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조연구소 소장 2010년 한국양조연구소 설립,현 호서대 교수 이윤희 소장이 자신이 만든 술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뜰(탁주)’ ‘녘(청주)’ ‘애(보리소주)’ ‘서(고구마소주)’. 박순욱 기자
이윤희 한국양조연구소 소장 2010년 한국양조연구소 설립,현 호서대 교수
이윤희 소장이 자신이 만든 술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뜰(탁주)’ ‘녘(청주)’ ‘애(보리소주)’ ‘서(고구마소주)’. 사진 박순욱 기자

전통 양조 교육을 목표로 2010년 한국양조연구소를 설립한 이윤희 소장은 평생을 전통술 복원에 몸 바쳐온 고(故) 배상면 회장(국순당)의 애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94년 식품영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국 술을 살리려면 젊은 사람들이 전통술을 배워야 한다”는 배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전공인 식품이 아닌 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 소장은 배 회장이 설립한 배상면주류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배 회장으로부터 직접 양조를 배웠다. 그 후 2010년 지금의 양조연구소를 만들어 전통술 양조에 관심 있는 제자들을 길러왔다. 그랬던 이 소장이 작년에 사고(?)를 쳤다. 12년째 양조 교육에 몸담아온 그가 상업양조장을 설립하고 ‘뜰녘애서’라는 네 가지 종류의 술을 시중에 내놓았다. 아직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그의 술을 마셔본 이들은 많지 않지만, 백곰막걸리를 비롯한 일부 전통주 전문점과 백화점에서는 꾸준히 그의 술이 팔리고 있다. 

‘뜰(탁주)’과 ‘녘(청주)’은 15세기까지의 우리나라 한의학 성과를 총망라한 ‘향약집성방’에 나와 있는 제조법을 토대로 만든 탁주와 청주(전통 누룩을 사용하지 않은 맑은 술은 약주가 아닌 청주로 분류한다)다. 뜰과 녘에는 소화에 좋다는 쑥, 솔잎이 부재료로 들어갔다. 

‘애(보리소주)’와 ‘서(고구마소주)’는 증류주인데, 특히 애는 고문헌인 ‘산가요록’에 나오는 보리소주 빚는 법을 따라 만들었다. 여름을 나는 쌀과 달리 겨울을 견뎌 이듬해 봄에 수확하는 보리가 갖는 구수함이 보리소주 애에도 잘 나타나, 45도의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도 부담 없이 마시는 술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고구마소주 서는 맛있기로 유명한 경기도 여주 고구마를 사용했다. 고구마의 달콤한 맛과 향이 자연스럽게 입안에 퍼져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목 넘김을 선사한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이 소장은 1994년에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식이요법(임상영양) 관련, 질병과 음식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에 호서대 교수로 임용됐다.


양조 교육을 오랫동안 했는데, 상업용 술을 만든 계기가 있나.
“아직까지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먼 훗날 연구소를 그만두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래 먹거리로 준비한 것이었다. 증류 기계가 있으니까 교외에서 양조장을 차려서 술을 만들어 오랫동안 숙성하면 자식들에게도 보탬이 되겠다 싶어 술을 만들게 됐다.”

근데 왜 미리 만들었나.
“주변에서 자꾸 내 술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면허가 없어 술을 만들 수 없다’고 하니 ‘면허를 받으면 되지, 왜 그러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2019년부터 면허 취득 준비를 하려고 보니까 절차와 규제가 너무 까다로웠다. 일단 농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도 서울 구로에서 이곳 경기도 광명으로 옮겨왔다.”

본인의 술 관련 이력은.
“전공이 술이 아닌 식품영양학이다. 술에 관한 관심은 1994년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다. 발효 관련 강의를 많이 했다. 맨 처음 강의 맡은 과목이 식품가공저장학이었다. 대표적인 발효식품, 저장식품이 술 아닌가. 그러다 보니 발효식품인 술에 관한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고한 배상면 회장의 양재동 빌딩에 사무실을 둔 동아시아식생활학회 활동을 하면서 배 회장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전통술 공부를 시작했다.”

뜰, 녘은 ‘향약집성방’을 토대로 했다는데.
“‘향약집성방’은 15세기 초엽까지의 우리나라 동의학 발전에서 이룩된 성과와 민간에서 얻은 치료 경험들을 종합해(총 85권으로 편찬) 편찬한 한의학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용호주는 탁주와 약주를 일컫는데, 우리는 탁주와 청주로 만들었다. 재래 누룩을 쓰지 않고 개량 누룩인 입국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주세법상 약주 대신 청주로 분류된다.  이 술은 소화기 계통에 좋다고 문헌에 나와 있다. 그런데 문헌 그대로의 레시피(요리법)로 하니까, 발효가 잘 안 됐다. 워낙 사용하는 약재가 많아서였다. 쑥과 솔잎 등 한약재가 부재료로 들어간다. 쑥과 솔잎 함유량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대폭 줄였다. 고문헌에서 기록한 함유량의 10%만 넣었다. 아무리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선 술 자체로서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약재량을 크게 줄였다. ‘이 술 덕분에 숙변이 해결됐다’고 하는 분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부재료인 쑥, 솔잎에는 어떤 효과가 있나.
“쑥은 효능이 매우 많은 건강식품 중 하나다. 소화에 좋은 것은 물론, 신장, 간, 위 등에도 좋다고 돼 있다. 솔잎도 마찬가지다. 솔잎은 특히 혈액순환, 심장 계통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쑥차와 솔잎차를 즐긴다. 이런 이유로 쑥과 솔잎을 술 원료로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술을 만들기로 했다.”

보리소주 애는 어떤 맛인가.
“보리의 구수함이 느껴진다. 여자들도 굉장히 좋아한다. 45도의 도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담감이 적다. 겨울을 난 보리는 속에 따뜻한 기운을 갖고 있어 구수하다. 그게 보리소주의 특성이다.”


한국양조연구소가 만든 고구마소주 ‘서’의 증류 전 발효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 여주 고구마를 일일이 으깬 뒤에 발효시킨다. 박순욱 기자
한국양조연구소가 만든 고구마소주 ‘서’의 증류 전 발효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 여주 고구마를 일일이 으깬 뒤에 발효시킨다. 사진 박순욱 기자

고구마소주 서는 어떻게 만드나.
“누룩으로 입국을 사용하는 것은 보리소주와 같다. 일본에는 고구마소주가 굉장히 유행하는데, 쌀소주보다 더 인기가 높다. 여주 고구마를 사용한다. 고구마는 쌀보다 전분 함량이 낮다. 전분이 쌀의 반 정도다. 그래서 수율(생산성)이 낮다. 고구마 발효주 도수는 알코올 도수가 11도 정도밖에 안 된다. 보리소주와 마찬가지로 본류는 60도 정도 나온다. 45도로 낮춰서 병입한다.”

개발 중인 술과 향후에 만들 술은.
“광명 지역에서 나는, 붉은색을 띠는 ‘백작수수쌀’을 원료로 신제품을 만들고 있다. 100% 백작수수쌀로 술을 빚으면 팥죽 색깔이다. 그래서 함량을 줄여 더 예쁜 색을 낼 작정이다.”

스승인 배 회장은 어떤 분인가.
“배 회장님은 전통술 복원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청년 시절, 군 복무 중에도 누룩 공부를 했다고 말할 정도로 누룩 연구에 집념이 강했다. 전통 누룩을 처음으로 현대화, 과학화한 분이다. 본인의 호에서 이름을 딴 우곡양조종합기술학교 설립을 추진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양조학교 건립이 무산된 것이 전통술 발전 측면에서 굉장히 아쉽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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