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서울대 경영학과, 국제 공인 맥주 심사관 /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가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김태경 서울대 경영학과, 국제 공인 맥주 심사관 /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가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달콤하고 쌉싸름한 첫사랑의 맛을 수제 맥주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맥주 ‘덕후(맥주 마니아)’가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후 한국 P&G, 베인 앤드 컴퍼니(서울 및 암스테르담 근무)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이런 글로벌 기업을 박차고 나와 서울 성수동에 브루펍(맥주를 현장에서 만들어 파는 맥주 전문업소)을 차린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김태경(41) 대표 이야기다.

2016년, 20~30대 감성의 카페가 몰려 있는 서울 성수동에서 1호 펍을 연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현재 서울 건대입구, 잠실 등에도 대형 업소를 잇따라 열었다. 2019년에는 경기도 이천에 연산 1200t 규모의 브루잉 공장도 지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7년에 내놓은 ‘첫사랑’이 빅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첫사랑’은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0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도 최고상인 ‘베스트 오브 2020’을 수상, 전문가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았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펍에서 취급하는 수제 맥주는 30종이 넘지만 ‘첫사랑’ 하나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30%에 달한다.


‘첫사랑’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수제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은 즐기지만 끝 맛이 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첫사랑’은 쌉싸름한 맛은 주되, 쓴맛의 여운은 거의 없도록 만들었다. 보통 수제 맥주에 넣지 않는 귀리, 밀을 조금 넣은 것도 살짝 단맛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첫사랑은 개발 단계부터 철저히 20~30대 여성 고객을 겨냥해 만들었는데, 40~50대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즐겨 찾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처음부터 여성 고객을 염두에 두고, 쌉싸름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수제 맥주를 만든 게 주효했다는 얘기다. 수제 맥주 하면 쌉싸름함을 넘어서 쓴맛이 도드라지는 게 가장 큰 특징인데, 이런 수제 맥주 스타일과 다르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첫사랑은 2017년에 출시한 인디아 페일 에일(IPA) 계열의 맥주다. IPA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수제 맥주인데, 첫사랑은 IPA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헤이지(Hazy) IPA다. ‘헤이지’는 탁하다는 뜻이다. 일반  IPA보다 홉을 더 많이 넣어 맥주 색상이 더 탁하다.


서울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영업장에 있는 맥주 텝. 손님이 직접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영업장에 있는 맥주 텝. 손님이 직접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맛이나 향은 어떤가.
“달콤한 맛도 나지만 전반적으로 끝 맛은 쌉싸름한, 쓴맛이 난다. IPA 특징이 그렇다. 그러나 일반적인 IPA에 비해서는 훨씬 덜 쓰다. 일반 IPA에 비해 홉을 30%나 더 넣었지만 쓴맛이 덜 나는 것은 밀·귀리 때문이다. 밀과 귀리가 좀 부드러운 맛을 내고, 단백질 성분이 많다 보니 단맛이 도드라져서 쓴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수제 맥주는 쓴맛이 특징 아닌가.
“영어의 ‘쓰다, 쌉싸름하다’는 의미인 ‘비터(bitter)’는 맥주 업계에서 부정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시장 사정은 다르다. 수제 맥주 덕후들도 맥주 첫 모금의 쌉싸름한 맛은 좋아하지만, 뒷맛이 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쌉싸름한 향은 많이 나지만 쓴맛은 도드라지지 않는 맥주를 만들고 있다. ‘첫사랑’은 알코올 도수가 6.5도로 높은 편인데도 여성들이 더 좋아한다.”

홉은 양조 단계에 언제 넣나.
“홉을 첨가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양조 초기, 맥즙(분쇄한 몰트에 더운물을 부어 60~70도로 높여 당화시킨 후 여과한 액체 성분을 말하는 것으로, 발효 과정을 거치면 맥주가 된다)을 끓일 때 넣는 것을 보일링 호핑(boiling hopping)이라고 하고 발효할 때 넣는 홉 방식을 드라이 호핑(dry hopping)이라고 하는데, 드라이 호핑은 향에 임팩트는 주되 쓴맛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우리는 드라이 호핑 기법을 많이 쓴다.”

제품은 몇 종류 정도 되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제품은 다 합치면 30~40종이다. 이 중 첫사랑, 성수동 페일에일, 어메이징 라거 세 제품이 간판 상품이다. 밀땅이라는 밀맥주도 있다. 주류 전문숍에는 진작부터 캔 제품 형태로 팔고 있었다.”

수제 맥주 시장에서 여성의 비중은.
“한국 수제 맥주 시장엔 여성 고객이 남성보다 더 많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업장의 경우 7 대 3 정도로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맥주펍에 남성들로 득실대는 외국과 달리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외국 맥주 업계도 신기해한다. 트렌드와 맛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브루펍을 일종의 ‘맛집’으로 여긴다. 대기업 맥주 같은 천편일률적인 맛이 아니기 때문에 브루펍에서는 자신의 취향별로 맥주를 골라 마시는 즐거움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뀐 주세가 수제 맥주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맥주 주세가 종가세(제조원가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에서 종량세(제조원가와 상관없이 생산량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로 전환되면서 수제 맥주는 세금이 30% 정도 줄었다. 수제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제조원가가 높아 그동안 세금 부담이 컸는데, 이런 걸림돌이 해소된 것이다. 종량세로 전환되고 세금이 줄면서 제조원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종가세 시절에는 좋은 재료를 쓸수록 소비자들에게 가격 부담(세금 상승으로 인한)으로 작용했다. 앞으로는 세금 추가 상승 없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소매 시장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지 않나.
“종량세 도입 이후 편의점에 들어가는 수제 맥주가 다소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왜냐면 ‘4캔에 만원(1캔에 2500원)’이라는 왜곡된 가격정책이 편의점 맥주 매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4캔에 만원’에 팔 수 없는 고급 맥주는 편의점에 아예 들어갈 수 없는 실정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제품 중 ‘4캔에 만원’을 충족시키는 맥주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 정책에 맞추기 위해 편의점 전용 상품으로 최근 ‘서울숲 수제라거’와 ‘노을 수제페일’ 두 제품을 새로 만들었다. 편의점에서 판매 중이다. 가격을 ‘4캔에 만원’에 맞추다 보니 홉 사용량을 다소 줄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