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 S4블록에 공급되는 ‘과천 푸르지오 어울림 라비엔오’ 조감도. 사진 대우건설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 S4블록에 공급되는 ‘과천 푸르지오 어울림 라비엔오’ 조감도. 사진 대우건설

웬만한 점수로는 명함 내밀기조차 쉽지 않다.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에선 청약가점 만점자까지 등장했고, 지방에서는 사상 초유의 청약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내 집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그나마 시세보다 낮게 새 집을 구할 수 있는 청약 시장에 수요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투데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 분양 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은 평균 70.2 대 1로 집계됐다. 일반 공급 6676가구에 46만8377건의 청약이 몰렸다. 이는 2019년 평균치(31.6 대 1)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연말에도 인기 단지들의 분양이 예정돼, 청약 경쟁률은 더욱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과열된 청약 시장의 현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과천이다. 11월 10일 청약 당첨자를 발표한 경기 ‘과천 푸르지오 어울림 라비엔오’에선 청약 만점(84점)자가 나왔다.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 △부양가족 수 6명 이상 △입주자 저축 가입 기간 15년 이상이어야 가능한 점수다. 경기도에서 만점자가 나온 건 지난 2월 경기 수원 ‘매교역 푸르지오SK뷰’ 이후 9개월 만이다.

이 단지의 경우 전용 84㎡의 해당 지역(과천시 2년 이상 거주) 커트라인은 타입별로 69~79점, 기타 경기는 74~84점, 서울을 포함한 기타 지역은 70~80점으로 나타났다. 과천 시민도 79점은 돼야 당첨 안정권이고, 69점 밑으로는 당첨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4인 가족이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점수는 69점이다. 사실상 4인 가족이 당첨될 확률은 희박하다. 이렇게 문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458가구 모집에 19만 명이 넘게 몰렸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0억원가량 낮아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 단지와 함께 11월 3일 과천지식정보타운에 공급된 3개 단지에 몰린 청약통장만 47만8390건에 달했다. 1044가구를 모집했으니 평균 458 대 1의 경쟁률이 나온 셈이다.

대우건설이 이달 경기 하남 감일지구에 선보인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도 284가구 모집에 11만4955명이 몰려 평균 404.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GS건설이 10월 경기 남양주에 공급한 ‘별내 자이 더 스타’는 421가구 모집에 8만5593명이 몰려 평균 203.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최근 대단지 분양이 뜸했던 서울의 청약 경쟁률도 이례적으로 높았다. 서울 상일동에 공급된 ‘고덕 아르테스 미소지움’은 서울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단지는 26가구 모집에 1만3964명이 몰려 평균 537.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8월 수색동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의 기록(340.3 대 1)을 두 달 만에 갈아치웠다. 서초동 ‘서초 자이르네’도 35가구를 모집하는 데 1만507명이 신청해 평균 300.2 대 1의 경쟁률을 거뒀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 청약 단지는 이미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낼 수 있는 흥행 보증 수표로 꼽혀왔다. 여기에 정부가 7월 29일부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이하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시세와 분양가의 갭(gap·차이)이 벌어지자 수요자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전국 청약통장 가입자는 2681만2857명에 달해 인구(5178만 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이 계속 청약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금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시세보다 낮은 매물이 나오니 청약 시장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청약 과열 현상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 벗어난 부산·울산은 집값 상승 기대감에 호황”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청약 시장이 과열되고 있지만, 부산이나 울산 같은 지방은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데도 청약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신규 분양 단지는 무조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분양가 상한제는 투기과열지구에만 적용되는데, 현재 세종과 대구 수성구, 대전 동·중·서·유성구 등을 제외하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비수도권 지역은 없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중에서도 정량·정성 요인을 고려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정한다.

공인중개 업계 관계자 말에 따르면 최근 부산은 2017년 서울 주택 시장이 들썩거렸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서울은 8·2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주변 지역으로까지 열기가 번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서울 일반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7.3%에 그쳤지만, 재건축 아파트는 12%에 달했을 정도였다.

부산 역시 최근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주변 지역 집값 상승과 청약 시장 호황을 이끌고 있다. 부산 대표 재건축 단지인 남천동 ‘삼익비치’ 전용 131㎡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11억5000만원(4층)에 매매됐는데, 10월 21일에는 20억2000만원(3층)에 거래되면서 불과 10개월 만에 두 배 이상 급등했다. 부산 주택 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선 지난해 11월 11일부터 올해 11월 2일까지 약 1년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4%로 서울(1.5%)을 앞선다. 특히 수영구(12.2%), 해운대구(12%)는 평균치를 크게 웃돌며 부산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부산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82.3 대 1을 기록해 지난해(10 대 1)의 8배 가까이 치솟았다. ‘쌍용더플래티넘 거제아시아드(230.7 대 1)’ ‘쌍용더플래티넘 해운대(226.5 대 1)’ ‘서면비스타동원(224.4 대 1)’ 등 공급되는 단지마다 수만 명의 수요자가 몰리고 있다. 울산 역시 지난달 공급된 ‘문수로대공원 에일린의뜰’이 59가구를 모집하는 데 1만8280명이 몰려 평균 309.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9월 22일부터 지방 광역시 민간택지 주택 분양권에 대한 전매제한이 기존 6개월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로 늘어나며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수요자들이 뛰어든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청약 시장에 수요자가 몰리는 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정부가 유동성을 풀고 있는 데다 ‘임대차 3법’에 따른 전세금 급등으로 매매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분석 등이 호응을 얻고 있다. 지방의 경우 서울이나 수도권만큼 집값이 안 올랐다는 인식이 많아 일자리·교육 수요가 많은 지역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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