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랜드로버 ‘디펜더 90’.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재규어 랜드로버 ‘디펜더 90’.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재규어 랜드로버의 정통 오프로드 모델 ‘디펜더’는 1948년 처음 출시된 후 2015년까지 세대교체 없이 판매된 스테디셀러다. 주로 군용차로 쓰이다가 환경 규제를 충족하지 못해 단종됐는데, 2019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4년 만에 2세대 디펜더가 공개됐다. 2세대 디펜더는 오프로더 기능은 충분히 담되 과거 디자인 요소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준다. 국내에는 작년 9월 롱보디 모델인 ‘올 뉴 디펜더 110’이 출시됐고, 지난 6월 숏보디 모델 ‘올 뉴 디펜더 90’이 나왔다. 디펜더 90 D250 SE 모델을 타고 서울에서 가평 경반분교까지 왕복 150㎞를 주행했다. 도심과 고속도로, 오프로드를 다양하게 달렸는데, 디펜더는 어떤 환경의 길에서도 훌륭한 주행 성능을 보여줬다. 험한 오프로드는 거뜬히 지났고, 일반 도로 주행에서도 편하게 탈 수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였다.

디펜더의 외관은 전반적으로 굵은 수평선을 강조해 각진 느낌을 주는데,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이전 모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동글동글하다. 전면의 LED 헤드램프도 커다란 원형의 메인 램프와 두 개의 큐브 모양 램프로 구성돼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뤘다. 직사각형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 편인데, 오히려 차량 하단을 보호하는 두툼한 스키드 플레이트가 강조돼 강인한 인상을 준다.

랜드로버 측은 디펜더 90이 과거 랜드로버 디자인의 정통성을 가장 현대적으로 구현한 모델이면서 당당한 자세와 각진 외형으로 숏보디 오프로더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드 오픈 테일게이트에 달린 스페어타이어와 지붕 뒤쪽의 알파인 라이트,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된 헤드램프 등에서 오리지널 디펜더의 디자인 헤리티지와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디펜더 90은 3도어 모델로 5도어인 디펜더 110 모델보다 길이가 짧다. 디펜더 90의 전장(차의 길이), 전폭(차의 폭), 전고(차의 높이)는 각각 4583㎜, 1996㎜, 1974㎜이며 휠베이스(축간거리)는 2587㎜다. 디펜더 110의 경우 전장 5018㎜, 휠베이스 3022㎜로 디펜더 90보다 각각 435㎜ 길다. 두 모델의 전폭은 같고, 전고는 디펜더 90이 7㎜ 높다. 디펜더 90의 트렁크 용량은 297L이며, 2열 시트를 접으면 1263L까지 늘어난다. 디펜더는 차량 앞뒤 오버행(차축과 차의 끝까지 거리)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프로드 주행에서 진입각과 이탈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기능적 디자인 요소다. 디펜더 90의 경우 진입각은 31.5도, 이탈각은 35.5도인데 스키장 최상급 슬로프가 30도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못 가는 도로가 없을 정도로, 어떤 도로든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셈이다.


재규어 랜드로버 ‘디펜더 90’의 실내.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재규어 랜드로버 ‘디펜더 90’의 실내.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차체 일부인 마그네슘 소재의 ‘크로스카 빔’을 실내에 드러나게 했다는 점이다. 마그네슘 합금 소재는 스티어링 휠과 도어 트림에도 적용됐는데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도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또 도어 트림을 조립한 볼트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강인하고 거친 느낌을 준다. 기어노브가 센터패시아 쪽으로 올라가는 대신 컵홀더가 커졌고 수납 공간도 넉넉해졌다. 센터콘솔에는 냉장 장치가 있어 500㎖ 물병을 네 개까지 넣을 수 있다. 냉장 기능이 좋아 센터콘솔에 생수병을 넣었다가 1~2시간 뒤에 마셨더니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운전석에 앉으면 전면 유리가 넓고 시트 포지션이 높아 시야가 탁 트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프로더는 좁고 험한 길을 가거나 장애물을 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보닛 아래의 잘 보이지 않는 장애물도 카메라가 디스플레이에 표시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랜드로버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Clear Sight Ground View) 기능으로, 보닛을 투명하게 표시해 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차량 후면의 스페어타이어 때문에 룸미러 시야가 좋은 편은 아니다.

주행 모드는 센터패시아에 있는 다이얼을 통해 컴포트·에코·스노·머드·샌드·암석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또 도강 수심 감지 기능(Wade Sensing)이 있어 80㎝ 깊이 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기능까지는 시승 과정에서 사용하지 못했다. 경반분교로 올라가는 오프로드에선 암석 모드로 주행했다.

암석모드로 주행한다고 해서 승차감이 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갈, 바위를 넘을 때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느낌이 좌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이 오프로더의 진가는 주행 성능에서 드러났다. 굵직한 바위 같은 장애물을 지날 때 미끄러지지 않고 거침없이 전진했다. 노면을 힘들이지 않고 잘 넘나든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퀴가 아니라 마치 다리 달린 자동차처럼 암석을 넘어 다니는 듯했다. 노면이 고르지 못하면 차가 좌우로 흔들리거나 경사진 길을 돌 때 기울어질 수도 있는데, 불안정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좁고 급격한 경사로를 후진해서 내려간 뒤, 경사로에서 잠시 멈췄다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우선 후진할 때 카메라가 차량 주변 상황은 물론, 앞·뒷바퀴 바로 옆 장애물들을 표시해줘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사로에서 멈췄을 때는 물론 가속해서 올라갈 때도 미끄러짐이 없고, 노면이 고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스티어링 휠의 조향이 정확했다.

랜드로버에 따르면, 2세대 디펜더는 온·오프로드 주행 120만㎞, 개별 테스트 4만5000회, 6만2000번 이상의 엔지니어링 테스트를 거쳤다. 프로토타입 모델은 영상 50℃가 넘는 사막과 영하 40℃ 이하의 북극, 고도 3048m(1만ft)에 이르는 콜로라도의 로키산맥 등 혹독한 환경에서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디펜더 90 모델의 모든 트림에는 신형 인제니움 3.0L 인라인 6 디젤 엔진이 탑재돼 최고 출력 249마력, 최대 토크 58.1㎏·m의 성능을 낸다. 또 2세대 디펜더는 랜드로버가 새롭게 설계한 최신 D7x 모노코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전의 보디 온 프레임 형태보다 세 배 이상 비틀림 강성이 높다. 랜드로버는 D7x 모노코크 아키텍처가 랜드로버 역사상 가장 견고한 알루미늄 보디라고 전했다. 덕분에 2세대 디펜더는 최대 3500㎏까지 견인할 수 있다.

일반 도로에서도 승차감이 나쁘지 않았다. 시동을 걸었을 때 소음이 거의 없었고 속도를 높여도 엔진 소음이 내부로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과 소음이 없어 놀라울 정도였다. 속도를 시속 100㎞까지 높여도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공차 중량이 2380㎏에 달하지만 차가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혼잡한 도심 퇴근길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을 때 밀리는 느낌이 없어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기본 내비게이션으로 순정 T맵이 탑재돼 다른 수입차보다 유용한 것도 장점이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없지만 운전석 계기판에 경로가 표시된다. 복합연비는 리터당 10.2㎞, 판매 가격은 9290만원이다.

변지희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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