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로부터 헌 옷을 받아 다시 판매하는 스레드업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억8600만달러의 매출을 거뒀다. 사진 스레드업
이용자로부터 헌 옷을 받아 다시 판매하는 스레드업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억8600만달러의 매출을 거뒀다. 사진 스레드업

미국 스타트업이 헌 옷에 눈을 떴다. 헌 옷을 팔아봤자 얼마나 많이 파느냐 싶겠지만, 미국 나스닥 시장에 1억달러(약 1100억원)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고속 성장하는 회사는 물론 ‘파타고니아’ ‘리바이스’ 같은 유수의 브랜드와 손을 잡고 사업을 펼치는 업체도 있다. 낭비 업종인 패션이 리커머스(recommerce‧재고거래)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좇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낭비가 심한 업종으로 꼽히는 의류 산업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만 25~37세)와 Z세대(만 24세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소비 계층이 패션이나 과시욕보다는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 위기를 해결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2009년 설립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본사를 둔 중고 의류 플랫폼 ‘스레드업(ThreadUp)’은 올해 나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매출이 2018년 1억2960만달러(약 1470억원), 2019년 1억6380만달러(약 1860억원), 2020년 1억8600만달러(약 2100억원)로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4780만달러(약 5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수익성 개선이 과제다.

헌 옷은 의류 시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아이템이다. 트렌드에 뒤처지는 데다 업체 입장에선 헌 옷을 쌓아놓아야 해 보관과 배송 부담도 크다. 헌 옷만 사는 특정한 소비자층도 없다. 진부한 아이템이라 프리미엄을 창출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스레드업은 시장을 다르게 봤다. 스레드업은 “더 많은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 소비자가 매년 중고 물품으로 시장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들은 지속 가능성에 더 민감하다”고 본다. 이 회사는 중고 의류가 옷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3%에 그쳤지만, 2029년에는 17%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시장 분석 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중고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 수요는 2019년 280억달러(약 31조8700억원)에서 2024년 360억달러(약 40조98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스레드업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 버려지는 옷이 766만5711t에 이른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는 패스트패션의 유행이 의류 과잉을 불렀다. 이런 의류의 73%는 매립되거나 소각되지만, 사실 95%는 재사용 또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스레드업은 이 점에 주목했다. 이 업체는 ‘클린 아웃 키트’라는 가방을 소비자에게 보내 헌 옷을 회수하고서 이를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헌 옷 주인은 판매 가격의 일부를 받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헌 옷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으니 좋고, 또 다른 소비자는 최대 90%까지 할인된 가격에 괜찮은 옷을 구매할 수 있어 이득이다. 스레드업은 대중 브랜드 ‘갭’에서 명품 브랜드인 ‘구치’까지 3만5000개의 브랜드를 다룬다.

단순한 ‘보따리 상인’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미국 전역에서 중고 의류 사업을 펼치며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판매 가능한 의류를 대량으로 분류하고 세탁·보관·판매할 수 있어서다. 스레드업은 매일 10만 벌의 옷을 처리할 수 있고, 550만 벌의 옷을 유통센터에 보관할 수 있다. 월마트와 미국의 백화점 메이시스, 갭과 함께 가게나 온라인에서 중고 의류를 사고팔 수 있는 기능도 현재 테스트하고 있다.


중고 의류 플랫폼으로 의류 브랜드와 협업

스레드업이 소비자와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트로브(Trove)’는 기존 의류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트로브와 2017년 손을 잡은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경우 온라인에서 중고 제품 판매 서비스 ‘원 웨어(Worn Wear)’를 선보였다.

소비자가 중고 제품을 회사에 넘기면 기프트 카드를 주고 회사는 중고 제품을 재판매하는 방식인데, 리바이스와 REI, 아크테릭스 등도 트로브와 함께 비슷한 방식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브랜드는 귀찮고 지저분한 작업인 중고 의류 수거와 물류·배송을 트로브에 넘기면서 중고 제품 재판매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좋다.

앤디 루벤 트로브 최고경영자(CEO)는 “파트너 없이 중고 의류 판매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만 5000만달러(약 570억원)가 든다”며 “트로브와 협업하면 기존 브랜드 입장에선 소매 시장보다 마진을 높일 수 있고, 공급·수요 전략 등을 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는 중고 의류 판매를 통해 평균 30%의 수익을 거둔다.

소비자 역시 이득이다. 중고 의류를 사는 소비자는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다. 트로브에 따르면, 중고 의류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약 55%는 해당 브랜드 제품을 구매한 적이 없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루벤 CEO는 “브랜드가 재판매 공간을 열고 제품을 경험하기 쉽게 하면 소비자가 이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트로브 측은 전통적인 소매업을 ‘순환 쇼핑(circular shopping)’으로 진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앤디 루벤 CEO는 “세계는 매년 70억 명을 위해 1000억 벌(패션 품목)을 생산한다”며 “트로브의 플랫폼은 브랜드가 고품질 품목을 더 오래 유통하도록 돕는데, 이렇게 하면 브랜드와 소매 업체가 모두 승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9년 6월에 나스닥 시장에 상장해 매년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는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 ‘리얼리얼’은 보석이나 고급 시계 등 중고 명품을 위탁받아 판매하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 버버리, 구치 등의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해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제품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이 업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2억9830만달러(약 3400억원)의 매출과 1억7750만달러(약 2020억원)의 순손실을 거뒀다. 금융 투자 업계의 기대치를 밑돈 실적이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2월 19일까지 거래된 상품·서비스 가치의 합을 의미하는 GMV(Gross Merchandise Volume·총거래액)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 늘며 성장 동력을 회복하고 있다.

올해 1월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포시마크도 중고 의류와 신발 등을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 업체는 이용자가 직접 옷이나 신발 등을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중고 물품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거래하도록 주선하는 한국의 당근마켓과 비슷하다. 포시마크는 지난해 1~9월 2억4750만달러(약 2800억원)의 매출과 620만달러(약 7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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