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6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관련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6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관련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와 거대 여당이 일제히 기업 총수 일가 및 경영진의 부당한 사익 추구를 막고 일반 주주에게 힘을 싣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에 나섰다. 상법 개정을 놓고 전문가들의 입장은 갈린다. 한편에서는 경영권 약화 탓에 한국 기업이 외국 투기 자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경영 투명성 제고로 기업 가치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법무부는 6월 11일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 요건 완화 △배당 기준일 규정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다중대표소송 제도는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비상장회사는 주식의 100분의 1, 상장회사는 1만분의 1을 보유한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적자를 냈을 때 삼성디스플레이의 모회사인 삼성전자 주주들이 회사 지분 0.01%를 모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배임 등으로 고발할 수 있다.

현행 상법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를 상대로 손해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 소송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가 장악한 자회사의 불법 행위 탓에 모회사가 손해를 볼 경우 일반 주주가 사측에 책임을 물을 마땅한 법적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위법한 사익 추구 행위를 방지하고 소수 주주(경영권을 갖지 않은 일반 주주)의 경영감독권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다중대표소송 도입이 논의돼 왔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도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주총에서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출하도록 규정한다. 이사회가 거수기라는 비판에서 감사위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영 활동을 감시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법무부 개정안은 해석상 혼란을 빚어온 의결권 제한 규정도 정비했다. 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최대 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해 3%, 일반 주주도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도록 일원화했다. 주총에서 전자 투표를 활용해 감사 등을 선임하는 경우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로 완화한다. 현재는 출석 주주 의결권 과반수가 찬성하고 발행 주식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법무부는 배당 기준일 관련 규정을 개선해 주총이 3월 말에 집중되는 부작용도 해소하기로 했다. 소수 주주의 권한 행사 요건과 관련한 규정도 손봐 해석상 논란을 없앴다.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6월 18일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21대 국회 1호 법안인 상법 개정안은 법무부 안과 비교해 큰 틀에서 유사하나, 집중투표제를 전면 도입하고 이사 해임 요건을 담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집중투표제는 회사가 사내이사를 2명 이상 뽑을 때 1주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1주당 뽑는 이사 수만큼 표를 주는 제도다. 이사를 2명 뽑는다면 1주를 지닌 주주는 2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이를 이사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어 소수 주주가 추천한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사 해임 요건은 이사가 횡령·배임죄 등으로 기소되거나 분식회계에 관여했을 때 이사의 해임을 소수 주주도 주총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상법 개정안에 담았다. 이사의 임기 상한을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매년 주총에서 성과를 평가받게 하고 이사 해임의 결의 요건을 주총 특별결의에서 보통결의로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거대 여당 등장으로 상법 개정 탄력

상법 개정안은 모두 대주주의 입김을 줄이고, 소수 주주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과거 19, 20대 국회에서도 상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재계 등의 반발 때문에 무산됐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거대 여당의 등장으로 상법 개정이 탄력받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공정 경제’ 공약을 내걸었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상법 개정을 언급했다.

재계는 현재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이 ‘기업 옥죄기’라고 지적한다.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업 경영권이 흔들리면서 외국 투기 자본이 연합해 한국 기업을 무차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 제도 도입은 소송 남발과 지나친 경영 간섭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전문가 입장 역시 갈린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한국 기업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외국 투기 자본이 허점을 파고들어 주로 한국의 ‘간판’ 기업이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많은 한국 기업이 불안해한다”며 “이는 부당한 경영권 개입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할 최소한의 보완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상법 개정을 법무부가 주도하는 데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김태기 교수는 “법무부가 상법 개정을 주도하면서 다른 경제 부처와 협의한 흔적이 안 보인다”라며 “기업 몰이해에서 비롯된 반(反)기업적 법안으로 경제, 경영에 대한 일말의 고려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외국 투기 자본이 한국 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M&A)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적대적 M&A를 하려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해야 하는데, 한국 기업은 시차임기제(이사들의 임기를 분산시켜 전체 이사가 교체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경영권 방어 장치의 일종)를 시행하고 있어 한꺼번에 많은 수의 이사를 교체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적대적 M&A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했다.

또한 이 교수는 “상법 개정을 반기업법이라고 하는 것은 기업과 총수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업 총수나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나 사적 이익 추구를 방지하자는 게 상법 개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상법 개정으로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기업 가치와 기업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며 “그렇다면 경영 상황이 어려울수록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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