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충북 무형문화재(청명주) / 김영섭 중원당 대표가 ‘약주의 교과서’로 불리는 청명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김영섭
충북 무형문화재(청명주) / 김영섭 중원당 대표가 ‘약주의 교과서’로 불리는 청명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충북 충주가 원산지인 ‘청명주’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주방문(술 빚는 방법) 그대로 빚은 술이다. 신라 진흥왕 시절, 가야 출신의 우륵이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며 가야금을 연주한 곳이 충주 탄금대다. 이곳 탄금대 마을에는 김해김씨 집성촌이 있고, 6대째 이곳에서 사는 김영섭 중원당(양조장 이름) 대표가 만드는 술이 청명주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뛰어난 17도의 약주로, 전통주 업계에서는 ‘약주의 교과서’로 부를 정도로 명성이 높다.

4월 5일 청명절에 마시는 봄술인 청명주는 김해김씨 가문에 전해져 오는 민간 약방문 ‘향전록’에 주방문이 기록돼 있고, 김 대표의 부친인 고(故)김영기 옹이 복원했다. 당시가 1993년, 김 대표 부친은 충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지금은 아들인 김영섭 대표가 무형문화재를 이어받았다. 무형문화재 명인이 만드는 술, 청명주는 어떤 술일까?


중원당을 찾은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중원당
중원당을 찾은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중원당

청명주 약주는 어떻게 만드나.
“약주 밑술은 찹쌀죽으로 빚는다. 덧술은 찹쌀 고두밥으로 한다. 약주는 멥쌀을 전혀 쓰지 않는다. 밑술을 3일간 발효시킨 뒤 덧술을 더한다. 두 번 담금 하는 이양주다. 첫 발효는 3일간이지만 덧술을 넣은 뒤인 후발효는 거의 3개월간 한다.”

3개월이나 저온 발효하는 이유는.
“밀 누룩을 쓰다 보니 발효가 좀 더디다. 일반 약주는 25도에서 발효하는데, 청명주는 15도에서 오랫동안 후발효한다. 낮은 온도에서 발효가 진행돼 3개월 정도 지나야 발효가 끝난다.”

오랜 발효가 술맛에 어떤 영향을 주나.
“술이 일단 부드럽다. 과일 향이 풍부하다. 장기 저온 발효한 덕분이다. 숙성도 3개월간 진행한다. 발효와 숙성을 합해 6개월 정도 걸린다.”

청명주에서 누룩의 중요성은.
“좋은 누룩을 쓰는 것은 당연한데, 누룩이 술맛에 차지하는 영향이 꽤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밑술이나 원료 처리 방법에 따라 술맛이 좌우된다. 밑술을 죽으로 하느냐, 떡으로 하느냐, 또 범벅으로 하느냐, 고두밥으로 하느냐에 따라 술맛에 차이가 있다. 밑술의 제조 방법이 술맛을 결정한다. 청명주 약주의 경우, 밑술을 찹쌀죽으로 해서 덧술(찹쌀 고두밥) 할 때 물을 전혀 추가하지 않는다. 물을 덜 넣었기 때문에 신맛이 나서, 찹쌀의 강한 단맛을 잡아준다. 단맛과 신맛의 적절한 조화는 쌀과 물의 배합 덕분이다.”

청명주는 단맛과 비슷한 정도의 신맛이 있다. 이 신맛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신맛이 나는 이유는 원료 특히, 물의 비율 때문이다. 쌀과 물의 비율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제조 비밀이라 곤란하고, 물이 다른 술보다 적게 들어가는 것이 신맛에 영향을 준다고는 얘기할 수 있다. 단순히 물의 비율 때문만은 아니고, 물과 발효 온도, 원료도 좀 관련이 있다. 소량 들어가는 밀가루도 신맛에 영향을 준다.”

신맛이 술 전체의 밸런스에 어떤 영향을 주나
“찹쌀을 원료로 하는 술은 멥쌀로 빚은 술보다 상대적으로 더 달다. 신맛이 단맛을 좀 잡아준다. 신맛이 없었다면 청명주 약주는 상당히 단맛이 강한 술이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평이한 약주였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단맛과 잘 어우러진 신맛 덕분에 ‘고급 화이트와인 같다’는 평가도 받는다. 신맛과 단맛의 적절한 조화가 청명주의 장점이다.”

‘향전록’ 말고도 청명주에 대한 기록이 있나.
“고문헌을 보면, 여기 지명이 금천(금탄)이라고 나온다. 실학자 이규경의 책 ‘오주연문장정산고’에 청명주에 대한 언급이 있다. ‘청명주는 금탄(금천)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청명주의 양조 방법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해서 기록해 둔다’고 적었다. 술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적었겠는가?”

청명주는 어떻게 복원됐나.
“돌아가신 부친이 김해김씨 가문에 전해져 오는 ‘향전록’의 주방문대로 청명주를 복원했다. 1993년에 지방무형문화재로 등록됐다. 훨씬 이전부터 집안 친척 집마다 청명주를 빚어 왔는데,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겼다. 아버지께서 그 책을 보고 복원했다. 1993년에 무형문화재로 등록됐지만, 그 7~8년 전부터 청명주 복원 노력을 해왔다. 2005년부터 아들인 내가 전수자로 나섰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2008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청명주 복원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아버지 때 무형문화재 지정은 받았지만, 그때도 술은 안정화되지 못했다. 레시피 외에 효모를 넣는다든지 심하지 않은 변형 제조법이 동원됐다. ‘향전록’의 레시피 그대로 술을 만들어 맛이 제대로 나온 것은 2016년이다. 그때부터 평이 좋아졌다. 아버지가 이룩한 1단계 복원은 완벽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나 역시 20여 년간 술을 만들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술 빚기를 처음 배운 배상면연구소에선 전통 누룩을 쓰지 않는데, 그래서 개량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군대 제대 후에 바로 술 제조에 뛰어들었다. 다른 직업은 가져본 적이 없다.”

왜 처음부터 ‘향전록’ 그대로 술을 만들지 않았나.
“그대로 만들기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방문에는 쌀과 물의 배합 비율, 사용하는 누룩 정도가 기록돼 있을 뿐, 발효 방법과 기간, 온도 등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니 주방문 외에 여러 조건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16년부터는 주방문 그대로 안정적으로 청명주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청명주 소주를 추석 즈음에 새로 내놓을 계획이다. 예전에도 약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탁주·소주도 있었다. 쌀로 술을 빚으면 기본적으로 막걸리가 나오고, 맑은 부분만 걸러내면 약주가 되고 이를 증류하면 소주가 된다. 이전에도 청명주 소주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 문화재 지정은 약주만 돼 있다. 청명주 탁주도 2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토기로 만든 소줏고리로 소주를 증류하고 있다. 동증류기보다는 토기 소줏고리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씩 증류해 저장하고 있다. 지금은 45도로 숙성 중인데, 병에 넣을 때는 40도로 낮출 생각이다. 숙성은 1년 정도 할 예정이다. 청명주 소주가 나오면 탁주·약주·소주 라인업이 완성되는 셈이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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