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4가에 있는 고잉메리 3호점.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서울 을지로4가에 있는 고잉메리 3호점.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여인호전 삼성물산 해외사업팀, 네오스토어 대표, 행성알 대표
여인호
전 삼성물산 해외사업팀, 네오스토어 대표, 행성알 대표

후텁지근한 날씨와 마스크의 답답함이 온몸의 기운을 빼앗아가던 8월 13일 오후, 서울 을지로4가에 있는 ‘고잉메리’ 3호점을 찾았다. 기진맥진 상태로 매장 문을 열자 흥미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방문객들이 진열 상품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각종 주전부리와 음료, 냉동식품, 와인잔, 소스, 주방용품 등 다양한 제품 구성이 눈을 즐겁게 했다.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 디자인이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을지로 감성’과 잘 어울렸다. 한쪽 식음료(F&B) 코너에서는 요리사가 주문받은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몇몇 방문객은 테이블에 앉아 완성된 요리를 즐겼다. 일부는 와인까지 사와 낮술을 마셨다.

“편의점이면서 분식점이죠. 술을 즐길 수 있으니 술집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이곳을 ‘융합 커머스 플랫폼’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친구를 만나 먹고 마시면서 돈을 쓰는 건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 행복 추구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잉메리를 세운 여인호(49) 옥토끼프로젝트 대표가 말했다.

옥토끼프로젝트는 2017년 시장에 나와 20~30대 소비자에게 큰 사랑을 받은 ‘요괴라면’ 개발사다. 출시 당시 요괴라면은 봉골레·국물떡볶이·크림크림 등 기존 라면에 없던 맛과 강렬한 원색 포장지에 그려진 요괴 캐릭터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수많은 인플루언서(인터넷상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가 소셜미디어에 요괴라면을 소개한 덕에 옥토끼프로젝트는 마트·편의점 등의 전통 유통 채널이 아닌 자체 온라인몰만 활용하고도 출시 한 달 만에 요괴라면을 7만 개 이상 팔 수 있었다. 요괴라면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4월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갤럭시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라면·삼양라면 살 때와 요괴라면 살 때의 마음이 같을 수 없습니다. 전자가 라면 취식 자체라면 후자는 거기에 호기심·재미 등이 붙어요. 낯선 존재를 만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죠. 많은 소비자가 요괴라면 구매 인증샷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걸 보면서 오프라인 매장 설립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여 대표는 지난해 고잉메리 종각점(1호점)을 시작으로 이 일대에 매장 두 곳을 추가로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얼마 전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홀로 매장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문한 3호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올해 4월에 오픈했는데도 하루 평균 방문객이 1000명 수준으로 순항 중이다.

여 대표는 요괴라면을 내놨을 때처럼 고잉메리 역시 리테일(편의점)과 F&B(분식점)라는 기본 목적 이상의 어떤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각기 다른 듯하지만 실은 치밀하게 연결된 이용 시스템이 이를 말해준다. 예컨대 고잉메리 방문객은 이곳에서 파는 식품을 그냥 사갈 수도 있지만, 매장 내 셰프가 해당 제품으로 개발한 신메뉴를 사 먹을 수도 있다. 레시피는 유튜브로 공개된다. 매장에서 맛본 요리가 마음에 들면 집에서도 유튜브를 보며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프라인은 이미 한참 전에 커머스 기능을 온라인에 빼앗겼습니다. 그냥 필요한 걸 사는 수준이라면 쿠팡에서 주문하는 게 낫죠. 오프라인의 기능은 반드시 재정의돼야 해요. 재밌거나 신선하거나 행복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언택트(비대면) 시대잖아요. 사람들이 사회적 격리를 뚫고 어렵게 만나는데, 그 만남의 공간이 ‘노잼’이면 안 되겠죠.”

여 대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5년 전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든 개인사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아프기 전 여 대표는 식품 제조사와 유통 채널을 연결하는 커머스 업체를 운영했다. “2008년 회사를 세워 7년간 쉼 없이 일했습니다. 뭔가 거룩한 걸 추구한 건 아니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 일했어요. 그러다 백혈병에 걸렸고, 큰딸의 골수 이식으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골수 이식 과정에서 혈액형도 AB형에서 B형으로 바뀌었다. “살면서 혈액형을 바꿔본 인간이 망설일 게 뭐 있겠나 싶었죠. 마음 맞는 동료들과 요괴라면 만들고 고잉메리를 세운 원동력이 됐어요.”


고잉메리에는 오뚜기·노브랜드 등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고잉메리에는 오뚜기·노브랜드 등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매장 방문객들이 식음료를 즐기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매장 방문객들이 식음료를 즐기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고잉메리에서 직접 조리해 판매하는 음식.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고잉메리에서 직접 조리해 판매하는 음식.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오뚜기·노브랜드 등과 협업

고잉메리가 여 대표 말대로 행복과 재미를 두루 보장하는 융합 커머스 플랫폼일지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업장은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런데 이날 F&B 코너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2500원에 불과했다. 서울 한남동의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 ‘부첼리 하우스’에서 직접 양념한 스테이크를 고잉메리 셰프가 구워줘도 1만6900원이면 먹을 수 있다. F&B 장사로는 큰돈 벌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고잉메리에 요괴라면 같은 자체 상품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뚜기, 이마트(노브랜드), 삼원가든(셰프스테이블), 더한주류(서울의밤), 오클라코리아(스타부르캔고등어), 노량진 형제상회(회) 등의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죠. 이들 브랜드는 계약 종류에 따라 고잉메리에 일종의 ‘회비’를 냅니다. 기업이 매달 고정적으로 내는 돈이 수익을 지탱해주기 때문에 방문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입점 브랜드 입장에서는 뭐를 얻을 수 있을까. 여 대표는 단순한 입점 수준을 넘어 해당 브랜드가 시도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마케팅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기획·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오뚜기 김치라면에 스타부르캔고등어를 넣은 신메뉴를 만들어 매장에서도 팔고 레시피 개발 과정을 촬영해 유튜브에도 올리는 식이다. 모든 콘텐츠는 해당 기업에도 제공된다. 또 옥토끼프로젝트는 오뚜기와 함께 ‘개념만두’ ‘개념볶음밥’ 등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와인나라에서 파는 와인 5종을 매달 선정해 방문객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SPC삼립(미각제빵소), 대상(미원식당), 빙그레(과자) 등도 입점할 예정입니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와도 협업을 기획 중이고요. 이밖에 동원F&B, 이랜드그룹, 테팔 등의 기업과도 긍정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의뢰가 몰린다는 건 입점 효과가 분명하다는 의미겠죠. 비대면 시대의 오프라인 생존법, 증명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