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52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3월 17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52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상장 대기업 주주총회(이하 주총)가 대거 몰린 슈퍼 주총 시즌이 시작됐다. 3월 24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LG전자, 한화솔루션이 정기 주총을 개최했다. 이어 LG화학과 SK텔레콤(이상 25일), ㈜LG, SK이노베이션(이상 26일), SK하이닉스(30일) 등 주요 기업의 주총이 줄줄이 열렸다. 올해 주총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기조 속에 태동한 온라인 생중계 문화다. 3월 17일 대기업 주총 포문을 연 삼성전자가 200만 명이 넘는 주주 편의를 위해 온라인 생중계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데 이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도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주총을 생중계했다. 온라인상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전자투표제 역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올해 재계 주총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바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여성 사외이사, 미래 전략이다.


키워드 1│대세로 자리 잡은 ESG 경영

ESG 경영은 대세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LG그룹 지주회사인 ㈜LG는 3월 26일 주총 후 열린 이사회에서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두고 ESG 경영의 최고 심의 기구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지주회사를 비롯한 LG의 상장 계열사들은 상반기 중 이사회 최종 승인을 거쳐 ESG위원회를 신설한다. 현대차는 기존 이사회 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바꿔 ESG 관련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하언태 현대차 사장은 주총 인사말에서 “탄소 중립 전략과 연계한 수소 사업 확대 등 현대차만의 ESG 경영 방식을 구축하고, ESG 강화 활동을 통해 고객 가치 제고의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도 “지속 성장을 위한 ESG 경영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삼성물산은 3월 19일 주총에서 이사회 거버넌스위원회를 ESG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를 사외이사 최초로 이사회 의장에 선임하면서 ESG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정 위원장은 노동부 차관을 지낸 노사 관계 전문가로 그동안 거버넌스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삼성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3월 18일, 3월 19일 주총에서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ESG위원회 역할을 대신하는 지속가능경영협의회를 최고재무책임자(CFO) 주관으로 뒀다. 경영진 의사 결정에 지속 가능 경영을 우선순위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기아차(3월 22일), 포스코(3월 12일) 등도 주총에서 ESG위원회 신설 소식을 전했다.


현대자동차는 3월 24일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에서 제53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사진 현대차
현대자동차는 3월 24일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에서 제53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사진 현대차

키워드 2│여성 사외이사 득세

여성 사외이사 선임도 크게 늘었다. 현대차는 이지윤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 부교수를 첫 여성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항공우주공학 분야 전문가다. 현대차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지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확장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도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조 교수는 이 회사의 첫 여성 사외이사다. 포스코도 주총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자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유영숙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유 이사는 환경 분야 전문가로 현재도 유엔(UN)기후변화총회와 같은 국제기구 등에서 폭넓은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현대제철도 3월 23일 주총에서 장금주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장 사외이사는 공인회계사로 한국윤리경영학회 수석 부회장과 한국회계정책학회 감사 등을 맡고 있다. LG전자도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마트도 3월 24일 주총에서 김연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를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롯데케미칼도 3월 23일 주총에서 남혜정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처럼 여성 사외이사가 느는 이유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대한 선제 대응 차원이다. 자산 총액 2조원이 넘는 기업은 내년 8월까지 이사회에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한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3월 2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제2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3월 2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제2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키워드 3│미리 보는 미래 사업

미래 사업 전략도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 주총 의장으로 나온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보안(Security) 등 미래 역량을 준비하고 자율적인 준법 문화의 정착을 통해 신뢰받는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질적 성장과 중국 시장 위상 회복을 강조했다. 현대차의 하 사장은 “신형 투싼과 팰리세이드, 크레타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북미 시장 안착 등 고수익 차종 판매 확대와 고정비 절감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시장 위상 회복을 위해 신차 중심 판매 확대와 인센티브 축소, 딜러 적정 재고 유지 등 판매 질을 높이고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집중하겠다”라고 덧붙였다.

LG전자는 미래 사업으로 점찍은 전장 사업 강화를 예고했다. 주총에서 VS사업본부 내 전기차 파워트레인 관련 사업을 대상으로 물적 분할을 의결했다. 분할 회사인 LG전자는 물적 분할을 통해 분할 신설 회사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가칭)’의 지분 전량을 갖는다. 이어 마그나는 분할 신설 회사 지분 49%를 인수할 예정이다. 합작법인은 오는 7월 공식 출범한다. 관심이 쏠린 스마트폰 사업 철수 여부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 육성을 가속화해 나가기 위해 전지 재료, 지속 가능한 솔루션, 이(e)모빌리티 소재, 글로벌 신약 등 차세대 성장 동력을 육성하고 글로벌 톱 수준의 환경 안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구영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대표이사는 태양광과 수소 사업 확대에 경영 역량을 집중해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Plus Point

금융권은 이사 연임 둘러싼 논란도

금융권 주총은 임기 만료 예정인 이사들을 재선임하는 안건이 관심을 모았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신한·우리금융지주 이사진 다수에 ‘선임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ISS는 3월 25일 개최한 신한금융지주 주총을 앞두고 진옥동 기타 비상무이사 재승인과 박안순·변양호·성재호·이윤재·최경록·허용학 등 6명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주주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권고했다.

ISS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취업 비리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그를 이사회에서 해임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옥동 신한은행장에 대해선 “그에게 부과된 (금융감독 당국의) 높은 수위의 사전 제재는 이사로서 자질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진 행장은 라임 펀드 사태와 관련, 지난 2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 경고’를 사전 통보받았다.

그러나 신한금융지주는 이날 오전 주총에서 6명의 사외이사를 재선임하고 진 행장은 기타 비상무 이사로 재승인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문사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자문사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해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은 데다 주주들이 이미 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한 결과를 보면 찬성 의견이 많아 다수 주주의 의결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