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가 입수한 배달대행업체 영업권 양수도 계약서. 사진 조선비즈 정리
조선비즈가 입수한 배달대행업체 영업권 양수도 계약서. 사진 조선비즈 정리

인천에서 배달대행업체를 운영 중인 40대 윤모씨는 2021년 말 배달대행 플랫폼 A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4억원을 줄 테니 배달대행 사업과 관련한 영업권 일체를 양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윤모씨는 현재 다른 배달대행 플랫폼 회사인 B사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데, 식당과 라이더를 그대로 데리고 거래 업체를 A사로 바꾸고 업체 관리는 지금처럼 윤모씨가 하는 조건이었다. 윤모씨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경업(競業·영업상 경쟁) 금지’ 조항으로 자칫 큰돈을 물어내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윤모씨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비속, 4촌 이내 친족도 계약일로부터 5년간 국내 다른 배달대행 플랫폼에 취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하우도 알려줘선 안 된다. 이런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금의 2배를 물어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배달시장을 선점하려는 플랫폼 기업 간 경쟁이 ‘쩐(錢)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신생 플랫폼 업체는 배달이 많이 들어오는 가맹점과 유능한 라이더를 다수 보유한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수억원을 제시하며 계약 변경, 경업 금지를 유도하고 있다. 현행 상법은 영업권 양수도 계약에서 경업 금지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넓게 설정하거나 위약금을 높게 불러 공정한 경쟁을 제한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배달대행업체 한 개당 수억원에 거래

배달대행 플랫폼은 배달의민족(배민), 요기요, 쿠팡이츠를 대신해 소비자와 배달 라이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배민 앱으로 주문을 하면 배민은 음식점에 주문을 전달하고 음식점은 배달대행 플랫폼을 통해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고용된 배달 라이더를 공급한다.

현재 플랫폼사는 막강한 1위 사업자 없이 바로고, 생각대로, 만나플러스(공유다·제트콜 등 7개 배달대행 연합), 부릉 등 소규모 중소 사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경쟁력은 배달 건수에 달려있는데, 숙련된 배달기사를 많이 보유한 배달대행업체와 얼마나 계약을 맺고 있느냐가 좌우한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배달업계가 급성장하자, 웃돈을 주고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영업권을 인수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특정 상권에서 새로 배달대행업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 영업에 나서는 대신 기존에 자리 잡은 배달대행업체를 통으로 인수하는 방식이다. 한 배달대행 플랫폼 관계자는 “현재 배달대행업체가 몇 개 없는 경기도 김포, 인천 송도 등에서는 최근 신생 배달대행 플랫폼이 업체 1개당 인수가로 4억~5억원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출혈적인 영업 방식이 성행하는 건 상당수 배달대행 플랫폼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영업이익을 내기가 어려워 투자자들은 ‘3년 안에 연간 배달 건수 2000만 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회수한다’ 같은 조건을 내건다.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하려는 목적이다.


5년간 친인척까지 경업 금지·2배 위약금

조선비즈가 입수한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영업권 양수도 계약서를 보면, 경업 금지 요건이 폭넓게 설정돼 있다. 계약을 맺는 순간 5년간 대한민국에서 경업을 할 수 없는데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비속, 4촌 이내 친족도 안 된다. 배달대행업과 관련한 노하우를 알려줘서도 안 된다. 경업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금의 2배를 물어내야 한다.

현행 상법은 영업권 양수도 계약에서 경업 금지를 허용한다. 상법 41조는 “영업을 양도한 경우 다른 약정이 없으면 양도인은 10년간 동일한 특별시·광역시·시군과 인접한 특별시·광역시·시군에서 동종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매도인의 영업 비밀, 고객 관계 등 무형자산을 이용해 매수인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상법에서도 경업 금지 기간을 10년으로 보고 있어 5년을 과도한 제한이라고 일방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며 “영업권 양수도 계약 과정에서 거래를 안 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의 지위 남용 행위가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계약이 상법상 허용 범위를 초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점규제법에서 금지하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봤다.

김문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상 허용하는 ‘영업 양도’와 ‘영업권 양도’는 엄격히 구분돼야 할 개념”이라며 “1997년 대법원판결에 따르면 영업권은 거래선, 영업비결, 명성 등 재산적 가치가 있는 사실관계이고 여기에 유·무형 재산을 합한 것이 영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계약서상 영업권만 양도한 것이라면 상법상 영업 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상법상 경업 금지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공정위가 이러한 영업권 양수도 계약에 상법 41조 경업 금지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적자 빠진 배달 앱, 수수료 인상 이어져
10년 전 月 25만원이던 입점 광고비, 88만원 됐다

배동주 조선비즈 기자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음식점주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내는 중개 수수료, 광고비 등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배달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달 앱 시장 1위 배민은 지난해 기준 음식점 한 곳으로부터 평균 88만원 이상을 광고비로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0년 서비스 출범 초기 음식점 한 곳이 월평균 약 25만원을 광고비로 지불했던 것과 비교해 3.5배 수준으로 늘었다.

광고비가 늘어난 이유는 배민이 음식점주들에게 ‘깃발’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 8만8000원 수준인 깃발을 구매한 음식점주는 2㎞ 반경 소비자에게 상호가 노출된다. 하지만 입점 음식점이 늘면서 깃발을 한 달에도 10개는 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요기요는 중개 수수료를 변경했다. 요기요는 2020년 말 요기요 익스프레스 출시 초기 프로모션으로 제공했던 중개 수수료 ‘7%+1000원(배달비)’을 종료하고 ‘12.5%+2900원’으로 전환했다. 음식 가격이 2만원인 경우 기존 2400원을 지불하면 됐지만, 5400원으로 125% 증가했다.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배달 앱들의 출혈 경쟁이 광고비·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배달 앱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야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일단 비용을 쏟고 광고비와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음식점주에게 전가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쿠팡이츠 등 등장으로 배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배민은 광고, 마케팅비, 라이더 프로모션비 지출을 확대, 4년 만에 364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이후 배민은 단건배달 서비스 ‘배민1’을 시작하고 주문 중개 수수료 12%를 꺼냈다.

음식점주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쿠팡이츠는 2019년 5월 서비스 출범부터 운영하던 프로모션을 종료하기로 했다. 주문중개 수수료는 건당 1000원, 배달비는 5000원으로 고정됐던 수수료 체계를 2월 3일부터 중개 수수료를 7.5~15%(배달비 포함 시 27%)로 변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