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전 넷크루즈 전무 / 박용수 연천양조 대표가 직접 개발한 막걸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박용수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전 넷크루즈 전무 / 박용수 연천양조 대표가 직접 개발한 막걸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율무는 국내 생산량의 70%를 경기 북부의 연천이 차지할 정도로 연천군의 주요 특산물이다. 이 율무를 넣은 무감미료 막걸리 ‘연천 율무막걸리’를 지난해 8월 출시한 양조장이 농업회사법인 연천양조(주)다. 연천 율무막걸리 레시피 개발에 도움을 준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는 율무막걸리 6도 제품 맛을 이렇게 평가했다. “6도 막걸리의 가벼움과 함께 드라이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다양한 음식과 어울려 음식 맛을 돋보이게 한다. 약한 단맛과 누룩 향, 꽃향기가 편하게 술을 즐길 수 있게 한다.”

박용수 연천양조 대표는 영락없는 시골 농부, 시골 양조장 주인 행색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잘나가는 ‘벤처기업 전무’였다. 20여 년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종사한 정보기술(IT) 핵심 인재였다. 3년 전 그가 설립한 연천양조의 외형은 아직 초라하다. 지난해 연천양조 매출은 연간 3000만원. 2018년에는 고작 800만원이었다고 한다. 올해는 1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수가 생겨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억대 연봉’의 고급 IT 인력이 본인 한 사람의 연봉에도 못 미치는 매출 달성에 매달리면서까지 양조인으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했다.


IT 기업 출신인 박용수 대표가 직접 개발한 발효 탱크.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IT 기업 출신인 박용수 대표가 직접 개발한 발효 탱크.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비싼 율무로 술을 만드는 이유는.
“율무는 쌀보다 5~6배 정도 비싸다. 2017년 연천에 양조장을 차리기 전부터 연천에는 율무막걸리가 유명했다. 연천 특산물인 율무가 들어간 막걸리가 등장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2015년에 연천 율무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문을 닫아 생산이 중단됐다. 그즈음 내가 양조장을 한다고 하니까 군수님을 비롯한 군청 관계자와 농민들이 ‘율무막걸리를 꼭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 양조장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할 때만 해도 율무막걸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율무막걸리 개발은 순조로웠나.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율무가 들어간 탓에 술 제조상 가장 중요한 공정인 발효가 잘 안 됐다. 이때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가 레시피 개발에 많은 도움을 줬다. 초기에는 누룩 이외 발효제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소량의 발효제를 추가로 쓰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도 국산 우수 종균(누룩)을 제공해줘서 2년여 만에 율무막걸리 개발에 성공했다.”

율무가 쌀보다 발효가 더딘 이유는.
“율무의 성분 때문이다. 술 당화 발효에 쓰이는 것은 율무 속의 전분뿐인데, 전분 이외 지방이라든지 다른 성분이 많아서 발효가 더디다. 그래서 당화 발효가 늦어진다. 쌀만 썼을 때보다 발효가 일주일 정도 더 걸린다. 율무막걸리의 발효는 늦게 시작해 서서히 오랫동안 계속된다. 전체 발효 공정은 거의 한 달쯤 걸린다.”

율무막걸리의 풍미는 어떤가.
“율무막걸리는 풀향이 약간 나고, 함박꽃향이 난다. 송학곡자 누룩을 쓰다 보니 바나나와 파인애플 향이 조금 나는데, 이건 율무가 아닌 누룩에서 나는 향이다. 거기에 율무가 첨가됨으로써 풀향과 함박꽃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상큼한 과일 향도 조금 있다. 6도 제품(6000원)과 14도 율무동동주(1만4000원) 두 가지 제품이 있다. 그 외 율무가 들어있지 않은 연천아주(막걸리·6000원)와 연천연주(약주·1만5000원)는 앞서 2018년에 출시했다.”

술을 달지 않게 만드는 비결은.
“전통 방식의 술보다 물을 조금 더 넣는  것이 드라이(달지 않은)한 맛과 관련이 깊다. 급수율이 120~140%(쌀을 1로 봤을 때 물 비중이 1.2~1.4)가 보통인데, 율무막걸리는 150~160% 정도 물을 쓴다. 물을 10~20% 더 넣어서 잔당이 남지 않도록 완전 발효를 시킨다. 물 함유량이 많아지면 효모 활동이 훨씬 왕성해져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작용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당분이 거의 다 술(알코올)로 전환되기 때문에 남아있는 당분이 없어 단맛이 약한 것이다.”

IT 전문가에서 양조인으로 변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14년 회사에서 안식월(한 달 휴가)을 줘서 가족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 없이 잘 마셔왔던 희석식 소주를 마실 수 없었다.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통술에 눈뜨게 됐다. 그러다 2015년에 막걸리학교에 들어가 전통술 빚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막걸리학교는 2017년(고급 과정)까지 다녔다. 당시 나는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전무였는데, 둘째 아이 대학 졸업하는 날 퇴직했다. 아내가 2~3년만 더 회사에 다녔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시하긴 했으나 술 공부하면서 남편이 생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고는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관여해온 IT 기술을 술 양조에 접목한 게 있나.
“술 발효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온도와 습도다. 발효 관련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이면 발효 전문 기술이 없는 사람도 술 발효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천을 비롯한 각지 농민에게 이 기술을 전수하면 집마다 소규모 양조가 가능해진다. 집에서 된장·간장 담그듯이, 가양주 문화가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본다. 전통주 빚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발효 기술 시스템을 이전하는 방식을 개발 중이다.”

양조장 규모가 작다. 연천양조의 자랑거리가 있나.
“연천은 물의 도시다. 막걸리 술병에 ‘남토북수(연천군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마크)’라는 작은 로고가 있다. ‘남쪽의 땅, 북쪽의 물’이란 뜻인데, 우리나라 강 중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강이 임진강이다. 한강 상수원만큼 규제를 받아 인근에 공장이 하나도 없다. 양조장은 상수도 물을 쓰고 있는데 연천 상수도 수원지가 임진강 비무장지대(DMZ)에 있다. 그만큼 좋은 물을 쓰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땅 자랑도 빼놓을 수 없다. 연천은 구릉이 발달한 지역인데, 전곡 구석기 유원지가 30만 년 전부터 있었을 정도로 구릉이 발달했다. 구릉은 굉장히 비옥한 땅이다. 연천 북쪽에 연천평야가 있는데, 생산량이 적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비옥한 땅에서 수확한 쌀과 율무 그리고 북쪽 비무장지대에서 흘러나온 청정 물로 빚은 술이 연천막걸리다. 연천막걸리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율무막걸리는 미국 NBC방송국에서 ‘이 한 병의 막걸리에 평화가 담겨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모쪼록 북한 주민들과 율무막걸리를 같이 마시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