진 AP연합·EPA연합

“(홍콩 시위 지지 트윗을 올린) 대릴 모레이 휴스턴 로키츠 단장은 그 상황에 대해 못 배워서(not educated) 그런 글을 올린 것이다. NBA 선수들은 홍콩 시위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 미국 프로농구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한 말이다. 그는 10월 15일 시범경기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중국 쪽에 경도된 발언을 해 스포츠팬은 물론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팬들은 그를 원래의 별명 ‘King’이 아니라 ‘Qing(한어 병음 표기법으로 킹을 비꼰 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의 상징 NBA가 차이나 머니에 굴복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최정점 NBA 무대 위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시작은 지난 4일 대릴 모레이 단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었다. 그가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자 중국 관영 CCTV가 NBA 중계를 중단하고 인터넷 기업 텐센트, 커피 브랜드 루이싱커피, 스포츠 브랜드 리닝 등 중국 기업들은 NBA 후원을 중단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경기 티켓을 불태우는 인증샷을 올리는 대대적인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와 기업, 인민 모두 들고 일어나 돈줄을 죄고 압박하자 NBA는 즉시 인민 달래기에 나섰다. 로키츠 구단주는 “모레이가 로키츠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고, NBA 협회도 “모레이의 트윗이 중국 팬을 화나게 했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중국 역사와 문화를 존중한다”는 성명을 냈다. 특히 평소 정치·인종차별 등 미국 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던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스티븐 커 등 스포츠 스타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유독 입을 닫거나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NBA 리그에 깊숙이 파고든 중국 자본의 힘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나이키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종신 스폰서십 계약을 했는데, 나이키의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16%다. 특히 전사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중국 본토 판매는 두 자릿수 이상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제임스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게시글을 한 번 올릴 때마다 기본 1억 뷰 이상 실적이 나온다.

NBA 전체로 따지면 판은 더 커진다. NBA는 1992년 이후 3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7-2018시즌 NBA 경기를 시청한 중국인은 6억4000명으로 미국(3억 명)의 2배가 넘는다. ‘포브스’는 NBA의 중국 사업 가치가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중국 내 인터넷 경기 중계권을 가진 텐센트는 최근 15억달러를 주고 5년 치 계약을 갱신했다. 4년 전(5억달러)보다 3배 많다.


비윤리적 딜레마 빠진 글로벌 기업들

돈줄을 쥔 중국 시장이 미국 자본을 흔드는 사태는 NBA만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애플은 홍콩 시위대가 경찰 위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지도 애플리케이션 ‘홍콩맵닷라이브(HKmap.live)’를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 인민일보의 비판 논평이 나온 지 하루 만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서 “이 조치는 앱스토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보석 브랜드 티파니도 한쪽 눈을 가린 반지 모델 화보 사진을 공개했다가 홍콩 민주화 시위 중 실명한 여성을 연상시킨다는 중국 항의에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일부 기업들은 중국 반응이 나오기 전에 아예 자기검열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의 게임사 블리자드는 지난 7일 자사 게임 하스스톤 경기에서 홍콩 프로게이머가 홍콩 시위 옹호 인터뷰를 하자 즉시 자격 박탈, 상금 몰수 등 강력한 중징계를 내렸다. 동시에 해당 영상 삭제와 인터뷰를 진행한 캐스터 해고, 사과문 발표 등 즉각적인 수습에 나섰다. 텐센트는 블리자드 지분 4.9%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업들이 ‘중국의 검열에 굴복하느냐’ ‘(맞서다가 보복을 당해) 막대한 중국 투자금을 잃느냐’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이 1978년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혁·개방에 나선 이후 미국 기업들은 14억 시장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홍콩 시위, 무역전쟁 등 잇따른 일촉즉발의 상황 탓에 양국 간 정치·경제적 긴장 관계가 팽팽해지고 있다. 단순 소비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중국 자본이 뿌리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 메서롤 브루킹스연구소 펠로는 영국 ‘와이어드’에 “미국 기업은 중국 공장과 공급망, 중국인 연구자들의 활동 등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 경제는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완벽하게 결합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수는 약 36만 명이다.


Plus Point

中, 한 번 찍으면 가리지 않고 보복한다

중국이 자본력을 내세워 정치적 이슈를 덮는 것은 미국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은 자국에 반하는 기업이나 정부 등을 보이콧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일이 잦다. 10월 16일 온라인 뉴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한 번 찍히면, 철저하게 두들겨 맞고 시장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와 미국 의류 브랜드 베르사체, 코치는 지난 8월 티셔츠와 홈페이지에 홍콩, 대만을 중국과 분리해 표기했다가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작년 5월에도 중국 정부는 항공사, 금융사, 호텔 등에 대만·홍콩·마카오를 중국과 별도로 표기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신용카드 회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호텔 체인 메리어트 등이 타깃이 됐다.

한국 기업들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에 호되게 당했다.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보복에 시달렸다. 게임업계 역시 사드 사태 이후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판호(중국 내 게임 허가 번호)를 내주지 않아 신규 게임 수출길이 막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