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령 2012년 한국전통주학교 수료, 2013년 좋은술 설립 /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이예령
2012년 한국전통주학교 수료, 2013년 좋은술 설립 /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한 달에 두 번이나 청와대 행사에 선정된 전통술이 화제다. 이 술은 제조법부터 예사롭지 않다. 막걸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술은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잘 섞어 한 열흘쯤 지나면 술이 익어 완성된다. 그런데 이 술은 이런 발효 과정을 다섯 번 거친다. 한 번 발효를 거쳐 술을 완성하는 것을 단양주라 하고, 다섯 번 담금(발효)을 하는 술을 오양주라고 한다. 오양주는 그만큼 정성을 많이 들인 술일 뿐 아니라 술 원료인 쌀이 다른 술보다 거의 다섯 배 많이 든다. 이 술은 11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만찬 메뉴에 올랐을 뿐 아니라 11월 25~27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만찬주로도 쓰였다.

경기도 평택의 양조장 좋은술에서 만든 ‘천비향 약주’ 이야기다. ‘천년의 비밀을 가진 향기’라는 뜻이다. ‘2018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 부문 대상을 받은 프리미엄 약주다. 전통술 좀 아는 애주가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술이다. 그러나 가격이 워낙 비싼 것이 흠으로 지적되는 술이기도 하다.

천비향 시리즈에는 약주 외에 탁주, 증류식 소주도 있다. 천비향을 만드는 양조장 좋은술은 대표 상품인 천비향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역사가 매우 짧은 회사다. 2012년 한국가양주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전통주학교 과정을 이수한 수강생 6명이 공동출자해 이듬해인 2013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공동출자자 5명이 개인 사정으로 잇따라 도중에 회사 경영을 포기해 현재는 초기 멤버인 이예령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경기도 의왕에 있던 양조장도 2017년에 이 대표의 집이 있는 평택으로 옮겼다.


좋은술에서 개발한 천비향 제품.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좋은술에서 개발한 천비향 제품.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천비향은 어떻게 탄생했나.
“천비향은 오양주다. 다섯 번 발효를 한 술이란 뜻이다. 일반 막걸리는 한 번 발효한 단양주다. 발효 횟수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로 분류된다. 이 중 가장 발효 횟수가 많은 오양주는 그만큼 정성과 재료를 많이 들인 술이다. 단양주는 만들기 쉽다. 고두밥에 물과 누룩을 섞어 며칠 두면 술이 익어 완성된다. 곧바로 병에 넣어 내다 팔면 된다. 오양주는 고두밥에 물과 누룩을 섞어 발효하는 과정에서 계속해 밥으로 만든 덧술을 추가해준다. 덧술은 한마디로 누룩 속의 미생물 먹이다. 오양주는 네 번이나 덧술을 하는 만큼 미생물 활동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기 힘든 술이다. 처음부터 오양주 천비향이 쉽게 완성된 게 아니다. 처음 2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실패해서 버린 술이 수십 통이 넘는다. 천비향의 완성은 오양주를 다 빚은 후 몇 개월간의 장기 숙성을 거친 다음에야 가능했다. 술에 있는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덧술을 네 번이나 더 하므로 5차 발효 후에도 미생물이 많이 살아 장기 숙성을 통해 술의 향과 맛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일반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6도 정도인데, 천비향은 14도로 한 이유는.
“조선시대 양반이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로 탁주를 마실 때는 작은 잔에 천천히 풍류를 즐기면서 마셨다. 그러니 당시에도 양반가에서 가양주로 빚는 탁주 도수는 낮지 않았다. 탁주는 원래 벌컥벌컥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막 마시는 술은 ‘탁배기’라고 해서 약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주막에서 내놓는 술이었다. 이게 막걸리다.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서 막 거른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막걸리는 술지게미에 물을 타지 않고, 단양주 상태의 탁주에 물을 두 배 정도 부어 알코올 도수 5~6도로 맞춘 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탁주와 막걸리는 같은 술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수가 14도인 천비향은 막걸리라 하지 않고 탁주라고 이름 붙였다.”

무감미료와 알코올 도수는 어떤 관련이 있나.
“천비향은 설탕이라든지 일체의 감미료를 타지 않는다. 이런 술이 최적의 맛을 낼 수 있는 도수는 일반 막걸리 도수인 5~6도가 아니다. 알코올 도수가 14도쯤 돼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천비향 탁주와 약주는 오양주로 빚은 후 3개월간의 저온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발효가 끝나면 곧바로 병에 넣거나 숙성을 거치더라도 1~2주 이상 하지 않는다. 자칫 술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비향은 ‘느림의 술’이다. 발효도 다섯 번을 하고(오양주), 저온숙성도 적어도 3개월 이상 거친다.

천비향 술을 장기 저온숙성하는 이유는.
“술 향과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장기 숙성을 거친다. 천비향의 경우 발효가 끝나더라도 바로 병에 넣지 않고 3개월 이상 저온숙성을 거친다. 이렇게 해야만 향이 오롯이 난다. 그런데 장기 숙성 과정에서 술이 상하지 않으려면 술 속의 미생물 활동이 왕성해야 한다. 미생물 활동을 극대화하려면 결국 삼양주, 오양주를 만들 수밖에 없다. 단양주로는 장기 숙성이 불가능하다. 미생물 활동이 약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저온숙성을 하면 술 특유의 향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술에 천천히 젖게 된다. 지하 숙성고에서 오래 숙성을 하는 와인도 마찬가지다. 술을 천천히 익히는 것이다.”

쌀 함유량은 어느 정도.
“장수막걸리 같은 일반 막걸리의 쌀 비중은 10% 미만이다. 천비향 탁약주의 쌀 함유량은 55% 정도다. 오양주는 남들 안 하는 덧술을 네 번 더 한다. 그런데 덧술은 결국 쌀로 만들기 때문에 쌀 함유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쌀을 많이 쓰니까, 쌀 자체의 단맛이 술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그러나 천비향의 흠은 가격이 비싸다는 데 있다. 도수를 크게 낮춰 가장 저렴하다는 탁주 택이(8도)의 소비자 가격이 8000원. 오양주인 천비향 시리즈는 훨씬 더 비싸다. 천비향 탁주가 소비자 가격 1만원대 후반, 약주는 2만원대다. 전통주 주점에서 마시려면 이보다 두 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내년에 내놓을 술은.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로 만든 무궁화술이다. 무궁화술은 탁주 만들 때 쌀, 누룩 외에 무궁화 말린 걸 추가로 넣은 것이다. 그런데 무궁화값이 엄청 비싸다. 무궁화꽃 말린 게 1㎏에 100만원 정도다. 그래서 감당이 안 돼 내년에 무궁화나무를 심으려고 한다. 올해 8·15 광복절에 맞춰 출시하려고 했는데,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탁주와 증류주 두 종류로 나온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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