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호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1996년 배상면주가 설립
배영호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1996년 배상면주가 설립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가 나온 것은 2010년이다. 올해가 출시 10년째다. 국내 최초 ‘무감미료 막걸리’로 자리매김해 막걸리 마니아의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농식품부 주최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을 받았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감미료를 잔뜩 넣은 시중 막걸리와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첫 목넘김부터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바나나, 요구르트 향도 진하게 난다. 혀끝에 남는 여운이 비단결 같다. 이게 뭐지? 이게 막걸리 맞나? 싶을 정도다. 가격은 다소 비싸다. 대형마트 같은 소매점에서 한 병에 2500원. 수입쌀로 만드는 장수막걸리보다는 두 배 이상 비싼 편.

그러나 느린마을 막걸리는 쌀 자체의 맛으로 기분 좋은 단맛을 낸다. 대부분의 막걸리가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쌀 함유량을 줄이고 인공 감미료로 단맛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느린마을 막걸리 쌀 함유량은 다른 막걸리보다 두세 배 많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병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쌀 함유량을 짐작할 수 있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병 바닥에 가라앉은 고형물(맑은 물 밑의 반고체 성분) 높이가 다른 막걸리의 두 배가 넘는다. 그만큼 쌀을 많이 넣었다는 증거다.

느린마을 막걸리를 개발한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를 만나 무감미료 막걸리를 국내 처음으로 만든 취지를 물어봤다. 배영호 대표는 “감미료를 넣지 않아 맛이 획일적이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는 21세기의 개성 있는 소비 트렌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이라고 말했다.


느린마을 막걸리를 어떤 취지에서 개발했나.
“2010년도에 느린마을 막걸리가 출시됐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 없는 막걸리가 처음 나온 것이다. 당시 막걸리 붐을 타고 대부분의 업체가 아스파탐을 넣은 막걸리를 경쟁적으로 내놓았지만, 우리만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지금은 몇 군데에서 무감미료 막걸리가 뒤이어 나왔다. 시중의 막걸리는 대개 일본식 누룩을 사용한다. 쌀도 거의 똑같고, 수입쌀 쓰는 업체가 많다. 그리고 완전발효시킨 뒤 맨 마지막에 아스파탐을 잔뜩 넣어 막걸리를 완성한다. 이러니 맛도 똑같다. 이건 제대로 된 막걸리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무슨 감미료가 있었겠나? 막걸리를 옛날 양조 방법 그대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쌀·누룩·물’ 이 세 가지만으로 막걸리를 빚어온 기본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를 만들었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막걸리치고 비싸다는 의견이 아직도 많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막걸리이기 때문에 가격과 품질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마실 때마다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나.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는 소비자가 구매 후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막걸리를 완성해 병에 담더라도 그 속에서는 유산균, 구연산, 젖산균 등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토해내고, 갖가지 향이 나는 것도 이들 미생물 활동 덕분이다. 그런데 이들 미생물의 활동은 온도, 습도, 누룩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막걸리를 만들 때부터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그래서 느린마을 막걸리는 365일 만들지만, 매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맛이 들쑥날쑥한 게 정상인가.
“막걸리 맛은 항상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을 단점으로 여기지 말고,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키워야 한다. 세계에 이런 술은 없다. 만드는 사람마다, 만드는 장소마다, 만드는 계절마다 술맛이 다름을 즐기라는 것이다. 이게 막걸리의 매력이다. 그래서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다름의 미학을 즐겨라’라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시대의 막걸리 가치다. 천편일률적인 맛의 술, 그건 20세기에서나 통하던 구시대 유물이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에나 통하던 가치다. 21세기에 왜, 제품이 얼마나 많은데, 대안이 얼마나 많은데, 귀한 돈을 소비자가 지불하면서 왜 천편일률의 맛을 강요받아야 하나? 그래서 이 세상에 이런 술(마실 때마다 맛이 다른)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바로 막걸리다.”


느린마을 막걸리가 생산되는 과정. 사진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막걸리가 생산되는 과정. 사진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막걸리의 또 다른 특징은 ‘사계절 다른 맛’을 낸다는 점이다. 이는 계절별로 만드는 막걸리 맛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병입 후 언제 마시느냐, 다시 말해, 병입 후 얼마간 숙성시킨 뒤 마시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배상면주가 측은 병입 후 1~3일 된 막걸리를 ‘봄 막걸리’, 4~6일 차는 ‘여름 막걸리’, 7~9일 차는 ‘가을 막걸리’, 10일 차부터는 ‘겨울 막걸리’로 부르고,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단맛, 신맛, 탄산미 등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막걸리 병 속의 미생물이 활발하게 대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맛이 줄어들고 대신 신맛과 탄산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했다.

병입한 지 얼마 안 된 봄 막걸리는 ‘신선, 달콤, 가벼운 탄산미’가 특징이다. 신맛은 가장 약한 대신 단맛은 가장 강하다. 탄산도 다른 계절 술에 비해 적다. 요구르트 향이 제대로 난다. 봄 막걸리를 3일 정도 더 두면 여름 막걸리가 된다. ‘신선, 상큼, 풍부한 탄산미’가 여름 막걸리의 맛이다. 병 속의 미생물이 당분을 집어먹어 단맛은 조금씩 줄어들고 대신 탄산이 증가한다.

병입 7~9일 차의 가을 막걸리는 탄산미가 절정에 이른다. 신맛이 강해져 다른 브랜드의 막걸리와 가장 유사한 맛을 낸다. 가장 오래 병입 숙성한 겨울 막걸리는 ‘진정한 술꾼의 막걸리’다. 단맛이 가장 약한 반면 신맛이 가장 강하다. 탄산은 가을보다 살짝 적다. 탄산이 공기 중으로 점차 날아가기 때문이다.

20대 젊은층은 왜 느린마을 막걸리를 좋아할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비하는 계층이다. 술집 테이블에서도 각자 좋아하는 각기 다른 술을 마시는 식이다. 한마디로 개성 있는 소비를 한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막걸리치고는 비싸다. 젊은이들이 막걸리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 비싼 막걸리를 찾아서 먹는 젊은이들은 정말 개성 있는 소비를 하는 소비자다. 느린마을 막걸리가 처음 나왔을 때 20대 소비자가 이제 30대가 됐다. 이제 이들이 술 소비의 주축이 되면 느린마을 막걸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술이 주목받을 것이다. 이들 뉴 제너레이션을 겨냥한 새로운 개념, 새로운 형태, 새로운 서비스의 술이 나올 것이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