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취업할 수 있을까.’
새해가 밝았지만 취업준비생 이모(26)씨는 3주 뒤에 다가올 설날이 두렵다. 큰집에서 마주할 친지들은 ‘번듯한 회사에 들어갔느냐’고 물어올 테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백수 신세’라는 대답에 폭풍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 뻔하다. 수시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공개채용(공채)과 달리 수시채용은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학점·어학성적·자격증 같은 정량적 스펙보다 ‘직무 적합성’을 본다고 하는데, 마땅히 내세울 만한 실무 경험도 수상 경력도 없어서다.
2020년 국내 취업 시장은 정기 공채가 줄고, 수시채용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8000여 명을 뽑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공채 폐지를 발표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SK그룹도 올해부터 3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공채를 없애고, 앞으로 모든 신입사원을 수시채용을 통해 뽑기로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19년 주요 대기업 대졸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 131개사 가운데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경우 공채 외에 수시채용으로도 뽑는 기업은 72개사로 55%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수시채용 비중은 평균 63.3%로 공채(35.6%)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수시채용 비중이 90% 이상이라는 기업도 21개사나 됐다.
기업이 공채 대신 수시채용을 택하고 있는 것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인력만 뽑을 수 있다’는 효율성 때문이다. 기존 공채의 경우 보통 연 2회 실시되며, 전형 기간은 5~6개월에 달한다. 현업 부서 입장에서는 1월에 발생한 결원을 채우려면 최소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대규모 인원을 채용할 수 있다는 공채의 장점이 경기 불황으로 대부분 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이며 퇴색했다. 반면 수시채용은 결원이 날 때마다 바로 실시할 수 있고, 전형 기간도 1~2개월 정도로 짧다. 현업 부서가 서류 심사와 면접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부서가 원하는 인재를 뽑는 방식이므로 신입을 실무에 투입했을 때 직무 적응력도 높다.
다만 취준생 입장에서는 ‘수시채용이 공채보다 준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직무 적합성이 중요하다는 말에 “겉으로는 신입을 뽑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경력을 들고 오라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채용 정원이 적어 합격률이 낮아 보인다는 것도 수시채용 지원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수시채용은 공채보다 경쟁률이 훨씬 낮다”며 “선택과 집중만 잘하면 오히려 더 쉽게 취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략 1│채용 공고 잘 챙기면 절반의 성공
수시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용 공고 확인이다. 채용 사이트에 대문짝 크기로 걸리는 공채 공고와 달리 수시채용 공고는 개별 기업 홈페이지에만 게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류 접수 기간도 보통 1주일 정도로 짧다.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꼭 가고 싶은 회사에 지원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채용 공고 자체가 허수 지원자를 걸러내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재원 ‘지원자와 면접관’ 대표 컨설턴트는 “대기업 공채 경쟁률은 보통 수백 대 일에 달하는데, 접수 기간이 짧은 특성 탓에 수시채용의 경쟁률은 한 자릿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채용 공고만 잘 챙겨도 취업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기업의 채용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확인하고, 모든 수시채용 공고에 이력서를 내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현 컨설턴트는 “목표 직무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희망 기업 리스트를 작성해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며 “한 가지 직무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번 공고가 나면 지원자 수만 명이 몰려 ‘서버 마비’ 사태까지 종종 발생하는 공채에서는 정량적 스펙이 중시된다. 한정된 심사 인력으로 모든 지원자를 심층 검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 컨설턴트는 “공채의 경우, 이력서 3만 개가 들어왔다고 하면 그중 2만7000개는 자기소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학점·어학 점수·대외활동·수상경력 등 정량적 요소로 거른다”며 “반대로 수시채용은 고민이 녹아들고 진정성 있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이 스펙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신입사원 퇴사율이 높아지며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뛰어난 인재’에서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인재’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뽑는 인원이 적은 수시채용은 기껏 들어온 신입이 금방 퇴사한다면, 채용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취업 커뮤니티 등에 나도는 ‘합격 자소서’의 공식을 따르면 필패,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녹여낸 자기소개서가 승산이 높다.
전략 2│직무 적합성 어떻게 대비하나
수시채용에서는 ‘직무 적합성’이 주된 평가 기준이다. 공채는 영업, 마케팅, 경영지원 등 광범위한 직군 단위로 전형하지만, 수시채용은 같은 영업 직군에서도 해외영업팀, 기술영업팀, 영업관리팀, 전략팀, 지원팀 등으로 직무가 세분된다. 입사하면 당장 직속상사가 될 면접관은 ‘우리 부서에 들어와서 일을 잘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취준생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직무 적합성,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윤호상 인사PR연구소 소장은 “많은 취준생이 직무 적합성을 직무와 관련된 ‘경력’이나 ‘자격증’으로 오해하고 지레 겁을 먹는다”며 “실제로는 직무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논리적으로 풀어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윤 소장은 “유통 직무에 지원한다며 도서관에 앉아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면접관은 플리마켓(flea market)을 열어 제 손으로 뭔가 팔아보고, 하다못해 마트 시식 판매 알바라도 해본 경험을 더 높게 쳐준다”고 덧붙였다. 꼭 거창하거나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어도 된다. 소소한 경험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직무에 대한 적합성과 진정성을 입증해 보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직무적 경험은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채 공부만 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시채용에 뛰어든 취준생은 새로운 경험을 쌓을 시간이 없다. 윤 소장은 그런 경우 ‘경험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동안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어떤 수업을 들으며 무엇을 느꼈는지를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직무 적합성을 끌어내 보라는 것이다.
전략 3│대학 1·2학년은 ‘공채 없다’ 생각해야
전문가들은 “수시채용 비중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고 공채 비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 대학교 1·2학년의 경우 공채는 아예 없는 셈 치고 일찍부터 수시채용에 올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유 있을 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에게 맞는 직무가 어떤 것인지 발굴하고, 본격적인 취업 준비 시기인 3·4학년에 해당 직무를 파고들라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점이나 어학 성적을 높이는 데만 집중한 ‘책상물림’은 수시채용에선 통하지 않는다. 현 컨설턴트는 “학점은 3.0 이상, 어학성적은 지원 커트라인을 넘길 정도면 된다”며 “그보단 관심있는 산업과 회사, 배우고 싶은 직무를 찾고, 이와 관련된 경험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