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임섭 벡텔 근무, 1996년 한국애플리즈 설립 / 한임섭 한국애플리즈 대표가 회사에서 출시한 와인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한임섭
벡텔 근무, 1996년 한국애플리즈 설립 / 한임섭 한국애플리즈 대표가 회사에서 출시한 와인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매출의 90%를 수출로 거둬들이는 놀라운 술 회사가 국내에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 년 내내 극성을 부린 2020년에도 전년보다 매출액을 무려 세 배나 늘렸다는 사실. 그것도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과 와인 단일 제품으로 거둔 실적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사과로 유명한 경북 의성의 한국애플리즈(이하 애플리즈) 한임섭 대표다. 그는 자신을 “고향 의성의 사과나무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소개할 정도로 사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1996년 양조장을 세운 후 사과 와인과 사과 탄산 와인(사이다) 등을 만들어 내수보다 수출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 매출액이 60억원에 달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과 와인을 와인병에 담지 않고 ‘싸구려’ 소주병에 담아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한 대표는 “프랑스의 와인병만큼이나 한국에 흔한 술병이 소주병”이라며 “값도 싸고, 한류 문화 덕에 외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것이 한국 소주병”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소주병에 담은 술은 90%가 수출된다. 전 세계 어느 술 회사도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거두는 사례가 없다. 대부분은 내수를 탄탄하게 다진 뒤 수출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영업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서 수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경우도 드물다. 그런데 애플리즈는 수출 비중이 무려 90%라니.

뒤집어보면 그만큼 내수가 취약하다는 얘기도 된다. 애플리즈 제품을 아는 애주가는 많지 않다. 100% 국내 농산물로 만든 우리 술이지만, 전통주 전문점에서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국내 대형마트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이 회사가 거둔 매출액 60억원은 전통주 회사 가운데 상위 0.1% 안에 든다. 애플리즈는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수출 효자 상품인 ‘찾을수록’. 소주병에 담긴 사과 와인이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등으로 수출된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수출 효자 상품인 ‘찾을수록’. 소주병에 담긴 사과 와인이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등으로 수출된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0년 내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애플리즈 실적은.
“매출은 2019년보다 세 배 정도 늘어난 60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오히려 우리 회사 매출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한국이 중국과 마찰을 빚을 때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공격적으로 영업한 덕분에 중국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바이어들에게 ‘제품 팔고 나서 결제해도 좋다’며 수입 물량을 적극적으로 늘리라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소주병을 쓰는 이유는 뭔가.
“애플리즈 주력 제품은 녹색 소주병을 쓴다. 당연히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다. 하지만 ‘한국 제품’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리는 효과가 있다. 비슷한 크기와 디자인의 녹색 유리병을 술병으로 쓰는 나라가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사과 와인을 수출하는 영세한 우리 회사와 프랑스를 비롯해 와인을 수출하는 수많은 국가의 업체 간 경쟁력 차이는 품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의 경우 와인에 쓰이는 병도 부지기수로 많다. 당연히 병 가격도 저렴하다. 물량이 많으니까 (주류 업체가)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와인은 외국 와인과 비교해 병값에서부터 경쟁력이 떨어진다. 물량이 많지 않으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국산 병을 쓰려면 병값만 하나에 1700~1800원을 줘야 한다. 비싸서 쓸 엄두가 안 난다. 그나마 중국산이 저렴하다.”

소주병은 싸구려 이미지 아닌가.
“소주병을 쓰면 술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일리가 있지만, 그건 한국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태국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중국 사람도 소주병을 허접하다고 생각할까. 그 사람들에게 한국 소주병은 절대로 싸구려 이미지가 아니다. 외국 현지에서는 한국 소주가 싼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식당에선 10달러 이상 받는다. 한류 인기의 덕도 보고 있다.”

소주병에 담은 사과 와인은 현지에서 얼마에 팔리나.
“미국 현지에서 한국 소주는 슈퍼에서 병당 3달러 정도 한다. 같은 소주병에 든 애플리즈 제품은 5달러에 팔린다. 같은 병을 쓰지만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Apple Wine’이라 표시돼 있고, 맛도 미국인에게 더 친숙한 와인 맛이다.”

수출 효자 상품은 뭔가.
“소주병에 담긴 사과 와인 제품인 ‘찾을수록’과 ‘좋은친구’다. 좋은친구는 주로 미국에 수출된다. 찾을수록은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등으로 간다. 수출국은 총 27개국이다.”

내수 시장은 왜 실패를 거듭했나.
“달콤한 음료 사이다에 오랜 세월 길들어 있는 국내 소비자에게 오리지널 프랑스 사이다(사과 탄산 와인)를 맛보이기가 역부족이었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사과 와인이 그만큼 낯설었다. 소주도 아닌 것이, 약주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포도로 만든 와인도 아니니, 정체성을 각인시키기 어려웠다. 그런데다 이름은 익숙한 ‘사이다’라고 하니 소비자가 헷갈리는 게 당연했다.”

수출로 전략을 바꾼 계기는.
“오랫동안 내수 늪에서 헤매다 보니 자금이 거덜 났다. 그때 문득 ‘프랑스 사람이, 한국 사람 좋아하는 된장을 파리에서 만들어 프랑스 사람에게 팔려고 하면 그게 잘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과 와인을 만들었으니, 아직 사과 와인 맛을 모르는 국내보다는 와인 본고장에 수출하는 게 낫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때가 2002년쯤이었다. 이후로는 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를 많이 다녔다.”

음료 사이다 시장이 굳건한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이다 술을 팔기가 어렵다.
“2003년에 ‘유스풀’이란 이름의 사이다 술을 처음 내놓았는데, 국내에서는 알아주지 않았다. ‘알코올이 들어간 엄연한 술인데, 왜 음료인 사이다라고 이름 붙였지?’ 이런 반응이었다. 지난해 선보인 ‘헤베’는 내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새로 내놓은 제품이다. 일부 수출도 하고 있다. 헤베는 세 번째 사이다 제품이다. 두 번째 제품은 알코올 도수 3.5도인 저도수 발포주 ‘에피소드’.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

내수 활성화에 대책이 있나.
“초창기보다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1996년 양조장을 연 시기에는 사과 탄산와인 자체를 소비자가 거의 몰랐지만, 이제는 해외여행과 지식 교류가 활발한 덕분에 이전보다는 여건이 나아졌다. 사과 브랜디 하면 칼바도스를 최고로 친다. 그런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2020년에 선보인 헤베의 고급 버전도 준비 중이다. 2021년은 애플리즈가 내수를 다지는 원년으로 삼겠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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