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러디스 코핏 레비엔 NYT CEO. 사진 블룸버그
메러디스 코핏 레비엔 NYT CEO. 사진 블룸버그

기자는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2월 2일(이하 현지시각) 열릴 뉴욕타임스(NYT) 2021년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기다렸다. 이 올드 미디어의 디지털 혁신 과정은 비즈니스 스쿨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교과서이자 그 여정 자체로 흥미진진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궁금증도 있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라는 희대의 대통령이 “망하는 신문(failing newspaper)”이라고 NYT를 저격할 때마다 이 회사의 디지털 뉴스판 구독자 수가 폭증했었다. ‘거대한 우군(?)’이 사라진 상황에서 NYT가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을까.

지난해엔 미국 신문사들의 유료 구독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신뢰 정보의 가치를 일깨워준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19의 급습과 미국을 쪼개놓은 인종 갈등 사태 등이 일단락하면서 뉴스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2021년 초까지 300만 명에 달했던 워싱턴포스트(WP)의 구독자 수는 그해 10월 270만 명 수준으로 내려왔다. NYT라고 다른 수가 있을까.

실적 발표 자리에 등장한 메러디스 코핏 레비엔(Meredith Kopit Levien) NYT 최고경영자(CEO)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우리의 놀라운 성장과 실행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쉽지 않은 목표를 달성했으며 더 큰 야망을 꿈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2025년까지 1000만 유료 구독 건수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 이제 우리는 2027년까지 150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만든다는 새 목표를 정조준하고 있다.” NYT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연 매출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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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의 전술 3가지

432_30_02.jpg이번 콘퍼런스콜은 NYT가 2021년 실적 비결과 함께 ‘디지털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향후 5년(2022~2027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NYT는 2015년부터 구독 퍼스트(subscription first) 전략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총론은 달라질 게 없다. 그런데 각론과 전술은 변화하고 있다.


① 구독자 범위 확장 우선, 구독자의 범위다. NYT는 정통 뉴스 소비자로만 구독자를 한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격적인 실행력으로 보여줬다. 콘퍼런스콜에서 NYT는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The Athletic)을 현금 5억5000만달러(약 6700억원)를 주고 인수한 배경을 공들여 설명했다(2022년 2월 1일 인수 완료). 디애슬레틱은 2016년 설립된 미디어 스타트업이다. 200개가 넘는 구단에 전담 기자를 배치하는 물량 공세로 5년 만에 120만 명이 넘는 애독자(유료 구독)를 확보했다.

레비엔 CEO는 “NYT 자체적으로 유료 구독 건수를 880만 건까지 늘렸고 디애슬레틱 인수로 1000만 유료 구독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NYT는 디애슬레틱을 인수하지 않았어도 2025년이라는 목표 시점까지 여유 있게 1000만 구독 시대를 열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하지만 중대한 이정표의 마지막 퍼즐을 스포츠 취향 독자를 끌어들여 맞춘 점은 곱씹어 봐야 한다. 하나는 정통 뉴스 구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뒤에 언급할 묶음 판매 전략과도 관계 있다.


② 비(非)뉴스 상품 확대 2021년 NYT의 총유료 구독 건수 880만 건 중 210만 건이 비(非)뉴스 상품에서 나왔다. NYT는 요리법을 알려주는 쿠킹과 퍼즐 게임 등을 서비스 중인데, 이 상품군에서 각각 100만 건의 구독 실적을 일으켰다. NYT의 쿠킹과 십자말풀이 상품은 주 0.7달러(약 854원) 또는 연 25달러(약 3만500원)를 내야 하는 유료 상품이다.

이런 NYT 전술은 1월 31일 단어 맞추기 게임 ‘워들(Wordle)’ 인수에서 드러난다. NYT의 경영진은 번개같이 의사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게임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4개월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인수 가격은 최소 100만달러(약 12억원). 지난해 10월 출시된 이 게임은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는 사용자가 90명이었으나 최근엔 수백만 명이 즐긴다고 한다. NYT 게임 라인업은 한층 풍성해졌다(십자말풀이, Spelling Bee, Letter Boxed, Tiles, Vertex 등).

NYT는 “우리는 NYT라는 브랜드와 뉴스 도달력을 활용해 게임·요리·쇼핑·상담·스포츠 등 독자의 삶에서 중요한 다른 영역에서도 리더가 되려고 한다”고 밝혔다.


③ 묶음 판매 이날 레비엔 CEO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전체 구독 증가보다 개별 구독자의 성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다양한 묶음 상품을 만들어 고객 한 명당 벌어들이는 수익(ARPU)을 높이겠다고 부연했다. 탄탄한 뉴스 구독층을 기반으로 업셀링(up-selling·더 비싼 상품을 파는 것), 크로스 셀링(cross-selling·다른 종류의 상품을 파는 것) 전술을 본격 가동하겠다는 설명이다.

NYT는 디애슬레틱도 NYT 뉴스와 묶어 팔 수도 있다고 했다. NYT에 따르면, 구독자의 30%가량이 두 개 이상의 제품을 구독하고 묶음 구독자는 뉴스만 구독하는 사람들보다 구독을 해지하는 비율이 낮다.


넘어야 할 산

2021년은 NYT에 결코 쉬운 해는 아니었다. 레비엔 CEO도 “기록적인 한 해였던 2020년과 달리 뉴스 주기에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NYT가 잠재 독자, 떠나는 독자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는 마케팅 비용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해 4분기 마케팅 및 영업 비용은 9747만달러(약 1189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2021년 전체로도 마케팅 비용이 36.7% 늘었다. NYT는 연휴 기간에 쿠킹을 집중 홍보하는 식으로 광고에도 돈을 쏟아부었다.

올해는 디애슬레틱을 손실의 늪에서 건져내는 것이 NYT의 중요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디애슬레틱은 급성장한 만큼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사의 2021년 매출은 6500만달러(약 793억원), 손실은 5500만달러(약 671억원)로 추정된다. 디애슬레틱 창업자들이 회사를 인수해줄 곳을 적극 물색했던 것도 2023년까지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디애슬레틱은 광고 없이 구독 수입만으로 운영했다. NYT 산하에서는 이런 정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레비엔 CEO는 디애슬레틱에 프리미엄 광고를 붙이는 것을 고려 중이다.

NYT는 ‘구독 1000만 고지’ 달성으로 WP·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 등 월드 클래스 신문사와도 확실히 차이를 벌렸다. 하지만 NYT는 되묻는다. 신문사의 경쟁사가 신문사뿐일까. 넷플릭스, 유튜브도 경쟁사다. 서브스택(Substack), 트위터의 레뷰(Revue) 같은 뉴스레터 서비스는 15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NYT 뉴스레터를 위협한다. NYT가 독자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더 큰 쟁투에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류현정 조선일보 디지털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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