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영국 런던대 소속 임페리얼 컬리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메르세데스-벤츠 브라질 법인 승용 부문 대표이사,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영국 런던대 소속 임페리얼 컬리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메르세데스-벤츠 브라질 법인 승용 부문 대표이사,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정책 시행 전에 충분한 조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규제로 인한 손해와 이익의 균형을 맞추면서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죠.”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은 12월 5일 서울 중구 ECCK 사무실에서 가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라키스 ECCK 회장은 2015년 9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으로 한국과 처음 연을 맺었다. 3년의 정식 임기를 마치고 사업 성과 덕분에 임기를 연장했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량 2위에 머물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실라키스 사장 취임 이후 1위로 올라섰다. 한국 시장에서의 활약으로 2017년부터 그는 ECCK의 선출 회장직을 맡고 있다. 총매출 71조원, 총고용 5만 명에 달하는 주한 유럽 기업 360곳의 의견을 취합하는 역할이다. 실라키스 회장은 3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외국인 투자 기업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정책의) 유연성과 안전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자 기업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건의한 내용은.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때였다. 근로 시간 단축은 자칫하면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 손해 보는 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근로자는 임금이 줄고, 기업은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 시행 이전엔 충분한 조정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규제로 인한 손해와 이익의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지키는 방안이다.”

유럽연합은 1993년부터 주 48시간 근로제를 실시했는데.
“실제 유럽 기업은 근로 시간 단축 정책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정책의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고용 유연화나 자율적인 탄력 근로제와 같은 다른 정책과 함께 시행돼야 한다. 유럽의 경우 주 3~4일 하루 3~5시간 일하는 파트타임이 흔하다. 파트타임이 보편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근로 시간이 단축되기도 했다.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충분한 논의 기간을 가져야 기업도 장기 계획을 미리 세우고 근로자도 변화하는 부분에 적응할 수 있다.”

한국의 규제 강도는 높은 편인가.
“노동 친화적 정책이나 친환경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규제가 적용되기 전에 이해관계자가 의견을 낼 수 있는 논의 기간이 충분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매년 규제 개선안을 담은 백서를 내고 정부의 피드백을 받는데, 그 이유도 정부와 논의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다.”

ECCK의 제안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지난해 18개 산업 분야의 위원회에서 총 123건의 제안을 제시했는데 문 대통령을 만난 지 2주 만인 지난 4월 모든 영역에서 답변을 받았다. 물론 모든 제안이 하루아침에 요술봉 휘두르듯 100%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수용률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태도다. 서로 낙관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실라키스 회장은 정부와 기업의 윈윈(win-win) 전략을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 간 규제 논의는 기업 경영 환경을 개선시키는 양측의 성공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와 유럽 기업은 한국 경제 성장과 경영 생태계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규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 논란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 5일 국회에선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실라키스 회장은 마찬가지로 “(정부와 기업이)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라”는 취지의 답변을 건넸다.

타다 논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갈등을 풀어나갈 방향은.
“두 가지 측면, ‘혁신의 가능성’과 ‘사회상’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업가와 정치가가 모두 소비자의 필요와 트렌드를 따라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논쟁에서 주목할 점은 모빌리티 소비자의 수요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측의 대립은 해결책이 아니다.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사회적인 수요와 트렌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법적 논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정부를 대하는 기조는 대립보다 협업이다. 이 철학은 경영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 10월 서울 가로수길에 전기차 브랜드 EQ 전시관을 열면서 서울시 경제정책실장을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서울 도시 계획 ‘비전 서울 2039’를 발표했는데, 벤츠가 전기차나 공기정화 기술로 서울을 친환경 공간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업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올해 한국 정부가 유독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4년 동안 한국 정부를 지켜본 입장에서 변화가 느껴지나.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혁신’을 소리 높여 강조하고 있다.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4차 산업 기술을 기반으로 장기적 해결책을 세우는 점이 아주 긍정적이라고 본다. 일례로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한국은 미세먼지 중심의 대기오염 문제가 있다. 한국 정부가 수소차나 전기차 기술 개발을 독려하면서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이 마련되면 혁신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혁신은 기업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이면 뒤따라온다. 상자(규제) 안에 가두면 나타나지 않는다.”

경제 저성장기에 돌입한 한국에서 유럽 기업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위기는 아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유럽은 20~30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2% 미만이었다. 한국 기업과 유럽 기업이 혁신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혁신의 기반인 5세대 이동통신(5G) 등 네트워크 기술력이 뛰어나다. 반면 유럽은 자동화와 인공지능 분야에 강점이 있다. 이 특색이 결합하면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제조업이 생산 비용으로 압박받는 현재, 좋은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Plus Point

“국제 기준에 규제 맞추면 韓 기업도 유리”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2015년부터 매년 한국 정부에 규제 개선을 제안하는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14개 산업 분야에서 123건의 규제 개선안을 제안했다. 이 중 40%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했다. 올해는 18개 산업 분야에서 지난해보다 46% 증가한 180건을 건의했다. 실라키스 회장은 “회원사가 늘어나고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건의 사항이 많아졌다”고 했다.

올해 ECCK 제안에 포함된 대부분의 내용은 한국 규제가 국제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 분야 건의안 10개 중 6개가 이에 해당했다. 한국에 별도 기준이 있어 계기판을 한국 맞춤형으로 제작하거나 배출가스나 소음시험을 중복으로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 대표적 예다.

실라키스 회장은 “한국 규제가 국제 기준을 따르면 양국 모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유럽 기업은 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공산품 제작 시 한국 수출품에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수출 국가인 한국에도 중요한 사안이다. 한국 기업이 수출 비용을 줄이려면 국제 기준에 맞춰 생산하는 것이 편리하다.

백서에는 외국 기업을 위한 규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현행법에 따르면 1회 이상 수리 이후 누적 수리 기간이 총 30일을 초과하면 소비자가 교환·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실라키스 회장은 “외국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생산은 해외에서 이뤄져서 한국 기업보다 부품 배송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