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의 소송에서 지난 6월 승소한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들. 뒷줄 왼쪽부터 하태헌 변호사, 강신욱 변호사, 백상현 변호사. 앞줄 왼쪽부터 김현이 변호사, 유한석 변호사, 강신섭 대표변호사, 정은영 변호사, 이숙미 변호사, 김태훈 변호사.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넷플릭스와의 소송에서 지난 6월 승소한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들. 뒷줄 왼쪽부터 하태헌 변호사, 강신욱 변호사, 백상현 변호사. 앞줄 왼쪽부터 김현이 변호사, 유한석 변호사, 강신섭 대표변호사, 정은영 변호사, 이숙미 변호사, 김태훈 변호사.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원고들(넷플릭스)이 피고(SK브로드밴드)에게 ‘연결에 관한 대가’를 지급할 채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그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의 이 부분 부존재 확인 청구는 전부 이유 없다고 봐야 한다.”

6월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의 김형석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기자들의 손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콘텐츠사업자(CP)인 넷플릭스와 인터넷서비스제공 업체(ISP)인 SK브로드밴드 간의 3년간에 걸친 망 사용료 분쟁에 대해 법원이 첫 판결을 내놓는 순간이었다. CP와 ISP의 망 사용료 분쟁은 전 세계 곳곳에서 있었지만, 법원이 구체적인 결론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SK브로드밴드의 완승이었다.


2년 만에 12배 늘어난 넷플릭스 트래픽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 1월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2019년 1월 또다른 오리지널 콘텐츠인 ‘킹덤’이 인기를 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에서 넷플릭스로 인한 트래픽도 급증했다. 2018년 5월에는 50Gbps 정도였는데 2020년 6월에는 600Gbps로 늘었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늘어난 트래픽에 맞춰서 투자를 늘려야 했다. SK브로드밴드 추산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받아야 할 망 사용료는 2017년 15억원에서 2020년 272억원으로 늘었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사용료를 내라고 넷플릭스에 꾸준히 요청했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두 회사의 갈등은 법정으로 향하게 됐다. 넷플릭스는 2020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거부하고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넷플릭스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했고, SK브로드밴드는 모회사인 SK텔레콤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던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맞섰다.


망 사용료 안 낸다더니 7년 전엔 다른 말 한 넷플릭스 부사장

법무법인 세종은 넷플릭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광범위한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TMT(방송정보통신)팀이 망 사용료와 관련된 각종 해외 판례와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나섰다. TMT팀이 찾은 자료에는 미국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결문, 프랑스 파리 항소법원 판결문 등이 있다. 이들 해외 판례에는 ISP가 CP로부터 인터넷망 이용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정적인 단서는 넷플릭스 내부에서 나왔다.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 부문의 켄 플로렌스(Ken Florance) 부사장은 이번 소송 과정에서 전 세계 어디서도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직접 작성해 한국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세종은 켄 플로렌스 부사장이 7년 전에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2014년 8월 켄 플로렌스 부사장은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TWC)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하면서 “컴캐스트에 착신망 이용 대가(ter-minating access fee)를 내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정은영(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는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에 낸 착신망 이용 대가는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망 사용료와 같은 개념”이라며 “미국에서 이미 망 사용료를 지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적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김앤장은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세종은 ‘의료법’에 비유해 김앤장의 망 중립성 카드를 반박했다. 의료법 12조는 의사로 하여금 환자를 피부색이나 성별, 연령에 따라 차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의료 행위를 무상으로 제공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를 망 중립성에 적용해보면 망 중립성은 통신사가 자사망에 흐르는 합법적인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게 세종의 논리였다.

김앤장은 SK브로드밴드가 이미 자신들의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에게 돈을 받고 있는 만큼 넷플릭스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은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계약상 전송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법무법인 세종은 신용카드사의 수수료 부과 방식을 예로 들면서 이 주장도 막아냈다. 신용카드사는 소비자에게 연회비를 받는 동시에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가입자와 CP로부터 모두 돈을 받는 건 이중 과금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세종이 꺼낸 신용카드사의 사례를 언급하며 다면적 법률 관계는 합법이라고 인정했다.


TMT·송무팀 ‘원팀’으로 승소 이끈 세종

법무법인 세종은 이번 소송에 TMT팀과 송무팀을 ‘원팀’처럼 꾸려서 대응했다. 세종의 강신섭(사법연수원 13기) 대표변호사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소송을 이끌었고, ICT그룹장인 강신욱(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가 TMT팀을 이끌며 협업했다. 대표변호사가 직접 재판에 나서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세종이 이번 소송에 힘을 실었다는 뜻이다.

강 대표변호사는 “승소를 위해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의 전문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고, 송무의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했기 때문에 두 팀이 매주 정기회의를 가지면서 지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다툼은 이제 2라운드로 향한다. 넷플릭스는 7월 15일 항소를 제기했고, SK브로드밴드도 반소로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계속 법정 공방을 벌이면 구체적인 망 사용료를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항소심도 김앤장과 세종이 맡는다.

강 대표변호사는 2심에서도 국내 ISP를 대신해 정당한 망 사용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번 승소가 넷플릭스나 유튜브(구글) 같은 글로벌 CP로부터 국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의 권리를 지켜낸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가 졌다면 넷플릭스뿐 아니라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디즈니 플러스나 이미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업체들이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국내에서 사업을 할 법적 근거가 생긴다. 또 현재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국내 CP들도 ISP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며 버틸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통신사들은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증설 비용을 가입자들에게 부담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 대표변호사는 “네이버나 카카오, 왓챠 같은 국내 CP들은 정당한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해외 CP 중 일부만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었다”며 “법원에서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분명하게 판단한 것은 큰 승리”라고 말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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