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붕괴’라는 의미의 ‘카마겟돈(Carmageddon⋅자동차와 최후의 전쟁터를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은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고자 하는 정보기술(IT) 업체의 도전에 대한 완성차 메이커의 두려움의 표현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테슬라⋅애플 등)은 이미 전기차를 만들거나 테스트 중이다. 기존 완성차 메이커도 바쁘게 배터리 기업과 합작사를 만들고,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다.
이처럼 촉각이 예민해진 시기에 손톱만 한 크기의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있다. 현재 반도체 주문에서 출하까지 걸리는 소요 시간(리드 타임)은 평소보다 3~6배 늘어났으며, 특히 자동차에 많이 사용되는 반도체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상황은 카마겟돈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序曲)과 같은 사건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왜 일어났고, 어떤 의미를 가지며, 과연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에 최근 제출한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원래 자동차와 반도체의 생산 방식은 무척 다르다. 자동차 메이커는 필요한 만큼 부품을 공급받아 생산한다. 재고 부담을 줄이고 생산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반면, 반도체는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단위의 회로에 전자가 움직이는 세계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고정밀도의 기기를 사용하는 800여 개의 공정을 거치야 하며, 만드는 데 수개월이 소요된다. 따라서, 반도체는 가능하면 동일한 것을 계속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일례로 애플은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에 1년씩 장기 계약을 한다.
이번 차량용 반도체 부족의 원인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완성차 메이커는 반도체의 생산 방식을 너무 몰랐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차량 판매가 줄어들자 자동차 회사는 종전에 하는 것처럼 부품 주문을 줄였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가 예상외로 빠르게 회복되자 다시 주문을 늘렸다. 그런데, 반도체 공장의 생산라인은 이미 재택근무로 인해 증가한 가전, 컴퓨터 서버용 반도체를 만들고 있었다. 반도체 공장은 유연한 생산을 하기 힘들다.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에도 불구하고 가장 여유 있는 회사는 반도체 재고 4개월치를 확보한 도요타다. 도요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지금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일본 반도체 메이커인 르네사스의 나카 공장이 큰 피해를 봐 완성차 공장이 멈췄다. 이때 반도체 부족이 가져오는 피해를 알게 된 도요타는 자사뿐만 아니라 부품사의 반도체 재고까지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여유 있게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둘째, 반도체 공장은 외부 환경에 취약하다. 공교롭게도 일본, 미국, 대만의 반도체 공장이 화재와 한파, 가뭄 같은 기상이변 등으로 반도체 공장을 멈췄다. 일본의 경우 지난 2월 진도 6의 지진으로 르네사스 나카 공장이 가동을 정지했고, 3월에는 화재가 발생했다. 반도체 부족 상황에서 르네사스가 TSMC에 외주를 줬던 자동차 반도체 물량을 직접 만들기 위해 급히 서두르다가 발생한 화재였다. 2010년 르네사스의 근무 인원은 약 4만9000명이었으나, 지금은 약 1만9000명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몰락을 대변하는 수치다. 그만큼 공장 설비를 관리하는 능력이 떨어졌음을 방증한다.
미국에서는 이상 한파로 인한 전력 부족으로 삼성전자, 인피니언, NXP의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중지했다. 대만은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공업용수가 15% 감소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도 3월에 생산 일정을 조정했다.
車·IT 부품 공급망 겹치기 시작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는 일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미래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암시하고 있다. 우선 자동차 산업과 IT 산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반도체는 단일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되었다. 단일장애점이란 통신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이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단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 네트워크가 멈추는 지점을 의미한다. 특별관리 대상이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진행되고,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통신 기기가 발전하면서 반도체는 자동차 산업과 IT 산업의 단일장애점이 됐다. 사실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공장이 멈춘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닛산자동차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해, 일본의 4개 공장, 미국의 2개 공장을 정지시킨 적이 있다. 당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고 STM이 이익이 많이 나는 스마트폰 메이커에 반도체를 우선 공급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자동차 산업과 IT 산업의 부품 공급망이 서로 겹치면서 영향을 주기 시작한 최초의 상징적 사건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둘째, 자동차 산업에 ‘역채찍 효과’가 발생하는 시대로의 진입이다. 채찍 효과는 완성차 공장의 생산 계획 변화가 부품 회사에 변동을 야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이하다. TSMC의 매출액 대비 자동차 반도체 비율은 평소 4~5% 수준이며, 2020년 3분기에 완성차 메이커의 주문 취소로 2%까지 줄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상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증산 요청에 부응하여 TSMC의 2021년 1분기 차량용 반도체 비율은 4%로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완성차 메이커는 반도체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제 반도체 공장의 생산 변동이 자동차 공장에 큰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셋째,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자동차산업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이 됐다. 원래 차량용 부품 메이커는 완성차 메이커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량용 첨단 반도체(특히 선폭 50nm 이하)의 경우 역피라미드 구조가 됐고, 그 정점에 대만의 TSMC가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 역량, 완성차 경쟁력 좌우 시대
앞으로 IT 산업 및 자동차 산업에서 반도체 기술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자율주행을 좌우하는 반도체는 첨단 공정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야 전비(배터리의 전기 효율)의 개선이 가능하다. 그런데, TSMC의 최첨단 공정은 애플이 독차지하고 있다. 올해 TSMC의 5nm 공정 생산라인의 80%를 애플이 사전 계약해 놓고 있다. 애플이 전기차를 만들 경우 압도적 반도체 성능으로 공략할 수 있다. 지금 반도체는 ‘모어 무어(More Moore)’와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TSMC는 양면 전략을 사용해 반도체 산업의 최종 승자를 꿈꾸고 있다. 모어 무어는 무어(Moore)의 법칙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이란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 향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집적도가 향상되면서 반도체 장비와 설계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한계에 도달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TSMC는 여전히 무어의 법칙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TSMC는 5나노 공장을 운영 중이고, 3나노 공장을 건설 중이다. 모어 댄 무어는 반도체 집적도 이외의 경쟁을 의미한다. TSMC는 반도체 패키징의 경쟁력 향상을 추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본의 높은 소재 기술이 필요하다. TSMC는 반도체 부흥을 꿈꾸는 일본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에 패키징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만든다. 대만-일본 반도체 연합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자동차와 반도체라는 상이한 생산 시스템의 원활한 연결을 위해서 양쪽 생산시스템과 부품 공급망을 이해할 수 있는 ‘양손잡이 엔지니어’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둘째, 대변동의 시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기술력을 가진 상대방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일본의 반도체 재료와 장비 등을 활용해야 하는 우리는 일본과의 원만한 협력 관계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메이커는 과거 엔진과 새시를 자사 고유의 방법으로 튜닝해서 차별화했지만, 앞으로는 자사 고유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로 차별화된 ‘맛(taste)’을 제공할 것이다. 반도체 설계 역량이 자동차 메이커의 핵심 역량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