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보 전 교보생명 상무, 전 열린사이버대 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 전기보 술빚는 전가네 대표가 양조인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전기보
전 교보생명 상무, 전 열린사이버대 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 전기보 술빚는 전가네 대표가 양조인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브라보 마이 라이프’

현역 시절엔 엄두를 못 냈던 ‘하고 싶은 일’을 은퇴 후 과감히 도전하는 인생이 있다. 자전거 마니아는 은퇴 후 ‘자전거 점포’를 차린다. 은퇴한 뒤 바리스타나 커피 로스터(커피 원두를 볶는 사람)로 변신하는 커피 마니아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도 있다. 보험회사에서 임원으로 은퇴하고, 사이버대 교수로 일하면서 일 년에 두어 번 전 세계 오지로 사진 촬영 여행을 다녔다. 이 정도면 성공한 노년 아닌가. 그런데도 우연한 기회에 맛본 전통술맛에 반해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고향인 경기도 포천으로 돌아가 전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차린 남자. “오래전부터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은 ‘막걸리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 신생 업체는 술 팔기 어렵다”라고 주변에서 말리자 “내 술, 내가 팔면 되지”라며 주점까지 차렸다. 포천에서 양조장과 주막을 운영하는 ‘술빚는 전가네’ 전기보 대표의 이야기다. 2014년에 양조장을 차렸으니, 올해로 8년 차 중견 양조인이다.


어떤 술이었길래, 직업까지 바꾸었나.
“2013년에 중국 사진 촬영 여행을 갔다가 일행이 가져온 술맛에 반했다. 직접 빚은 가양주였다. 교수직까지 포함해 직장생활 30년을 하면서 온갖 좋다는 술은 다 마셨지만, 이런 술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런데 술을 맛보고 나니 할머니가 생각났다. 어릴 적 잠시  시골에서 할머니랑 산 적 있었는데, 할머니 손 잡고 간 동네 이웃 할머니 집에서 한두 모금 맛본 그때 술맛이 떠올랐다. 그런 술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양조장 하려면 대학교수 자리를 포기해야 하나.
“학교 규정상 양조장 주인과 교수를 겸할 수 없었다. 당시 열린사이버대 금융자산관리학과(2009~2014년)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학교수는 65세가 정년이고 끝나면 사학연금도 나오니까, 사실 계속 교수 생활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긴 했다. 양조장과 주막은 시작해도 잘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고, 했다가 거덜 날 수도 있는 사업이었다.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양조장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대학교 내에서 은퇴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외부강연 다니면서 ‘은퇴 이후의 삶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가장 행복하다’고 곧잘 얘기했는데, 실제 교수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교수도 학생 모집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영업하기 싫어서 오래 다니던 보험회사 그만뒀는데, 대학에 와서까지 이사장에게 ‘오늘 학생 몇 명 모집했나요?’와 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무리 노후가 보장돼도 이렇게 맘고생하면서 할 일은 아니다’라고 결심해 양조장을 선택했다.”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 대부분은 전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주막에서 팔린다. 그러다 보니 애주가들도 그 맛을 보기 어려웠다. 그가 술 영업을 포기한 탓이다. 하지만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2018년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그가 만든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가 2018년 우리 술 품평회 탁주 부문 대상을 받았고, ‘배꽃 담은 연 막걸리’가 우수상을 받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막걸리 70여 종이 출품돼 경합을 벌인 자리에서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이 3개 상 중 2개를 차지한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술빚는 전가네에서 출시한 술 제품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술빚는 전가네에서 출시한 술 제품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우리 술 품평회 대상을 받은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는 어떤 술인가.
“동정춘은 우리 양조장 술 중 레시피가 공개된 유일한 술이다. ‘조선 3대 명주’라는 술이다. 옛 문헌의 주방문을 참조해서 만들었다. 쌀로 구멍떡을 빚어 그걸 뜨거운 물에 쪄서 으깬 뒤에 누룩을 넣고, 물의 함량을 최소화해서 밑술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넣는 이양주다. 다른 술과 비교해 4분의 1 정도의 물만 쓴다. 물을 조금 넣어 단맛이 아주 강하다. 열대 과일 향이 나는 귀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6도로 높지 않다. 물을 조금 넣어 쌀 함유량이 36%나 된다.”

프리미엄 막걸리치고는 알코올 도수(6도)가 낮다.
“동정춘은 레시피가 공개된 술이라서 여러 사람이 동정춘 탁주를 만든다. 그런데 누구는 동정춘 알코올 도수를 8도로 하고, 난 6도로 했다. 마셔보면 맛에 차이가 있다. 옛 문헌에는 당연히 도수가 적혀있지 않다. 술을 제조하는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스타일에 맞는 도수를 정하는 것이다. 양조인은 어떻게 소비자에게 적합하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나는 동정춘을 일반인이 마시기에 부담 없는 도수인 6도로 만들었다. 동정춘은 우리 양조장 매출의 80%를 책임지는 효자다.”

막걸리 발효와 숙성은 얼마나 하나.
“대부분 6주 정도 발효, 6주 숙성한다. 12주 정도 되면 병에 넣는다. 유통 기한은 90일이다. 저온 숙성하기 때문에 효모가 오랫동안 살아있어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살균막걸리가 아닌 생막걸리다.”

누룩은 어떻게 만들어 쓰나.
“쌀 흩임누룩을 직접 만들어 쓴다. 일반 누룩은 압착식 누룩이다. 메주처럼 손이나 발로 꼭꼭 눌러 형태를 만들어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압착식 밀 누룩이 주류를 이루는데 요즘 양조장에서는 쌀 흩임누룩도 많이 쓴다. 밀 누룩과의 차이점은 맛이 깔끔하고 맛의 편차도 작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대책은 있나.
“2021년에는 포천의 주점을 많이 개조할 생각이다. 주막인지라 식사 중심 공간으로 꾸몄는데 앞으로는 전통주와 특산품 판매 공간으로 바꿀 참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술을 편하게 구경하고 사갈 수 있도록 하고, 굿즈도 많이 만들 생각이다. 술지게미로 만드는 비누도 개발했다. 전통주 박물관 정도는 못 되겠지만 전통주에 특화된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50대에게 권하고 싶은 은퇴 설계는.
“퇴직 후의 삶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새로운 출발’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또 퇴직 후의 삶을 설계할 때 ‘포트폴리오(분산투자)’ 관점에서 접근해보길 권한다. 한 분야에만 집중하지 말고, 큰 소득이 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해보는 게 낫다. 지금은 한 우물을 파서 될 세상이 아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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