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수 한솔재활병원 이사장, 가양주연구소 전통주과정 수료 / 사진 박순욱 기자
장정수
한솔재활병원 이사장, 가양주연구소 전통주과정 수료 / 사진 박순욱 기자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세종대왕어주(약주)’를 만드는 양조장 장희도가는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미원초정로 1275. 부부가 운영하는 양조장은 조선시대부터 광천수로 이름을 날린 초정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축 세종대왕어주 대통령상 수상. 초정발전협회 일동’, 양조장 입구의 현수막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았다. 지역주민들이 써 붙였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하도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출품하긴 했는데,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의 얘기는 처음에는 ‘겸손의 말’로 들렸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자세히 듣고 나니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장 대표 부부가 고향인 청주로 귀촌한 것은 2011년. 양조장 설립도 그해에 했다. 그러나 귀촌 준비는 10년 전부터 시작했다. 청주로 내려오기 한참 전부터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술을 빚어왔다.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은 다음 고향에서 양조장을 차리자’는 생각이었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초정리가 그의 고향인 것도 양조장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귀촌 후 2년쯤 지나 술 품평회 출품 기회가 있었다.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 본선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 후 술 품평회 출품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6~7년여 지난 2019년 11월, 반전의 기회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기대도 하지 않은 술 품평회에서 출품자 중 단 한 명에게만 주는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세종대왕어주는 약주와 탁주가 있다.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술은 세종대왕어주 약주다. 약주는 3회 발효(삼양주), 3번의 여과, 2번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발효와 숙성에만 90일 이상 걸린다. 장 대표는 “저온 숙성을 하면 술 재료가 가진 본연의 향이 살아나고 술맛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세종대왕어주는 세종 때 어의(임금 주치의) 전순의가 지은 책인 ‘산가요록’에 나온 술 ‘벽향주’의 주방문(술 제조법)을 그대로 따라 빚은 술이다. 그러나 세종 당시 벽향주를 빚을 때에는 지금의 저온 숙성 기술이 당연히 없었다. 장 대표는 “세종대왕어주는 벽향주를 따라 만든 술이지만, 벽향주가 거치지 못한 저온 장기 숙성을 했기 때문에 벽향주보다 더 맛있는 술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세종대왕어주. 사진 박순욱 기자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세종대왕어주. 사진 박순욱 기자

‘산가요록’은 어떤 책인가.
“‘산가요록’은 음식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백과사전에 가깝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적어놓은 책이다. 농업진흥청에서는 이 책이 음식, 술보다는 농법(농사짓는 방법)에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온실을 만든 기록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온실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지붕 쪽에 한지를 둘러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한 것 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이 온실을 통해 궁에서 사시사철 채소를 키워 먹은 기록이 나와 있다.”

장희도가 양조장이 있는 이곳 초정리와 세종대왕의 인연은.
“초정리는 세종대왕이 두 번에 걸쳐 거의 넉 달 이상을 머문 곳이다. 눈 질환이 심했던 세종대왕을 위해 신하들이 이곳에서 요양하기를 권했다. 세종대왕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요양하면서 한글 창제 마무리 작업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정리 광천수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광천수다. 이곳이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술에 어떤 스토리텔링을 입힐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가 초정리에 있는 양조장 위치, 초정리에서 오래 요양하신 세종대왕, 세종대왕 어의가 만든 책의 벽향주 주방문을 따라 만든 술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술 이름에 세종대왕을 넣기로 했다. 지역(초정리), 세종대왕, ‘산가요록’을 다 결부해서 이름을 지은 셈이다.”

세종대왕어주는 어떻게 만드나.
“재료는 다른 전통주와 같다. 찹쌀, 멥쌀, 누룩, 물을 쓴다. 세 번 담그는 삼양주다. 전해 내려오는 벽향주 주방문이 많은데, 그중 이곳 초정리와 인연이 깊은 세종대왕의 어의가 쓴 ‘산가요록’ 주방문을 택했다. 삼양주로 하되 1·2차 밑술은 죽, 3차 덧술은 고두밥으로 했다. 찹쌀과 멥쌀을 합해서 쌀 함유량은 45% 정도 된다.”

장정수 대표 부부와 인터뷰는 양조장 체험실에서 진행됐다. 시음, 판매 공간으로도 쓰이는 곳이다. 인터뷰 도중 세종대왕어주 약주 맛을 봤다. 색깔부터 달랐다. 살짝 푸른 빛이 돌았다. 세종대왕어주의 모태가 된 ‘벽향주’의 ‘벽’ 자가 푸르다는 뜻이다.

벽향주는 원래 평양 지방의 명주로 명성을 날렸던 술이다. 다른 술에 비해 빛깔이 맑고 밝은 게 특징이다. 세종대왕어주 약주도 그랬다. 담백하면서도 누룩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느낌이었다. 누룩의 고약한 냄새를 뜻하는 누룩취는 없었지만, 누룩 향이 다소 강해 ‘한약재를 넣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는 “신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난 술”이라고 평했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는 어디서 비롯되나.
“세종대왕어주에 들어가는 재료는 쌀, 누룩, 물뿐이다. 그런데도 과일 향, 꽃 향이 난다. 전체적으로 신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밀 누룩으로 빚는 술이 온도 관리가 잘 안 되거나 하면 신맛이 도드라진다. 밀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초기에 젖산발효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단맛은 쌀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고 또 알코올로 바뀌면서 생긴다. 그런데 신맛과 단맛의 조화는 온도 관리와 발효 관리에 달렸다. 신맛과 단맛, 그중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서는 좋은 술이 될 수 없다. 밀 누룩을 사용함에 따라 젖산발효에 의해 생기는 신맛이 도드라지지 않으려면 쌀이 가진 전분의 단맛이 거의 비슷한 힘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밸런스는 적절한 온도와 발효 관리에서 나온다.”

초정 약수의 미네랄 성분이 술 빚는 데 어떤 역할을 하나.
“미네랄 성분은 누룩 속 효모 활동을 왕성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발효가 잘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종합영양제를 먹듯이 효모가 미네랄을 먹으면서 쑥쑥 큰다는 얘기다. 즉 미네랄 성분이 많은 물을 사용하면, 술 발효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이 지역 물인 초정약수에는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 배양이 잘되니까 결국 술 발효도 잘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