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시민들. 사진 최상현 기자
연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시민들. 사진 최상현 기자

1월 4일 찾은 서울 서교동 홍익대 정문 앞. 점심시간임에도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배달 오토바이만 바쁘게 도로를 오가고 있었다. 정문에서 홍대입구역으로 내려오는 소위 ‘홍대 메인 상권’을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것은 부쩍 늘어난 ‘공실’이었다.

목 좋은 자리로 꼽히는 정문 앞 상권이지만, 이가 빠진 것처럼 ‘임대’ 종이를 써 붙인 상가가 듬성듬성 나타났다. 심지어 상가 3곳이 나란히 공실인 경우도 있었다. 한때 맛집 밀집지로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서교 푸르지오 상가의 경우 1층과 2층 상가에만 7~8개 정도의 공실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컴퓨터 수리점과 네일숍 등이었다. 그나마 영업 중인 음식점은 홀 손님이 거의 없는 가운데 배달 위주로 가게를 꾸려나가는 모습이었다.


쇠락하는 홍대·이대 상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서부권 상권의 중심이었던 홍대 상권이 이처럼 쇠락한 것은 일차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라지고 방역 조치 등으로 유동인구도 크게 줄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고, 버티다 지친 상인들은 잇달아 가게를 접었다.

서교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영업이 몹시 어려워졌지만,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편이라 계약 기간만 끝나면 보증금을 받아 철수하는 임차인이 많다”면서 “메인 상권의 임대료는 20평 기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000만원가량에 형성돼 있는데, 웬만한 벌이로는 다달이 임대료 내기도 어려우니 상가를 보러 오는 손님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홍대 상권이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홍대 상권은 2000년대 초반부터 클럽 문화가 형성되면서 수많은 20대를 끌어모으는 ‘젊음의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임대료 상승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이탈 현상)’이 진행되며, 점차 프랜차이즈 위주의 특색 없는 거리가 되어갔다.

같은 날 찾은 서대문구 대현동 일대 ‘이대 상권’은 아예 괴멸에 가까운 정도로 쇠락한 모습이었다. 이대 상권 또한 홍대 상권과 함께 서부권 핵심 상권으로 꼽혔었다. 의류 판매점과 화장품 가게가 밀집해 젊은이들의 패션 소비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한때 성업했을 화장품 로드숍과 보세 옷 가게 등은 대부분 폐업하고 오지 않는 ‘새 사장님’을 기다리는 황량한 처지였다. 대현동 B공인중개업소 소장은 “상권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중국인 관광객과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일대 상가의 3분의 2는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대현동 이대 상권이 쇠락한 모습. 사진 최상현 기자
서울 대현동 이대 상권이 쇠락한 모습. 사진 최상현 기자

‘힙한’ 연트럴파크로 MZ 세대 집결

그렇다면 홍대와 이대 상권을 외면한 젊은이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는 어디로 갔을까. 홍대 상권과는 양화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연남동 상권’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연남동 상권은 지난 2015년 조성된 경의선 숲길을 따라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상권이다. 풍부한 녹지 덕분에 ‘연트럴파크’로 불리기도 하는 핫플레이스다.

오토바이 소리만 가득하던 홍익대 정문 앞과는 달리, 연남동 일대는 평일 낮에도 유동인구가 상당한 모습이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부터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공원에서 개와 산책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다수였다.

숲길을 따라 형성된 상권에선 카페와 음식점 외에도 팝업스토어와 플리마켓, 타로 사주점, 사진관 등 풍부한 즐길 거리가 눈에 띄었다. 독특한 감각으로 꾸민 가게들이 많았고, 프랜차이즈도 수백 호점을 넘긴 뻔한 브랜드들보다는 아직 ‘힙함’을 잃지 않은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연남동 상권은 처음부터 상가 용도로 지어진 건물보다는 단독·다세대주택의 일부분을 상가로 용도 변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종의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상권의 모습이 MZ 세대에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학생 박모(22)씨는 “시끄럽고 복잡하기만 한 홍익대 앞과는 달리 연남동은 골목을 걷기만 해도 재밌다”면서 “이렇게 산책을 하다가 마음 동하는 대로 카페를 가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액세서리를 구경하거나 할 수 있는 게 연트럴파크의 매력”이라고 했다.

공실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동교·연남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2%로 자연공실률(약 5%)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4.2%에 불과했다. 같은 분기 홍대·합정(17.7%)과 신촌·이대(14.6%)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연남동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사실 코로나19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상권이 성장하는 추세라 공실이 자주 나오지도 않는다”면서 “임대료도 10평 1층 기준 월 180만~200만원으로 홍대 상권의 절반 이하 수준”이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다소 영업이 위축되더라도 임대료가 낮아 인파가 몰리는 주말에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상권 전경. 사진 최상현 기자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상권 전경. 사진 최상현 기자

‘젠트리피케이션’이 만든 망리단길

이런 연트럴파크보다도 더 ‘힙한’ 상권으로 MZ 세대들은 ‘망리단길’을 꼽는 경우가 많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한 망리단길은 서울 서부권에서 가장 최근에 형성된 상권이다. 네이버 지도에서 망리단길은 망원시장 옆 포은로(약 472m 길이)로 나타나있다. 하지만 그 옆에 모세혈관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는 신흥 상권이다.

망리단길의 가장 큰 특징은 서울이 아닌 듯한 고즈넉한 거리에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독특한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반전 매력’이다. 망원동에 거주하는 최모(30)씨는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망리단길을 찾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면서 “주말엔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주들 가운데 젊은 사장 비율이 높은 만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홍보에도 적극적이고, 이런 인기 있는 가게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수십 명씩 줄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설명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망원역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1~3분기 연속 ‘제로(0%)’를 기록하고 있다. 망원동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신촌이나 홍익대, 연남동 등지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밀려난 젊은 사장들이 망리단길로 많이 유입됐고, 이를 쫓아 젊은 유동인구가 대거 찾아오는 선순환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면서 “공실은커녕 상가 매물도 잘 나오지 않으니 계속 주택을 개조해 상가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 관계자는 “올해에는 홍대·이대 등 기존 상권이 지고 연트럴파크와 망리단길과 같은 신흥 상권이 뜨는 추세가 한층 뚜렷해질 것”이라면서 “기억에 남거나 남들과 다른 형태의 소비를 추구하는 MZ 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고급 식음료와 유행을 이끄는 브랜드가 몰린 곳과 그렇지 않은 상권 운명이 올해 선명하게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최상현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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