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비스포크 냉장고로 컬러 가전의 시대를 연 삼성전자는 꾸준히 여러 색상을 도입한 컬러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19년 비스포크 냉장고로 컬러 가전의 시대를 연 삼성전자는 꾸준히 여러 색상을 도입한 컬러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백색이 그 백색이 아니네.”

세탁기, 냉장고 등 전통적으로 흰색 외장색을 즐겨 사용하던 가전제품이 화려한 색을 입고 있다. 백색가전의 의미는 더는 ‘흰색 가전’이 아닌 ‘백(100) 가지 색을 가진 가전’으로 통한다. 개성을 내보이기 좋아하고, 소셜미디어(SNS) 등에 나를 표현하기를 즐기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가전 소비의 주력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다채로운 취향이 담긴 가전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가전 업계에 따르면 생활가전 부문에서 컬러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회사는 삼성전자와 LG전자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비스포크’라는 이름을 가진 가전제품 라인업의 인기가 뜨겁다. 삼성전자는 2019년 6월 ‘비스포크 냉장고’로 시작해 ‘맞춤형 가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본래 ‘비스포크’의 의미는 남성 정장이나, 명품 등에서 ‘개인 맞춤화’한 제품을 의미한다. 이를 가전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런 인기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출시 직후 6개월간 삼성전자의 국내 냉장고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냉장고 매출의 67%까지 올라왔다. 광주 사업장에서 만들어지는 냉장고 100대 중 70대가량이 ‘비스포크’ 냉장고라는 얘기다.

비스포크 냉장고가 선풍적인 반응을 얻은 건 바로 소비자의 입맛대로 색상을 고를 수 있어서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출시 당시 9종의 외장색을 고를 수 있었고, 지난해 4월 이 선택지를 15종으로 늘렸다. 지난 3월부터 색상 선택 폭을 무려 300여 종 이상으로 늘렸다. 22가지 종류의 패널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나만의 컬러’를 원할 경우 360가지 컬러 팔레트에서 원하는 색상을 고를 수 있게 했다. 총 382종의 색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외판 소재와 색상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비스포크 브랜드를 냉장고에서 가전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현재는 냉장고 3종, 정수기, 직화오븐, 전자레인지, 인덕션, 식기세척기, 에어컨 3종, 공기청정기, 청소기 3종, 세탁기, 건조기, 의류관리기 2종, 신발관리기 등 총 20종의 가전제품이 비스포크로 출시된다.

개인의 취향에 맞춰 제작하는 만큼 비용적인 부분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제품의 본체와 패널을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모듈화 방식을 통해 효율적인 생산과 합리적인 가격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컬러 비즈니스의 성공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CE(생활가전) 부문은 비스포크의 인기로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CE 부문은 매출 48조1700억원과 영업이익 3조56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해 각각 7.6%, 36.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 성적이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12조9900억원, 영업이익 1조1200억원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CE 부문의 선전 덕에 삼성전자가 1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LG전자는 인테리어에 가전을 접목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전체 인테리어와 통일감을 강조한 ‘오브제컬렉션’을 내놓았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인테리어에 가전을 접목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전체 인테리어와 통일감을 강조한 ‘오브제컬렉션’을 내놓았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인테리어에 가전 접목

LG전자도 지난해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오브제컬렉션’을 통해 컬러 비즈니스에 주력하고 있다.

오브제컬렉션은 ‘공간 인테리어 가전’을 내세운다. 가전에 컬러를 덧입히는 것에 더해 여러 대의 가전을 통해 실내 인테리어 전반을 통일감 있게 연출하는 방식을 소비자에게 제안하고 있다. 보통 가전제품을 하나씩 사지 않고, 3~4개를 묶어 산다는 소비자 취향까지 반영한 것이다.

LG전자는 더 효과적인 색 표현과 조화로운 디자인을 위해 미국 팬톤색채연구소와 협업하기도 했다. 옅은 갈색 계열의 ‘클레이 브라운’과 짙은 적색의 ‘레드 우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색은 오브제컬렉션 출시 시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모든 제품에 동시 적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색은 총 15가지다.

오브제컬렉션 제품군은 건조기, 의류관리기, 식기세척기, 광파오븐, 정수기,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 빌트인 타입 냉장고, 김치냉장고, 1도어 냉장·냉동·김치 컨버터블 냉장고, 에어컨, 청소기, 공기청정기 등 총 14종으로 구성됐다. 앞으로 제품군을 꾸준히 확대하겠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틈새 가전도 인기

틈새 가전도 화려한 색을 입었다. 위니아딤채는 최근 검은색이나 흰색이 전부였던 전자레인지에 오렌지색을 적용한 ‘위니아딤채 컬러팝 전자레인지’를 출시했다. 전자레인지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혼자 사는 젊은 소비자라는 점에 착안한 디자인 전략의 결과물이다.

이탈리아 소형 가전 브랜드 드롱기, 스메그 등은 색은 물론이고, 특징적인 외장 디자인으로 MZ 세대 선호가 높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국내에 충성도 높은 팬을 다수 확보한 일본 가전 브랜드 발뮤다는 대표제품 ‘더 토스터’에 흰색, 검은색에 이어, 다크 그레이와 베이지를 추가했다. 발뮤다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빨간색과 감색 등도 조금씩 적용하는 추세”라며 “앞으로 이런 색의 가전으로 새로움을 원하는 소비자 요구를 맞춰 나갈 예정이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MZ 세대가 컬러 가전의 인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 세대는 영상, 인터넷 기반 세대이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배경이 중요한데, 무심결에 사진을 찍어도 문제가 없는 인테리어를 원하게 되고 가전제품 역시 화려하고 예쁜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성을 추구하는 MZ 세대가 이제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며 “50~60대가 소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자식 세대가 구매를 주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MZ 세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와 비교해 가전제품의 절대적인 숫자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라며 “예전에는 냉장고, 세탁기 정도만 필수품으로 꼽혔지만 이제는 식기세척기, 건조기, 커피머신 등 필수라고 생각하는 가전제품의 종류 자체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가전 업계에서는 컬러 비즈니스가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얻을 것으로 내다본다. 업계 관계자는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생활 가전은 트렌드가 됐다”라며 “이제는 하나의 가전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집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여러 개의 가전을 동시에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